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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반장 선거'와 김태우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재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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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떤 반장 선거'와 김태우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재출마

[기고] 강서구는 엄석대를 다시 용인할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35년 동안 학생을 가르쳤다. 마지막 몇 년은 한 지방 도시의 K중학교에서 학교장으로 근무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관련 뉴스를 보다가 학교장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1학기가 막바지로 달리고 있던 6월 말이었다. 음악이나 체육, 과학 실험 수업을 위해 학생들이 이동한 시간, 비어 있는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학급에서 두 달 이상 반복적으로 일어나자, 학생들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학부모들의 학교 불신은 심해지던 때였다.

첫 도난 사건 때 담임 교사들이 학생들을 면담한 결과 의심이 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황만으로는 학생들에게 어떤 지도도 할 수 없었다. 교육적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무고한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길 위험이 있었고, 현실적으로는 학생이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면 조사하여 밝힐 방법이 없었고, 더욱이 학부모가 내 아이를 도둑 취급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교사나 학교가 아동학대의 책임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더 이상의 도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실의 열쇠를 바꾸고 문단속을 더 철저히 하도록 지도했다. 담임 교사와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의 교내 순회도 강화했다. 그래도 도난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그러던 중 사실이 밝혀지는데, 대담하게도 여러 교실을 뒤지다가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바람에 현장에서 발각되었다. 5명이었다. 한 명은 교실 밖 두 명은 복도의 양쪽 끝에서 주변 상황을 살피는 소위 망보기 역할을 했고, 두 명은 교실에 들어가 가방(호주머니)을 뒤지고 훔쳤다. 망보기 역할을 한 학생 중에 학급 반장이 들어있었다. 놀랍게도 그가 주도자였다.

당연히 학교는 학생생활지도위원회를 열어 5명 학생 모두에게 밝혀진 금액만큼 변상하도록 지도하고 교내 봉사 징계를 내렸고 이에 더해 반장에 대해서는 반장 자격을 박탈했다. 반장이 부재한 상황이라 당연히 반장 선거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 반장의 아버지께서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 교사와 학생생활지도 부장 교사, 교감을 거쳐서 학교장 면담을 요청했다. "마음 아프시죠? 아직 도덕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춘기라, 눈앞의 이익에 유혹되어 ○○(이)가 이런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이)도 어떤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앞으로 바른 가치관을 함양하도록 학교에서 더욱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 함께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번 김태우 출마와 비슷한 사태는 다시 치르게 된 반장 선거를 앞두고 일어났다. 징계를 받아서 반장 자격을 박탈당한 그 반장이 다시 반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담임 교사는 당연히 "너로 인해 반장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되었으니 출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번갈아서 담임 교사와 학생생활지도 부장 교사, 교감에게 "왜 출마를 할 수 없느냐? 그런 규정이 학교 규칙에 명시되어 있느냐?"라면서 불만을 표시하면서 "그런 규칙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출마를 불허하면 교육청과 교육부, 국가인권회에 고발하겠다."라는 식으로 압박을 했다.

"학교 규칙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학교는 작은 사회이니 사회의 선거 규정을 원용하면 된다. 사회의 어떤 선거에도 재선거 원인 제공자의 출마를 허용하지 않는다. 학교장으로서 그의 출마는 허용할 수 없다."라고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교장실로 전화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압박을 했다.

반장 선거 바로 전날이었다. 담임 교사와 학생부장 교사, 교감이 교장실로 와서 그 반의 남학생은 아무도 반장 선거에 출마하려 하지 않고 여학생 한 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장선생님, 우리 반 학생들을 믿고 그냥 출마를 허용하시지요?"라고 말했다. 학생부장 교사와 교감도 거들었다. 선생님들이 그 부모에게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출마를 허용할 수는 없었다. 몇 시간 뒤 교감과 학생부장 교사가 교장실에 다시 들어왔다. 담임 교사가 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직전이라면서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나는 징계로 인해 반장 자격을 박탈당했던 그의 출마를 허용했다. 그에게 사면과 복권을 해준 것이다.

그 학급 학생들을 믿은 결과는 처참했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그는 다시 당선되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라고 물었다. "체격도 크고 성적도 좋은 편이어서 남학생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지낸다. 그래서인지 남학생들이 다 표를 주었다. 또 여학생 출마자에게 반감이 있는 학생도 있다."라는 답을 들었다. 당시에 나는 학교 밖 사회에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와 엄석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많다고 자위하며, 그 결과를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석하면서 나의 비겁한 결정 번복을 합리화했다.

그의 출마를 허용한 번복 결정은 지금도 심히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다시 당선된 그의 부모님은 둘 다 공무원이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보면서 담임 교사의 시달림을 이유로 그의 출마를 허용한 것은 나 자신을 먼저 보호하고 싶은 번복이었다는 자책이 들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결정이 타당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

하지만 학생들을 믿어 보자던 담임 교사의 판단과 소망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해 말 치러진 학생회장 선거에서 학생들은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역량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절도 사건의 당사자로 학급 반장을 박탈당했다가 학교를 압박한 부모에게 굴복한 나의 번복으로 다시 출마해 당선되었던 그 학생이 가장 먼저 후보 등록을 했다. 등록 마감 하루 전까지도 다른 후보가 없었다. 선생님들은 출마할 것이라 예상했던 다른 학생들이 학교의 '일짱'인 그 학생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이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학생회 회장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적이나 징계 전력을 이유로 학생회 임원 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는 학교 규칙이 있기에, 그의 출마를 막을 길은 없었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 자치 활동인 학생회 선거에 어떤 사유로도 개입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과 나는 답답한 고민만을 계속했다.

후보 등록 마감일이 되었다. 그 마지막 날 기적이 일어났다. 다른 반의 여학생 한 명이 후보로 등록을 한 것이다. 그 여학생의 출마 결심은 이러했다. "그 학생이 무투표(정확히 말하면 찬반 투표)로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한 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을 거쳐 선거가 치러졌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그 여학생이 당선되었다. 비록 득표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6개월 전 그 반장 재선거 결과에 비하면 학생회장 선거에서는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치 역량을 스스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절도 사건으로 반장 자격을 박탈당했던 그 학생의 부모가 반장 재선거에의 출마를 고집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불명예스러운 중도 하차 사유를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보통은 불의의 사고나 전학이 아니면 특별히 학기 중에 1년 임기의 반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명시된 반장 역할 기간(3월 1일에서 6월 말)으로부터 반장의 중도 하차 사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재당선은 이 사실을 교묘하게 가릴 수 있다. 비록 그 학생이 한 달 정도 반장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더라도, 우리 학교가 학기별로 반장을 임명한다는 착시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반장 역할 수행 기간이 1학기 전체가 아니라는 점과 반장 자격 박탈 일자와 재당선 일자 사이에 한 달 정도의 간격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본다면, 그의 재당선이 상식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 착시 효과를 쉽게 간파하기 어렵다.

그 학생회장 선거 실패를 통해 그 학생과 부모가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체감했으리라 기대해 본다. 또한 그 여학생은 물론 민주시민으로서의 잠재적 역량을 보여준 학생들을 자랑스럽게 추억해 본다.

▲21일 강서구 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와 함께 승리 기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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