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문재인 정부를 향한 통계조작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파트값 통계조작이 논의됐다'는 의혹을 받는 지난해 2월 수석보좌관 회의와 관련해 "(일정상) 회의 자체가 열릴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최근 한국의 대중국 정책에 발맞춰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외교·안보와 경제의 충돌상황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좀 더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김 전 실장은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포럼에 참여해 이 같이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직책을 역임한 김 전 실장은 퇴임 이후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복귀한 상태다. 이날 포럼에선 김 전 실장이 지난 8월 펴낸 책 <21세기 세계경제 : 뉴노멀인가 올드노멀인가>를 주제로 한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김 전 실장은 책의 저자로서 이 자리에 참여해 코로나19 팬데믹, G2 패권경쟁 등을 둘러싼 대외 경제 환경에 관한 견해를 전했다.
이날 진행된 언론과의 질의응답에선 '통계조작 의혹' 등 현안 질문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김 전 실장은 "그 일에 대해 지금 제 입장에서 하나하나 항변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는 언론 등이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확대의 계기'로 지목한 '2020년 2월 1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보회의'와 관련해서는 "일정상 수보회의가 열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앞서 지난 19일 <조선일보>는 "문 정부의 아파트 가격 통계조작 범위가 2020년 2월 17일 문 전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직후 확대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내용에 대해 김 전 실장은 "당시 대통령 주재 수보회의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에 열렸고, 다른 일정이 생기면 (수보회의가) 없어질지라도 시간이 변경된 일은 없었다"라며 "(그런데 확인해보니) 당일 오후 2시에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그러면 수보회의가 열릴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정부의 한·미·일 외교안보 강화로 인해 대중 무역수지의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외교·안보정책의 경우 외부에 있는 사람이 정확한 실상을 알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직접적인 평가를 피했다. 다만 그는 미중갈등을 큰 축으로 일본 및 유럽의 경제적 대응 등을 포괄하는 '대외환경의 급변성'을 "글로벌 차원의 경제적 영향요인"으로 지목하며 "결국 유연하게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 우리의 전략이 너무 고정될 필요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김 전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G2 패권경쟁 등 복잡한 외부요인 속에서 경제정책을 설계하기 위해선 "한국경제의 성과를 좌우할 수 있는 글로벌 차원, 동아시아 차원, 국내 차원의 세 가지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현 시점에서는 세 개 차원 모두 한국경제에 부정적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국가별 과잉부채 상황, 미국과 중국의 산업정책 중심 보호무역 기조 등이 수출중심 국가인 한국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전 실장은 이 같은 대외환경에서 "일본은 확고한 미일동맹 아래 아시아의 '맹주'는 자국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결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여기서 한미일 동맹의 의미를 여러분들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의 (대외전략 관련) 입장을 한 가지 방향성으로 선명하게 내세우는 것이 올바른 전략인가" 물으며 "원론적인 말이지만 (대외전략이) 유의미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대내응집력과 역동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이게 깨지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부연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양축으로 쟁점이 되곤 하는 '재정투자확대 대 재정건전성' 논란과 관련해서도 그는"정답은 없는 문제이니 (각자의) 주장을 갖는 건 좋다"라면서도 "(재정정책이) 경직적으로 나가다 보면 사회보장과 미래를 위한 투자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금 정부여당의 재정준칙 적용 방식을 보면 유럽식 모델인 '골든 룰' 방식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거부한 상황"이라 평하며 "저도 정확한 정답은 모르지만, 재정준칙을 좀 더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운용하는 게 방법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미국과 중국이 자국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심의 산업정책에 몰두하는 경향성을 가리켜서는 "미국과 중국이 본인들만의 뜻대로 (산업정책을 펼치며)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두 초강대국 중 어느 누구도 국제규범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고, 유럽은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이 국제규범을 선도하려 한다"라며 "한국의 경우 규범을 선도할 수 있는 (규모의) 나라는 아니다. 결국 산업정책 경향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포획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가 확보되는 전제 하에 그 방향이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책에서 스스로를 '개혁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명시했다. 김 전 실장은 이와 관련해 "문 정부 초기에도 (당시 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면서도 "(시민들의) 평가는 선거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부는) 선거에서 졌고, 결국 개혁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운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정책이) 처음의 본인 생각과는 다르게 나올 수도 있지만, 결론이 맺어지면 결국 그 결론이 나의 책임이자 나의 생각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라며 "(문 정부 당시에 개혁이 실패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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