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13일차를 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두 번째 검찰 소환 조사에 나섰다. 민주당은 검찰이 단식 중인 이 대표에게 재조사를 요구한 데 대해 "이 대표를 저들(검찰)의 아가리에 내줄 수 없다"며 한껏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수척한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그는 조사에 들어가기 전 어눌한 말투로 "두 번째 검찰 출석인데 오늘은 대북송금에 제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지 한번 보겠다"며 "저를 아무리 불러서 범죄자인 것처럼 만들어보려 해도 없는 사실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2년 동안 변호사비 대납, 스마트팜 대납, 방북비 대납 그렇게 주제를 바꿔가면서 일개 검찰청 규모의 검사 수십 명, 수사관 수백 명을 동원해서 수백 번 압수수색하고, 수백 명을 조사했지만 증거라고는 단 한 개도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검사에게도 질문했지만 북한에 방문해서 사진 한 장 찍어보겠다고 생면부지 얼굴도 모르는 조폭, 불법 사채업자 출신의 부패 기업가한테 백억이나 되는 거금을 북한에 대신 내주라고 하는 그런 중대범죄를 저지를 만큼 제가 어리석지 않다"고 했다.
이어 정권을 향해 "국민이 권력을 맡긴 이유는 더 나은 국민들의 삶을 도모하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라는 것이지, '내가 국가다'라는 생각으로 권력을 사유화해서 정적 제거나 폭력적 지배를 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라며 "정권은 짧고 국민과 역사는 영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원지검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앞서 9일 1차 조사를 진행하던 중 이재명 대표로부터 조사중단과 추가출석 요구를 받아, 이를 수용하여 오늘 추가 조사를 하게 됐다"고 재조사 경위를 설명하며, "이재명 대표의 건강 상황을 고려하여 주요 혐의에 관한 핵심적인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최대한 신속히 집중 조사하여 오늘 조사를 종결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의 건강 상황을 고려하여 이재명 대표측과 의료진과 의료시설 등에 관한 사전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 출석에 앞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이 대표와 민주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과 이 대표 단식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 특히 검찰이 단식 중인 이 대표를 연거푸 소환해 조사하는 데 대해 "잔혹하고 악랄한 윤석열 정치검찰의 사법만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단식 중인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잇단 검찰의 소환 조사는 우리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이라면서 "그 혐의 여부를 떠나서 검찰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의원님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실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정식 사무총장도 "역대 야당 대표를 단식 중에 소환한 것도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인데 그것도 오늘 단식 13일차를 맞아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에서 또다시 추가 소환했다"며 "과거 여당은 야당 대표가 단식할 때 걱정하는 척이라도 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조롱과 비난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총장은 "어제는 황운하 의원이 검찰로부터 징역5년, 한병도 의원은 징역 1년6월을 구형받았다. 검찰 만행이 끝이 없다"며 "아마도 내년 총선국면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간밤에 깊은 고민 끝에 절대로 이 대표를 저들의 아가리에 내줄 수 없다는 결론을 안고 무겁게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는 "저는 대표께서 단식하지 않았다면 나라와 우리 국민과 우리 당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달라는 말씀을 드리려 했다"면서 "9일 조사가 마지막 조사가 아니라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단식하는 이 대표를 단식과 아랑곳없이 또 나와서 조사받으라 하는 이 검찰의 무도함, 무도한 처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역겨움과 분노가 제 가슴에 솟아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이 대표를 저들의 소굴로 내보낼 수 없다"며 "절대로 저 무효인 사법 처분에 우리가 순명하고 순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회 회기 중 검찰이 구속 영장을 청구해 체포동의안 표결을 해야 할 경우 부결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 출신 김회재 의원도 "검찰 선서대로 진실만 좇는 공평한 검사가 돼야 하는데 이 대표 수사만 그렇게 하고, 돈봉투 수사,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만 그렇게 하느냐"면서 "이 대표와 우리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는 명백한 야당 탄압 수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위 검찰독재, 검찰공화국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 우리 의원들이 단결해서 돌파해 나가야 된다"고 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비공개 회의에서) 자유발언을 9명이 말씀하셨는데 대부분 의원께서 오늘 의원총회 목적대로 검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향후 예상되는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선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고, 무죄라 확신하기 때문에 당이 이 대표 소명을 믿지 않고 기소를 전제로 지금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의원들 생각이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이번 출석을 통해서 당내에서는 최소한 수사 자체가 좀 과도하다는 인상은 거의 모든 분들이 갖게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서 "오늘 체포동의안에 대해서 가상적 상황을 염두해두고 서로 의견을 교류하거나 하지 않은 건 의원들이 대부분 그런 얘기로 서로 간의 이견을 확인할 때는 아니고 서로 간 같은 뜻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국민에게 보여주는 게 의미있는 날이다 (라고 판단해서) 의총을 진행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부연했다.
이어 이 대표 단식과 관련해선 "당 대표의 단식이 이제 13일째로 들어갔기 때문에 더 이상 계속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중단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서 전달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지도부가 논의해 이런 의원들의 바람을 당 대표에게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 내 구성원들은 이 대표의 단식을 만류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전날에는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에 이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과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대표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권 이사장은 전날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단식이라는 극한 상황에 오로지 건강이 너무 걱정된다"며 "여러 사람이 걱정하고 있으니 건강 잘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비해 (단식이) 대수겠느냐"라면서 단식을 지속할 뜻을 드러냈다.
지난해 지방선거 패배 후 '이 대표 책임론'을 거론하며 이 대표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박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 본청 앞 단식 농성장을 직접 찾아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 대표에게 "시민들도 대표님의 진심을 많이 알았다. 단식을 그만하시고 건강을 회복하셔야 한다"며 "단식이 끝나면 회복식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안 그래도 보고 싶었다"며 "언제 한번 보자"고 덕담을 건넸다.
이 대표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당내 동정론이 우세해지자, 이 대표 단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비명계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비판, 비난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비(非)이재명계 조응천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확정적으로 말씀을 하셨고, 지금 단식하고 힘드신 분한테 약속 지키라고 얘기하는 게 참 야박하고,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다만 그러면서도 "불체포특권에 대해 선제적으로 금을 긋고 단식에 들어가는 게 훨씬 단식의 의미와 순수성이 명징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만약에 저희가 부결을 시키면 총선에서 국민들께 뭐라고 얘기를 하고 표를 달라고 해야 되냐, 저는 정말 '방탄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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