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안전하게 출근해서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걱정 없이 병원에서 치료하고, 구석구석 편리하게 아름다운 한반도를 기차로 이동하는 상상을 합니다. 가능합니다. '공공성'과 '노동권'이 깊고 넓게 퍼진 한국 사회라면 우리의 미래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지하철, 의료, 철도 등 내 곁에 노동자들이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동 파업을 합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불안이 불안을 낳는 시대의 대안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성 확대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를 싣습니다. 편집자주
누구나 한 번쯤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병마와 싸우고 고비를 넘긴 뒤 병원을 둘러보면 많은 병원 노동자들이 보인다.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환자의 재활을 돕는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와 정확한 검사와 진단을 돕는 방사선사, 임상병리사도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설과 보안, 청소 등 관리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병원 사업장에서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달한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노동 집약적인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의 안정적인 인력 운영은 환자의 생명, 의료의 질과 직결돼 있어 매우 중요하다.
환자 사망률‧감염률 줄이려면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로 간호사 수 늘려야
병원에서 의사보다 먼저 만나는 사람이 있다. 간호사다. 간호사들은 걸어 다니는 법이 없다. 하루 일하는 동안 4만보씩 뛰어다니고, 식사를 거르며 환자를 돌보지만 시간이 늘 부족하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 치료와 회복 과정에 대해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하루 평균 22.6명의 입원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미국은 간호사 1인당 환자 5명, 호주는 4명, 일본은 7명을 담당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많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법에도 간호사의 정원 기준을 명시하고는 있지만 정원 산출 방식이 모호하고, 강제 규정도 없어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간호사 법정 정원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의료 기관이 7,147개다. 2021년 4월 기준 전체 의료 기관의 30.3%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최근 7년간 행정처분이 내려진 병원은 150곳에 불과하다. 그러니 간호사가 평균 22.6명의 입원 환자를 간호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1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 사망률이 8%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사망, 회복, 안전 등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국은 간호사의 담당 환자 수를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 놓고 있다. 적정 간호 인력은 소생 실패, 패혈증, 병원감염률, 낙상, 욕창 등의 발생률도 낮출 수 있다.
인력 축소는 환자와 노동자 모두의 건강에 위협
병원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교대제로 일하는 병원 노동자들이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과 교대 근무로 인한 건강 결과로 심뇌혈관질환, 정신질환, 수면장애, 대사질환, 암, 건강행태 변화, 임신 및 출산 관련 문제, 근골격계 질환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수면장애는 집중력의 저하 등으로 환자의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근무시간이 12시간을 넘어가는 경우 투약 오류가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교대근무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인력 충원이 돼야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은 적정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있으며, 국립대병원은 기재부의 인력 통제로 노-사 합의한 인력조차 증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A병원 방사선사는 원활한 3교대를 위해서 30%의 인력 충원이 되어야 하지만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아 2교대와 당직 근무로 업무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어려워 항시 연장 근무를 시키며 인력을 돌려막기 하고 있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을 지키지만 노동자의 건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야간근무의 인력 축소는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이다. 병원은 언제든 응급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곳이지만 '야간에는 입‧퇴원 환자가 없다', '검사 건수가 적다' 등의 이유를 대며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마저 제대로 배치하지 않는다. B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야간에 간호사 혼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환자의 몸을 닦아 주던 중에 목에서 출혈을 발견했어요. 손으로 급하게 지혈한지 30분이 지났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어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병동엔 혼자뿐이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손을 떼면 환자는 과다 출혈로 사망할 수 있는 상황이라 계속 손으로 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2시간 만에 전공의를 불러 처치할 수 있었어요. 그때 제가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손으로 피를 막고 있는 2시간 동안 돌아가신 분도, 응급벨을 누른 환자도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명예보다 환자 살릴 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의료진들의 피와 땀이 서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이에 공감하며 공공 의료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병원 노동자들의 헌신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병원 노동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명예나 영웅의 칭호가 아니라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인력이다.
물리치료사는 하루 30명의 환자를 맡으며 근골격계 질환에 걸리고, 환자의 낙상 사고를 예방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임상병리사도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채혈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검사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장비 1대당 2명의 기본 인력이 필요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인력 1명이 장비 2대를 오가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밀한 검사를 통한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받아야 할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인력 기준 마련을 위해 6개 직종(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작업지료사, 물리치료사)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직무실태조사를 진행했으나 아직도 실태조사 결과와 인력 기준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적정 인력기준 마련을 통한 현장 인력 투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간호 인력에 대해 정부가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처럼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를 명확하게 법으로 명시하고 지키지 않을 시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법안, <간호인력인권법>이 국민동의청원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됐지만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내년 5월이면 폐기될 위기에 놓여있다.
사람을 살리는 공공의료의 시작, 인력충원을 위해 의료연대본부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살릴 병원노동자 인력 충원은 병원노동자들만의 요구가 아니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에 정부와 국회가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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