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남미 전역의 이민자들이 몰린 멕시코 북부의 한 이민자 수용시설에 불이 나 적어도 40명이 숨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이민 규제 완화를 기대한 이민자들이 국경 지역으로 쏠린 상황에서 미 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며 '병목 현상' 속 이민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 <AP> 통신 등 외신을 보면 27일(현지시각) 저녁 9시 30분께 미국 텍사스주 앨패소와 접한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 시우다드후아레스 이민자 수용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40명이 죽고 28명이 다쳤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28일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연 정례 기자회견에서 수용된 이민자들이 자신들이 추방될 것임을 알고 항의하는 의미에서 매트리스에 불을 낸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화재는 시설의 남성 수용 시설에서 발생했으며 당시 다양한 국적의 남성 68명이 구금돼 있었다고 한다. 사상자 중 28명이 과테말라인이었고 온두라스·엘살바도르·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 출신 이민자들도 죽거나 다쳤다.
<AP> 는 이민자들이 수용소에 구금된 이유에 대해 당국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구금된 이민자 가족들의 증언을 인용해 구금된 이들이 돈이 떨어져 구걸하거나 사탕을 팔다가 당국에 의해 수용소에 갇혔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수용소에 관해 잘 아는 멕시코 관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 시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불법 이민자를 심사 없이 즉시 추방할 수 있도록 한 '타이틀42' 정책에 의해 미국 국경에서 추방된 이민자들 또한 이 시설에 구금돼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난민 지원 비영리단체인 레퓨지 인터내셔널의 레이첼 슈미트케 중남미 선임 활동가는 28일 성명을 내 수용소가 "사실상 감옥"이라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민자를 이러한 시설에 구금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미국 땅에 도달할 수 있는 이 지역엔 남미 전역의 이민자들이 몰린다. 특히 오는 5월11일 미국의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와 함께 '타이틀42' 만료를 앞두고 규제가 완화되리라는 기대를 품은 이민자들이 최근 쏟아지고 있다.
미 텍사스대 스트라우스 국제안보 및 국제법센터는 지난달 말 발간한 자료에서 이 지역 소재 이민자 쉼터에만 2200명의 이민자가 몰려 있고 쉼터 밖엔 더 많은 수의 이민자가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뉴욕타임스>는 국제이주기구 추정에 따르면 이 지역 이민자 수는 1만 200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멕시코 주요 국경 도시들도 이민자 홍수에 직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접해 있는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주 티후아나의 경우 이민자 쉼터에 56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가운데 1만5000명 가량의 이민자가 이 도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민자 급증으로 쉼터의 수용 여력이 바닥남에 따라 숙박시설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져 노숙하거나 구걸하는 이민자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시설 과밀과 이에 따른 안전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시우다드후아레스의 크루즈 페레즈 쿠엘라 시장은 이달 중순 이민자 수백 명이 이 지역과 앨패소를 잇는 다리로 몰려들어 월경을 시도한 뒤 이민자들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며 강경 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대기 중인 이민자는 수만 명 이상인데 미국 쪽 처리 건수는 하루 740건 가량에 불과해 당분간 '병목 현상'이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오는 5월 타이틀42 정책 만료 뒤에도 상황이 빠르게 해소되길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배타적 이민 정책을 비판해 왔던 바이든 대통령은 국경지대 불법 이민 급증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규제를 곧바로 완화하는 대신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고 있다.
미 정부는 5월부터 미국에 도착하기 전 거친 제3국에서 망명 신청을 하거나 보호를 요청하지 않은 이민자에 대해 망명 신청을 거부할 방침을 밝혔다. 난민 옹호 단체들은 이 정책이 사실상 망명 금지 조치라며 반발했다. 미 정부는 지난 1월 멕시코·베네수엘라 등 일부 국가 불법 이민자에게 적용됐던 타이틀42 정책을 니카라과·쿠바·아이티 이민자들에게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국경 지역 관리를 인용해 바이든 정부가 타이틀42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해 희망을 불어넣은 뒤 새로운 규제를 부과하며 멕시코 국경 지역에 사람이 몰리는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슈미트케 활동가가 이번 참사에 "멕시코 정부와 함께 이민자들을 멕시코에 머물도록 강제한 미 정부가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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