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은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린 가운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반(反)헌법 궤변", "정치재판소" 등 표현까지 쓰며 헌재의 권위를 정면 부정하고 나섰다. 재판관들을 향한 '색깔론'도 제기했다. 권한쟁의심판 청구 당사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결론에 공감할 수 없다"면서도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한 데 비해서도 더 나간 입장이다. 검사 출신인 한 장관과 판사 출신인 김 대표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상황도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2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법무부 장관 탄핵을 운운하는데 강도가 강도짓 들통나자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정작 탄핵 당해야 할 사람은 헌재 재판관 직책에 걸맞지 않게 얄팍한 법 기술자로 전락해 양심은 내팽개치고 세치 혀로 국민을 속이며 곡학아세하는 '민우국' 카르텔"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서도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 마디로 '민우국' 카르텔의 반(反)헌법 궤변"이라며 "민변,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로 구성된 '유사정당 카르텔'이 내린 이번 결정은 자신을 출세시켜 준 민주당에 보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헌법파괴 만행"이라고 했다.
특히 김 대표는 이날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사법부가 인정했다고? 정치재판소가 인정한 걸 사법부가 인정했다고 할 수 있나?"라며 "정치 재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반면 한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차 국회에 온 뒤 기자들과 만나 '야당에서 정부·여당이 헌재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3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질문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 뜻은 제가 장관으로서 그 결정의 취지에 맞게 법 집행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답한 뒤 "그렇지만 많은 국민과 법률가의 생각과 같이 저는 그(헌재의) 결론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말했다.
그는 이어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자금 수수 사건에서 노골적으로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면서 결과를 뒤집어보려고 하는 분들이 할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검수완박'법에 담긴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 관련 질문에도 한 장관은 "성남FC 같은 사건, 장애인이나 아동에 대한 피해를 공익고발한 사건을 경찰에서 불송치할 경우 검찰 조사를 거치지 않고 사장될 것"이라며 "그걸 폐지해야 하는 공익적 목적에 대한 설명도 들은 바 없다"고 민주당에 날을 세웠다. 그는 "헌재가 (법의) 내용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법무부의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각하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걸 바로잡을 방법은 입법밖에 없을 텐데 지금 몇 가지 법안이 나온 것으로 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법무부 입장을 설명하고 법안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검찰에 직접 수사권이 남겨진 부패·경제 범위 확대 △ 무고, 위증 등 사법 질서 저해 범죄를 검찰 직접 수사 범위에 포함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 철회 의사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한 장관은 명목상으론 헌재 결정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는 "오히려 이번 결정으로 개정 법률의 취지에 입각해 저희가 개정한 시행령이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에서는 그걸(검수원복 시행령) 원래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도대체 깡패, 마약, 무고, 위증 사건을 국민을 위해 수사하지 말아야 할 건 도대체 뭔가"라고 했다.
그는 "헌재 공보관이신 것 같은데 '그(검수원복) 시행령은 헌재의 심판 범위에 들어가 있지 않았고 개정 법률에 맞춰서 개정된 것이기 때문에 바뀔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렇게 인터뷰한 것을 봤다"며 "법률가로서 대단히 상식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개정한 시행령은 정확하게 그(검수완박) 법률의 취지에 맞춰 개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장관은 이날 법사위 현안질의에서도 헌재 결정 문제를 놓고 야당 법사위원들과 공방을 벌였다. 한 장관은 헌재의 각하 결정과 관련, 민주당에서 자신의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 "제가 사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저에게 사퇴하라고 하시는데, 만약 이 결과가 4:5가 아니라 5:4였으면 이 법 밀어붙이신 민주당 의원들 다 사퇴하실 생각이었는지 저는 묻고 싶다"고 맞받았다.
한 장관은 "위장 탈당 같은 절차가 위법이라는 점을 헌재 결정조차도 명확하게 인정했다"며 "입법 과정에서 위장 탈당은 위헌, 위법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지적된 상황에서 사과는 제가 할 것이 아니라 이 법을 밀어붙이신 민주당 의원들께서 하셔야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한 장관은 다만 "헌재 결정은 다툴 방법이 없다"며 "존중하고 거기에 기반해서 법률을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그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만 존중하겠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야당 위원들이 이에 대해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거냐'고 지적하자 "제가 언제 불복한다고 했느냐"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 효력에 맞춰서 법을 집행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이날 한 장관은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재판관도 '검사 수사권은 헌법상 권한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결정했다. 김기현 대표나 국민의힘 의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런 결정이 일부 민변이나 우리법연구회, 국제법연구회 출신 재판관들에게만 한정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국민의힘이 헌재의 권위에 도전한 것을 문제삼은 데 대해서는 "핵심을 잘못 이해하고 계시다"며 즉답을 피했다.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이 "장관과 검사 6인이 청구한 권한쟁의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은 장관 입장에서 이겼나, 졌나?"라고 물은 데 대해서도 한 장관은 "그렇게 세상 일이 졌나 이겼나…(라고 나눌 것은 아니다)"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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