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부모잖아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그에 연대하는 주요 4개 종단 인사들이 14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 2월 유족들이 요구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및 면담'에 대한 대통령실의 답변을 촉구하며 대통령실 방향으로의 행진을 시도했다. 경찰이 이를 막아서면서 현장 일대에선 몸싸움 등 충돌이 벌어졌다. 유족들은 "당신도 부모이지 않나",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건가"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모인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개 종단 소속 종교인들은 '대통령의 면담과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10.29 이태원 참사 4대종단 기도회'를 열고 "윤 대통령은 이제라도 깊은 참회의 마음으로 유가족들과 만나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유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현장에서 소속 종단의 의례에 따라 차례로 기도회를 치른 각 종단 관계자들은 "유가족들의 분노와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연대할 것"이라 다짐하는 한 편 "유족들을 만나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윤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어려운가" 물었다.
양한웅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유가족들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과의 면담 및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했는데 대통령실에선 아무 소식이 없다"라며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윤 대통령이 유가족을)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종교인들이 모였다"라고 이날 기도회의 배경을 설명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앞서 지난 2월 23일과 3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윤 대통령의 면담 및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추모행진을 진행한 바 있다. 2월 기자회견 당시엔 국민통합비서관실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 유족들의 면담요청서를 수령했지만, 대통령실은 면담·사과 등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개신교 기도회를 진행한 교회개혁실천연대 소속 임한성 목사는 "국가의 방임으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자들은 입술을 굳게 닫았다"라고 지적하며 윤 대통령의 적절한 사과와 면담 수락이야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사 희생자 박가영 씨의 어머니 최선미 씨는 이날 현장을 찾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데 무얼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로부터 나의 아이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산산이 조각나버린 나와 다른 유가족들의 삶을 되찾고자 요구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진심을 담아 깊이 사과하길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행정관급 대통령실 관계자가 4대종단이 작성한 면담요청서를 수령하고자 현장을 찾았지만, 종교인들과 유가족들은 "요청서만 휙 가져가고 또 입을 닫는 건 거부한다"라며 행정관과의 즉석 약식 면담을 요청했다. 대통령 사과·면담 등에 관한 충분한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혼자서 결정할 순 없다"는 관계자 입장에 따라 해당 요청은 불발됐다. 이에 유족과 종교인들은 "대통령 집무실 앞으로 행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경찰이 이를 막아서며 현장 일대에선 몸싸움 등 다소의 충돌이 동반된 대치전이 벌어졌다.
특히 대통령실 관계자에게서 "(면담 요청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유족들은 "이미 두 번이나 검토했지 않았나" 되물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한 유족은 "저희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당신들도 부모이지 않나" 호소하며 오열했다.
대치 과정에서 고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는 "제발 길을 터달라"며 경찰이 설치한 펜스를 넘어 집무실 방향 인도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 제지에 막혀 끌어내려졌다. 곳곳에서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는 와중에 종교인들도 앞으로 나섰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유족과 경찰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으며 "평화적으로 (행진) 하겠다는 거다. 길을 열라"고 수차례 외쳤다.
20여 분 동안 대치전이 이어지자 용산경찰서 경비과는 차량을 파견해 "경찰이 설치한 질서유지선을 미는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현재 체증을 실시하고 있다"라는 방송을 수차례 내보냈다. 경찰 측은 그러면서 "(행정관 면담을 요청하려면)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부 유족은 "지금까진 왜 협의를 안 했나, 이게 협의를 한 일인가"라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기도회가 진행된 전쟁기념관 정문 앞에서 시작된 대치는 해당 장소에서 수십여 미터 떨어진 대통령집무실 정문 건너편 횡단보도까지 이어졌다. 다만 경찰 측의 적극적인 통제에 유족들은 이날 끝내 집무실 인근으론 접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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