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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환경이 무슨 상관인가요?

[인권학의 프런티어] 인권과 환경을 잇는 '공존'의 가교, 자연의 권리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사회학계 신진 김민성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주.

3월 6일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필자가 환경단체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2012년 국내 대표적인 양서류 서식지였던 세종 장남평야에 중앙공원 조성이 확정되면서 멸종위기종 금개구리의 집단 서식처가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당초 계획된 공원 조성계획에는 복토와 인공식생을 조성하는 조경방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에 필자는 주민들과 현장 모니터링에 나섰고, 단체 차원에서도 LH세종사업본부, 환경부 등과 수차례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2014년, 다행히도 약 30만 평의 금개구리 서식지 원형보전이 결정되었다.

개구리들은 해가 지면 활동한다. 보존지역 이외에 서식하던 금개구리들의 이주를 돕기 위해 필자는 저녁 7시부터 습지로 들어가 새벽까지 개구리를 잡아야 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뿌듯한 성과였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인간을 위한 녹지와 금개구리를 위한 녹지는 다른 것인가?

세월이 흘러 인권학을 전공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의문은 인권과 환경의 관계를 다루는 필자의 핵심 강의 주제가 되었다. 수강생들은 묻는다. "인권은 인간이 존엄하다는 이야기인데, 그것과 환경이 무슨 상관이에요?"

▲세종시 장남평야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금개구리의 모습. ⓒ김민성

인권과 환경? 잃어버린 연결고리

인간이 환경을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연과학적 방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학, 지구과학, 물리학, 생물학이 여기에 속한다. 주로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학만으로 자연현상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에 둘째, 사회과학적 방법이 등장했다. 이 방법의 목적은 자연현상 발생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는 데 있다. 사회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 환경보건학 등 응용과학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자연과학의 성격을 넘어선 종합학문으로서의 환경과학은 국제적으로 1960년대부터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1973년 최초로 서울대학교에 환경대학원이 창설되었다.

자, 환경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된 점이 있다. 바로 환경은 굉장히 다층적이고도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환경과 인권을 따로 구분하여 인식하려는 태도에는 위와 같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환경과학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나아가 이러한 태도로부터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담론'이 무엇인지를 유추해 낼 수도 있다. 가령 한국처럼 짧은 기간 많은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의 경우 '개발'은 많은 것을 용인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된다.

근대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초, 심각한 공해문제가 발생하자 일부 자연 과학자들은 오염도를 측정하여 그 위험성을 대중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우선주의를 고수했던 국가 정책 기조 속에서 환경과 관련된 문제제기는 체제에 반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생태계 보전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을 연구하려는 사회과학의 발전은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성장과 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학문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환경은 도시 및 산업 공간 구축과 관련된 환경, 즉 '건조된 환경'(built environment)과 연관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발전된 도시일수록 사람이 살기 좋다'라는 생각이 공감 받는 사회다. 개인의 재산, 건강, 안전과 연관된 권익이 지켜질 때 인권이 존중되는 것이라는 인식도 견고하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생태계는 아주 쉽게 인간에 의해 변형된다. 사람이 걷기 좋은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숨 쉬는 토양이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멀쩡한 습지가 메워진다. 개발 담론은 사람에게'만'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어왔다.

인간과 환경의 가교, '자연의 권리'

이제 사막화, 해양오염, 대기오염, 기후위기 모두 인간이 초래한 것이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걱정을 넘어 '기후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모두 좋은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최근 인권학계에는 오래된 성장 담론을 환기하고 사람과 생태계를 밀착시킬 새로운 담론이 논의되고 있다. 바로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다.

2022년 11월, 한국인권학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황준서 정치학 연구자는 생태계의 일부로서 인간의 지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인간 행위에 대한 생태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를 전환하려는 태도를 갖출 때 가능하며, 이를 위해 자연생태계의 지위와 존엄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풍경으로만 생각했던 숲과 나무에 권리가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굳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필요는 없다.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북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최근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시민들의 운동이 활발하다.

1998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까지 북아일랜드에도 우리와 유사한 과거사 문제, 공동체 갈등이 존재했다. 평화협정 이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한 사안은 환경문제였다. 분쟁 동안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총 499㎞에 달하는 (남)아일랜드와의 접경지역에 엄청난 쓰레기가 쌓였던 탓이다.

북아일랜드 시민들은 민족과 종교라는 기존의 분열 기제를 초월해 '자연의 권리 인정'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과거 아일랜드 독립 저항을 넘어서 '녹색국가를 위한 저항'으로의 전환을 통해 국경지대 생태계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자연을 통해 평화를 위한 관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2018년 콜롬비아 최고법원은 아마존을 권리주체로 보고, 정부에 아마존 보호 조치를 명령했다. 2017년 뉴질랜드 정부는 황거누이족이 신성시하는 자연물인 황거누이강 등의 자연물을 법인으로 인정했다. 강 유역이 자체적인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세계 시민들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3만 5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서울에서 진행한 기후정의행진. ⓒ프레시안

기후붕괴 해결의 첫걸음, 자연과의 공존을 성찰하기

인권이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인간 고유의 존엄함을 나타내는 단어라면, 자연의 권리는 인간의 착취로부터 자연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만 자연이 인간의 말을 구사할 수는 없으므로 자연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리인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이 열린다. 편리한 생활 뒤에 감쳐진 억압된 자연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태도로부터 사람과 생태계는 비로소 연결된다.

그런데 인간만의 편의를 위해 이루어지는 개발과 파괴에 대항한다면 경제발전이 멈추고 빈곤해지게 될까? 답은 '아니오'다. 오히려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등 환경조건이 악화되면 사회적·정치적 경쟁과 갈등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 증진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환경훼손과 남용을 전제로 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여성, 노약자, 취약계층 등의 삶에 필요한 복지재원을 후순위로 놓음으로써 인권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자연의 권리는 기후붕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개념이다. 이제 인간을 위한 환경 조성에 대한 구상을 멈추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해야 한다. 평화와 생태적 사회를 위한 전환은 지구별에 대한 겸허한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다뤄지는 주요 인권 담론을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학술논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자료> 

2022년 하반기 학술대회 ‘한국의 인권 문화와 담론’: 황준서 발표 ‘자연의 권리로 재구성하는 평화담론: 한국의 과제.’

http://kahrs.or.kr/?page_id=1007&uid=90&mod=doc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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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한국인권학회 이사. (현)환경사회학회 연구이사. (현)한국인권학회 편집간사. 사회학 박사로 유튜브 '눈맑은기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성공회대에서 「환경문제의 인권적 전환: 충남 서북부 환경취약지역 주민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연구분야는 인권사회학, 인권 및 환경문제의 해결방안,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등이다. 주요 연구성과로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활동경험에 대한 연구: 대전지역 시민단체 사례를 중심으로(2018)', '은평구 노인인권실태조사 및 중점과제연구: 재가노인을 중심으로(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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