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때문에 시끄럽다. 대다수 언론은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지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여론의 상당한 역풍이 예상된다는 식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워낙 밉상인데, 자기 사정이 급하다고 그걸 또다시 이용한다는 건 격이 많이 빠지는 짓이라는 지적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사람들은 구속 수사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전혀 묻지 않는다. 마치 검찰이 혐의를 건 것만으로 유죄가 빤히 입증되기라도 했다는 양, 죄를 지었으면 국회의원도 당연히 구속되어야 한다는 소리만 반복한다. 이런 바람몰이 속에서 검찰의 구속 수사에 대한 반대가 재판정의 선고에 대한 거부와 순진무구하게 혼동된다.
수사에 필요한 경우 영장을 발급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데, 한국의 제도는 영미의 제도와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 한국에서는 구속 기간의 단위가 10일이고 다시 10일의 연장이 가능한데, 영미법에서는 그 단위가 48시간 정도고 살인 같은 중범죄의 경우 연장이 가능하지만 96시간 안에는 기소하거나 석방해야 한다.
기간의 길이가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여기에는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관한 중대한 인식의 차이가 담겨 있다. 범죄를 계속 저지를 우려가 있거나 재판을 회피하고 도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피의자가 아니라면, 수사 목적의 구속은 가급적 단기간에 끝내고 피의자로 하여금 판사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 영미법의 취지다. 역으로 말하자면, 검찰은 수색이나 압수를 통해서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의 관심을 끄는 사건의 경우, 한국 검찰에 소환되면 10시간이 넘도록 심문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심문을 여러 번 겪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기에 시간이 이토록 많이 걸리는지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검사가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묻지 않고서야 시간이 그렇게 걸릴 리가 없다. 피의자의 입장을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라고 간주하고서, 그 거짓말을 깨뜨리기 위해 압박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고문과 같다. 증거와 논리로써 피의자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과 체력적 시련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때리거나 매다는 고문에 비하면 얼핏 신사적인 것처럼 비칠지 모르나, 여전히 피의자가 원치 않는 대답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고문에 해당한다.
검사가 아직도 이런 수법을 동원하는 까닭은 자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증거와 논리를 중심으로 재판이 이뤄진다면, 피의자의 자백 여부는 부수적인 의미밖에 없다. 영미법에서 구속 기간을 최소화하고, 검사로 하여금 가급적 신속하게 공소를 제기하게끔 유도하는 데에는 곧 자백을 강요할 시간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영장 청구서에 적힌 혐의 중에는 성남시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쳤고, 성남에프시 이사장으로서 관내 기업들에게 "133억50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 혐의가 물증으로 뒷받침된다면 기소해서 재판정에서 처벌받게 하면 되지, 굳이 구속할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재 물증이 부족해서 기소를 못하는 것이라면, 피의자를 구속한다고 물증이 나올 리가 없다. 검사들이 자백을 물증과 혼동하지 않는 한 그렇다.
증거를 인멸할 우려라는 소리도 이 경우에는 말이 안 된다. 이 사건은 작년 선거판부터만 쳐도 이미 일 년이 넘게 공개적인 논란에 올랐다. 증거인멸 때문에 구속해야 했다면 벌써 여러 달 전에 영장을 청구했어야 말이 된다.
무슨 증거를 어떻게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장 청구를 못했다면, 지금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멸이 우려되는 증거를 특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리도 되지 못한 장황한 문자들의 엄청난 분량으로 영장 판사에게 부담을 안기는 전략밖에 쓰지 못하는 것 아닌가?
검찰은 그 문서에 구속 영장 청구서가 아니라 공소장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이 보기에 "명확하다"는 그 혐의들이 재판정에서도 명확한 것으로 인정되는지 겸손하게 결과를 기다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구속 영장 청구서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검찰은 수사해서 기소하는 본분마저 저버리고, 마치 자기들이 판결까지 내리겠다는 듯 월권을 저질렀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때로 남용된다고 해서, 검찰이 내세우는 구속 사유가 모두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이라 구속을 모면한다고 생각하면서 배가 아픈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정반대로, 국회의원마저도 자백을 강요당하는 수모를 저토록 겪는 나라인즉, 검찰이 보통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수모와 겁박의 정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지 가늠이 안 된다.
영미법에서는 피의자가 자백하면 재판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 재판이란 피의자가 검사의 논고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 논쟁을 처리하기 위한 공동체의 절차다. 한국법이 영미법을 추종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 대목은 곰곰이 음미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자백을 강요하면서 고문이 아니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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