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 의원 : 예전에는 국민들이 국가가, 정부가 나를 책임져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정부는 네가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내몰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장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민 장관 : 그건 약간 과한 말씀이고요.
유가족(방청석에서) : 과하긴 뭐가 과해.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과해? 우리 애가 죽었다고! 죽었다고!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한 유가족이 몸서리를 치며 절규했다. 이 장관의 모든 말이 유가족에게는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청문회장 울타리 밖에서 이 장관을 지켜본 유가족들의 반응은 고성과 한숨, 흐느낌의 무한 반복이었다.
이 장관은 이날 유가족 앞에서 처음으로 허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는 "이태원 사고에 대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분들에게 정부를 대표해서 또 개인적인 자격을 포함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자발적 사과는 아니었다. 야당 특위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의 사퇴 요구에 에둘러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사과는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고서야 나온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봤다.
방청석에 앉은 열 명 남짓한 유가족들은 회의 초반 침착한 모습으로 청문회를 지켜봤다. 그러나 평정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정의당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 장관이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비서실에 명단을 확보하라고 지시했지만 서울시에서 개인주의 보호를 이유로 넘겨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시는 지난 기관보고에서 참사 이틀 후인 지난해 10월31일 3차례에 걸쳐 유족 명단, 연락처가 포함된 사망자 명단을 행안부에 제공했다고 한다"며 이 장관의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이 장관은 "장혜영 의원님이 말씀하신 유가족 명단이라는 개념하고 제가 생각하는 유가족 명단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저희가 서울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서 받은 것은 사망자 현황 파일"이라고 했고, 유가족들은 "말장난하고 있다"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장 의원이 위증 의혹을 제기하며 이 장관의 탄핵을 언급하자 일부 유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여당 특위위원들은 이 장관에 대한 야당 위원들의 압박성 질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지나치게 사퇴를 강요하고 위증이라고 단정하고 나아가 탄핵까지 언급한다"면서 우상호 특위 위원장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자 한 유가족이 큰 소리로 "그만들 좀 하라. 말장난하지 말라"며 여당 위원을 질타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거듭 "이상민 증인에게 '위증이다, 아니다' 이런 것이 집중이 된다면 이것은 유족들이 바라는 진상규명에도, 진상조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이 유가족은 "아니오, 유족은 그걸 바랍니다"라고 크게 고함을 쳤고, 경비직원들이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유가족은 이 과정에서 '사망자'라는 표현이 거듭 나오자 괴롭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왜 사망자라고 하는 거야, 희생자라고 해야지"라며 작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가 아닌 '이태원 사고'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이 장관이 이날 질의 초반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과정에서 '사고'라는 표현을 쓴 점을 지적했고, 이 장관은 "그냥 특별한 의식 없이 발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한 유족은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 건데"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 장관이 답변할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한숨이 이어졌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이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하겠느냐'고 질의하자, 이 장관은 "글쎄,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나중에 생각을 한대. 아이고…"라며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유가족들을 답답하게 한 것은 이 장관뿐만이 아니었다. 유승재 용산 부구청장은 "사태를 예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의 질의에 "그건 예상했다"면서도 "한두 명 정도 다칠 걸로 예상했지, 그렇게 대규모로 참사가 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하자, 유가족들은 "이게 말이 되냐"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 의원도 "한두 명은 사람 생명이 아니냐"고 크게 질타했다.
이 장관, 유 부구청장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한 유가족들은 민주당 이해식·조응천 의원의 질의에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제가 볼 때 이것은 국가에 의한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건에서 유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했던가.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어떤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던가. 왜 뿔뿔이 흩어놓았는가. 왜 1시 전후로 유족들한테 연락하지 않았는가. 신원이 확인된 분들한테도 왜 연락하지 않았는가. 이건 너무나 중대한 물음입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
“장관님, 유가족분들하고 한 번 간담회 하신 적 있습니까? 70일이 지났는데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 주지 못합니까?”민주당 조응천 의원
유가족들 "책임지겠단 사람이 없다...자리가 목숨보다 중요한가"
오전 청문회가 끝나자 유가족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한 유족은 허탈한 듯 "숨 쉬는 것 말고 다 거짓말"이라고 되뇌었고, 또 다른 유족은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종철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여야 특위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과 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이 대표의 손을 잡으며 만류하자, 이 대표는 양당 간사에게 "아이들 잃은 부모 마음을 모르니까 날 막는 것 아니냐"며 "왜 저 사람들 대변을 해주시냐. 만날 기회는 다 죽여놓고 그게 할 소리냐"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이 대표는 이어 "똑같은 자식 가진 아비로서 저희 유족이 나와서 궁금한 것 (질문)할 수 있게 해주셔야 한다"면서 "이거(유가족이 참여한 3차 청문회) 못하게 하면 국민들 입과 귀를 막는 것"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민 부대표는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저 자리가 중요한 거냐. 대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이상민 장관이 본인은 몰랐다고 한다. 참 이해할 수 없다. 책임자가 모르고 직원들만 알고 있으면 책임자는 왜 필요한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지 않느냐. 국민 혈세 받아가면서"라며 "저는 그게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청문회에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나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1명도 아니고 한 500명 1000명 죽었어야 그때 그러면 만나주실 거냐, 연락주실 거냐"면서 "왜 저희들을 외면하시는지 행정부에 윤 대통령님께 한번 말씀드려 달라. 저희는 윤 대통령이 불러주시면 고맙게는 아니지만 만날 수 있다"고 부탁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분명히 아랫사람만 잘못한 게 아니"라며 "제발, 제발 좀 규명 좀 해달라"고 절규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하 관계자에게만 법적 책임을 묻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한 점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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