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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쓰려면 대타 구해라' …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교사들 2차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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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쓰려면 대타 구해라' …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교사들 2차 피해

공론화 거부에, 쓰지도 못할 휴가 주고 …  피해자 '교권보호' 조치했다?

자유서술형 교원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성희롱 피해를 당한 교사들이 학교 측의 미흡한 대응으로 사실상의 2차 피해에 내몰리고 있다. 가·피해자 분리 등을 위한 교권보호 조치에 따라 피해자에게 병가가 주어졌지만, 학교 측은 '병가를 내기 위해선 피해자 본인이 직접 수업 대타를 구해올 것'을 요구했다.

세종시 소재 ㄷ 고등학교의 피해교사 A 씨는 지난 5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같은 상황을 밝히며 "학교의 교권보호 조치가 (피해자들에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지난 2일 교원평가 답안을 열람하며 성희롱 피해 사실을 확인한 A 씨는 현재 사건을 수사기관에 의뢰한 상태다. 소셜미디어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공론화' 계정을 통해 사건의 교외 공론화에도 나섰다. 학교 측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가해자의 자수 및 계도를 위해 사건을 교내에서 공론화하자는 피해자 측 제안도 거절했으며 △와중에 익명의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는 등 피해 경험은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앞서 지난 1일부터 발생했다. 11월 30일까지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진행된 교원평가 결과를 12월 1일부터 교사들이 열람했고, 열람 결과 복수의 교사들을 향한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 발언들"이 확인됐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의 이름을 특정해 "XX 크더라. 짜면 모유 나오는 부분이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남겼다. 아예 피해자의 이름을 성기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변형해 조롱하기도 했다. 욕설과 함께 "기쁨조나 해라"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이 남겨진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20~30대 여성 교사들이다.

온라인 공론화를 통해 사건이 알려질 당시 피해 교사들은 모두 4명이었지만, 5일 A 씨는 "교원평가를 열람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열람을 시작하면서 추가적인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래픽=정은영(프레시안)

"출근길이 두렵습니다" … 누군지도 모르는 가해자와 한 교실

피해를 인지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A 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사건을 수가기관에 맡길 생각이 없었다." 원한 건 학교의 도움으로 익명의 가해자를 찾아, 적절한 처분과 계도를 행하는 일이었다.

지난 1일, A 씨보다 먼저 피해를 인지한 교사 B 씨가 학교 교감과 면담을 진행하며 가해자 확인을 요청했다. 학교는 교육청을 통해 시스템 상의 익명성 때문에 가해자를 확인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답변을 전했다.

이어 2일 A 씨가 학교 관리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교내 공론화를 통해 가해 학생에게 자수 기회를 주고, 학생이 자수를 하면 교내 선도 처분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관리자급 회의를 통해 학교 측이 내놓은 결론은 "공론화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학교 내에 동요가 생길 수 있다', '말이 퍼지면서 (피해자) 2차 가해가 생길 수 있다', '가해 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대로 덮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피해자들은 결국 온라인 공론화 및 수사 의뢰를 결심했다. "가해 학생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 계속해서 학생들로 가득한 복도와 교실에 서야 하는 것도 매 순간이 트라우마와 분노, 고통과 모멸감, 배신감으로 점철됩니다", "월요일에 출근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A 씨는 지난 4일 소셜미디어의 공론화 계정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2일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교사들이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공개한 '2022 고등학교 일반교사 학생만족도조사(교원평가) 결과에 기입된 성희롱 발언 중 일부 ⓒ교원평가성희롱공론화 트위터 계정

'대타' 데려와야 쓸 수 있는 병가가 교권보호 조치? … 2차 피해 내몰리는 피해자들

교내에서 교육활동 침해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각 학교는 '교권보호 위원회'를 가동해 피해 교사의 교권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프레시안> 취재 결과 현재 ㄷ 고등학교의 교권보호 조치는 피해자들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성희롱 사건은 학생에 의해 발생한 교육활동 침해이자, 젠더 기반 폭력에 취약한 여성 교사들이 특히 빈번하게 경험하는 젠더폭력 사건이다. 지난 9월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도 이미 지적됐듯, 사업장 내에서 벌어진 젠더폭력 시 핵심 대응 중 하나가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다. 이번 사례에서 사업장인 학교는 가해자의 특정을 거부했다. 대신 가·피해자 분리와 심리회복 등을 위한 교권보호 조치로 피해자에겐 병가·특별휴가 등이 주어졌다.

A 씨는 해당 조치가 오히려 또 다른 '2차 피해'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가 몰려있는 연말에 병가를 쓸 경우 동료 교사에게 자신의 업무가 과중된다는 부담이 남는다. 이에 더해 병가를 신청한 A 씨에게 학교 측은 '직접 수업 교체를 수행해야 병가가 가능하다'고 통보하기 까지 했다.  담당 수업의 '대타'를 직접 구해놓고 병가를 쓰라는 뜻이다. 

병가 기간 동안 예정된 수업이 10개라면, A 씨는 10명의 동료 교사에게 직접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수업 교체를 부탁해야 한다. 5일 통화에서 A 씨는 "급한 업무를 마무리해 놓고 7일부터 병가를 쓸 예정이었는데, 담당 행정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라며 "이건 사실상 병가를 쓰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동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혹은 동료들 사이 병가 이유에 대한 추측이 돌면서 성희롱 피해자가 특정될 우려도 있다. 피해자가 자신의 상황을 직접 설명해야 하는 경우, 그 때문에 집단 내 피해자가 특정되는 경우는 모두 사실상의 2차 피해로 볼 수 있다.

A 씨는 특히 "원래 병가를 쓰면 업무 담당자가 대신 보강 신청을 해주곤 한다"며 "(학교 측에서) 일부러 이러나 싶기까지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A 씨는 현재 학교로 감사를 나온 교육청 장학사에게 해당 조치에 대해 항의한 상태다. 장학사는 A 씨에게 '학교 교감을 통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이 지난 2021년 9월 9일 서울시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열린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발표'에서 교육부에 젠더폭력 없는 성평등한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명무실 보호조치, 폐쇄적 환경까지 … 여성 교사들에게 교육현장은 '성폭력 사각지대'

전문가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재한 교육현장의 대응 시스템'과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를 지적한다. 전문성 없는 현장의 대응 시스템이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기에 성폭력을 "덮고 넘어가려 하는" 관성적인 교내 문화가 겹쳐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교내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디지털 환경을 이용한 성희롱,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지금 교육현장의 교권보호위원회는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건에 '젠더적 접근'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부위원장은 "익명을 활용해 성희롱을 가능케 하는 교원평가 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있다"면서도 "다만 '교원평가'라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교사들은 언제든 다양한 성희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내 성폭력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닌, 교육 현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쿨미투 사태를 계기로 지난 2019년 신설된 서울시 교육청의 '성평등 전담팀'처럼 젠더폭력 사건을 총괄할 수 있는 전문부서가 필요하다는 게 손 부위원장의 지적이다. 현재 각 학교에는 교권보호위원회와 더불어 성폭력 사안 대응을 위한 성고충심의위원회가 존재하지만, 교원단체들은 "각 위원회의 권한과 범위가 한정된 채 분리 운영되는 탓에 그 효과가 덜하다"고 지적해왔다.

성폭력 사안에 대응하는 학교 측의 폐쇄적인 문화도 도마에 올랐다. 손 부위원장은 "교내에서 성폭력이나 페미니즘 백래시 등의 공격에 노출된 교사들은 업무상 불이익이나 소문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대부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했을 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식의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전교조가 전국 유·특·초·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11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한 방식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중 하나 이상의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한 20~30대 여성 교사의 비율은 66%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중 65.2%는 성폭력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업무 및 학교생활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서', '소문, 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등이 꼽혔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에선 공공기관과 민간조직을 통틀어 "위계적 문화가 있는 조직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경우가 더 많았"으며 "성희롱 피해 이후 2차 피해의 경험률" 또한 위계적 문화에 따라 커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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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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