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슈가 '정치 사안'으로 전화(轉化)되느냐의 여부는 정치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조건, 상황에 따라 결정되며, 정치를 구성하는 행위인자들의 인식과 대처 방식에 달렸다.
정치집단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안을 정치공학의 프레임으로 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공학과 정치화를 제어하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느냐의 여부는 인사권과 수사권 등 모든 정치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여권과 관련 공직자들의 접근 태도에 달렸다. 특히 상황 관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파워그룹의 행태에 따라 '정쟁화'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관점에 따라 '정치적인 것'이 아닌 게 하나도 없겠지만 한국사회에서 특정 이슈가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며 '정치화'할 때 십중팔구 정치의 본령인 갈등 관리와 충돌의 해소가 아닌 위기의 증폭과 대치의 증가라는 반(反)정치를 결과한다. '정치화'가 '정쟁화'의 의미로 읽히는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대하고 접근하느냐가 정치집단들이 이번 참사를 정치화할 유혹을 느끼느냐 여부의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이미 여권은 '참사'가 '정치화'할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이번 참사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가 참사 발생 열흘이 넘도록 보편적 상식과 문법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국가의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서 어떤 공무원에게서도 헌법이 규정한 국민에 대한 봉사자의 인식과 역할을 찾아볼 수 없으며, 국가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명백히 국가의 실패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사권자의 경질, 문책 여부를 떠나 참사 발생 후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한 공직자가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수사가 아니더라도 경찰 지휘체계와 보고체계는 물론 행정안전부, 서울시, 용산구청 등 관계기관장들의 안이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지휘보고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고, 기강은 무너질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경찰청장이 참사 당시 음주 후 문자와 전화 보고를 못 받는 등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면서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경찰행정의 수장인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경찰 지휘라인의 직무유기와 기강해이가 명백하게 밝혀진 이상 지휘관인 행안부 장관과 그의 직속상관인 국무총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 역시 사의 표명을 하지 않는 것도 공직자의 처신과 태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사건 당일 이원종 서울시장을 경질하고 이영덕 국무총리 역시 당일 사의를 표명했다.
선출직도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공직자다. 여당은 더 이상 관련 고위 공직자를 비호하거나 옹호해선 안 된다. 국회의 일각으로서 야당보다 선제적으로 책임을 추궁하고 진상규명에 모든 가용한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야당과 일부 진보 진영 역시 이를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노려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구호로 내건 이른바 진보단체가 참사를 대통령 퇴진의 지렛대로 활용해선 안 된다.
이태원 참사가 정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수준으로 볼 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태원 참사가 또 다시 세월호 사건처럼 진영으로 나뉘고 반정치를 결과한다면 우리 사회가 치룰 대가가 너무 크다.
우선 국무총리는 사의라도 표명해야 한다. 수리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리고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경질은 기본이다. 결국 진영 간 대결 구도가 되풀이되지 않고, 왜곡된 정치화, 진영화를 막는 건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연합의 인식에 달렸다.
참사를 대하는 여권 핵심의 인식이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인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이번 참사와 관련한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쏟아지고 있고 이미 진영논리가 결합하기 시작했다. 여권의 파워그룹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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