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가장이 자신의 가족들을 처참하게 파괴했다. 사람의 온기가 있었던 집 앞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고 혈흔이 남은 발자국과 출입을 통제하는 폴리스 라인만이 사건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 날 '광명 세 모자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전날(26일) 경찰과 취재진으로 북적이던 모습과 달리 이 곳 아파트는 강력사건이 발생한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바로 옆 동에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고 주민들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듯보였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주민 A씨에게 사건을 접한 심경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일이 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건지 마음이 안 좋아요, 특히 아이들 생각하면 더 안 좋죠. 그게 무슨 아비고 부모입니까"라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 B씨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남도 아니고 가족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여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세 모자를 안다는 같은 동 주민을 만났다. "아이들이 너무 안됐다"며 힘겹게 말을 꺼낸 이 주민은 "아이들이 부모가 부부 싸움을 할때 엄마 편을 들었던 모양이야"라면서 "아마 그 날도 아이가 엄마 편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게 아닌가 싶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웃 주민들은 예상보다 담담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놨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동네가 충격에 빠져 있진 않을까, 질문조차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자의 마음마저 헤아려 주는 듯했다.
조금은 안도감이 들 즈음 또 다른 주민이 입을 열었다. "아파트가 그렇잖아요? 바로 옆집이면 사정을 잘 알려나? 누가 어떻게 사는지 속속들이 (내막을) 알진 못하죠"라고 말했다.
사람은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상관없이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가장 아프게 느껴진다고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주민들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시간이 멈춘 건 오직 사건이 발생한 참혹했던 그 곳, 폴리스 라인 안 뿐이다.
"ATM(현금 자동입출금기) 기계처럼 일만 시켰다"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피의자인 '가장'이 꺼낸 말이다. 어떤 피해의식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퇴직 이후 겪은 경제적 문제가 가족간 갈등에 불을 지폈고, 그 갈등이 이번 참극의 발단이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대내외적 악재와 불확실성에 모두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그 만큼 가계 위기를 겪는 가정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원작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다독여주는 '가족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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