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오십분에 걸쳐 화상회의를 통하여 서울에 와 있는 제니퍼 권(Jennifer Kwon Dobbs)교수와 경주에 사는 채희완 사이에 탈춤에 관한 대담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고 원만한 소통을 이끌어 낸 이는 국제입양아문제에 가장 정통한 김도현 목사이다.
김도현 목사는 해외입양인과 함께하는 <뿌리의 집> 대표이며, 대학 시절에는 맹렬하게 탈춤 부흥운동(서울대 사대 민속가면극연구회, 73학번)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차분하게 정성들여 우리말과 영어로 두 사람 사이의 통역을 맡아주었다.
통역과정에서 좀더 원활한 의사 개진을 위하여 김도현 목사가 덧붙인 영문 발언 내용은 여기에서는 싣지 않기로 한다.
제니퍼 권: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My name is Jennifer Kwon Dobbs. I'm a professor at St. Olaf College . I teach English and I'm also specialist in critical adoption studies. I'm also poet and I'm very excited to meet you I will be teaching a course where I will lead students to Korea In 2024 and I'm very excited to learn from you about your expertise on the usage of traditional arts for pro-democracy movement especially in the 1970s through the 1980s
김도현: 제니퍼 권 돕스 선생님은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올라프 대학의 교수님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시인이면서, 그 다음에 특별히 '비판적 입양학' 이라고 입양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하는 전문학자이기도 합니다. 2024년에 자기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에 올 건데…. 우리 교수님을 만나보시면 어떨지.
채희완: 2024년이라 2년 후이면…. 내 후년인데.
김도현: 예. 교수님을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특별히 반갑고 더더구나 이렇게 전통적인 한국의 문화를 가지고 현대 사회의 어떤 민주화 운동, 정치적인 흐름에 대해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사하고,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요.
질문 좀 하고 싶다고 그러네요. 어떻게 해서 전통적인 예술, 특별히 탈춤 예술을 가지고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과정을 끌고 들어오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대요.
채희완: 음, 그 내용을 조금 나눠서 질문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탈춤이나 민중 문화를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그리고는 그 다음에 접하면서 어떻게 문화적인 측면이 정치적인 측면으로까지 가게 됐는지, 이렇게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요. 그냥 너무 한꺼번에 물어보시면, 하다 보니까 정치 문화 운동으로 해석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밖에 얘기할 수가 없군요.
김도현: 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 탈춤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됐는지?
채희완: 대학에 입학 전까지는 탈춤에 대해서 접한 것이 아주 얼마 안 됩니다. 실제로 국어 책에서 본 정도로, 그냥 <한국연극사>의 한 종목으로 나온다는 정도의 이해 밖에는 없었는데 대학에 들어와서 <탈춤 연구회>가 생겨나고, 거기서 탈춤을 이제 몸으로 실천적으로 접하게 되면서부터이지요. 내가 전공으로 하고 싶었던 한국 예술의 원천이랄까 기층 문화에 대한 원천을 전문 책과 더불어서 몸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었는데 그래서 그쪽으로 공부의 중심을 잡으면서 또 실제로 공연도 하였습니다. 또 그것이 이웃과 문화가치의 나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그렇게 되자 이제 탈춤이 나한테 아주 가장 적합한 실천 종목 중에 하나구나 라고 깊게 느끼게 됐어요.
탈춤은 나에게 꼭 맞는 실천종목 중에 하나
그래서 지금 말한 이웃이라고 하는 것이 같은 동네에 사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학 이웃, 대학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들과 더불어하는 공연으로 하자라고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얘기를 맞췄습니다. 동의를 받아낸 거죠. 그럼과 동시에 탈춤의 내용들이 그 당대에 살던 말하자면 민중이라고 할까요? 일선 생산 계층을 포함한 당대의 기층 민초들의 삶의 일환으로 행사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민중 예술 또는 민족 예술, 동양 연행예술처럼 그런 예술장르로서 접근을 시작하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보다 먼저 살아나가는데 꼭 있어야 됨직한 삶의 통과 의례의 한 절차로서 공연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탈츰의 내용이란 민중의 삶의 실상을 자기 발언하는 그런 내용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대나 사회에 대한 사회적 발언이라는 것, 또 그 발언이 개인적인 발언임과 동시에 같이 사는 사람들의 공동의 목소리이고 공동의 염원이 어떤 표현으로 담겨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돼서, 앞으로 우리가 이런 탈춤을 자기의 삶의 자기 표현으로 할 때에도 공동체의식의 것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기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탈춤이 그 당시에 70년대였는데요. 70년대 한국땅에서 제대로 이어받아서 오늘날의 놀이나 예술로서 활약을 한다면 한 세 가지 방식으로 수행해 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 가지는 그 당시는 그래도 미약하나마 존재하였고, 지금은 그런 기능을 많이 상실했지만은 삶의 절기에 따른 하나의 명절 행사로 수행됐다라는 것, 그것은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또 더 큰 그야말로 어떤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그런 광역으로까지 넓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추인해내는 근본적인 동인은 생활 의례로서 또는 세시 풍속으로서, 또는 오늘날 여러 각종 형태로 행해지는 지역 축전 형식으서의 한 방향을 잡을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그런 기층 민중, 민족 예술의 양식적인 틀이 오늘날 연행 예술의 원천적인 바탕이 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그것을 현대 표현의 장르로 이전시키고 개발시키고 그것을 심화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방식이 있겠구나. 이를테면 마당극이랄까 창작 탈춤이랄까 그런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애초에 전제로 했듯이 이런 표현들이 자기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탈춤을 내가 하는 것은 나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동시에 나는 나의 얘기도 해야 되지만 내 주변에, 내 이웃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대행해주는 일도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자기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부추기거나 조건을 만들거나 그렇게 수행될 수 있도록 어떤 분위기, 힘, 어떤 문화적 힘의 세력화, 이런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것은 말하자면 그런 문화운동적인 차원이 되겠고 그것이 삶의 발언이고 사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의식 속에서 산출된 것이니 만큼 그것이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발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세 번째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 문화운동으로서, 문화 정치운동으로서의 어떤 성격을 갖는 것이 된다. 그렇게 생각을 세 가지로 하게 된 겁니다.
세 가지 방식의 전승, 계승, 발전 방향
조금만 더 덧붙인다면은, 마지막 세 번째 케이스, 세 번째 케이스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런 사회적 발언으로서의 것입니다. 70년대 그 당대는 그 시대를 이 땅에서 산 사람들은 누구나 느껴 느낀 바가 있듯이, 저의 표현 방식으로는 '구비시대'라고 얘기를 합니다. 물론 신문, 방송 또는 여러 매체로서의 언로가 보장돼 있다고 하지만 결코 제대로 작동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민중 언로의 한 역할로서 담당해야 될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그랬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거나 언론의 통제나 숙박에서 벗어나는 그런 차원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문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서 기존의 언론기관이나 또는 현행 수행되고 있는 언론의 방식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보고, 바로 그점을, 알려지지 않고 있거나 또는 잘못 알려져 있거나 또는 반드시 알려져야만 되는 그런 것들을 우리는 민중 사실 또는 민중 사건이라고 언표를 했는데 그런 것이 우리 육체적인 표현 언어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현장적으로 서로 품어안음으로써 전해지고 수행되고 전달받는 그런 한 통로 체제로서 활동 활로를 갖는 것이 당대의 당연한 소임으로까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민중언로라고 할까요?
예를 든다면, 70년대 중반에 한 사태로까지 확대, 또 더할 나위 없는 정치적인 이슈 사건으로까지 확대된 바 있는, 지식인 사회에서 한 대학생의 죽음의 장례식을 대학의 문화장례로 함으로써 그 한 사람의 죽음의 의미가 가지고 있는 당대적 민중 표현들, 그가 죽음으로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그런 것을 알리는 한 통로로서 김상진 장례의 행렬이 게획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비록 저게 무슨 탈춤이냐 하겠지만 넓은 의미의 탈춤적인 발상 속에서 그것을 수행해보고자 했었고 아마 그것은 어쩌면 탈춤의 역사에서 숨은, 그러나 한 에포크를 점하는 것으로 저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또 우리 김 목사님도 거기에 연관이 된 사실이기 때문에 권교수님은 이해가 잘 안 되실지 몰라도….
김도현: 제가 그 현장에서 살았으니까요.
대학문화장(葬)으로서의 오둘둘 사건
채희완: 네. 그 일 예를 들면 그렇다라는 것이지요. 이른바 그 사건의 이름을 오둘둘이라 합니다. 우리들 사이에는. 그거를 아까 제가 세 가지로 얘기한 것 중 세시풍속 내지는 통과 의례로서 삶과 연관돼 있는 하나의 문화적 통과의례의 절차로서까지도 얘기할 수 있는 70년대 탈춤 또는 민중 문화의 한 표현 방식이자, 그 다음에 세 번째 얘기한 정치적 발언 또는 정치적 메시지의 극대화로서의 세 번째 것이 합쳐져 있는 정치문화 양태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비록 그것은 탈춤 행위가 아니지만. 하나의 정치적 발언 형태의 것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이와 연관된 수많은 학생들의 구속되고, 탄압 받은 사실이었지요., 미처 그러니까 불발된 한 정치문화 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거기에 관계됐던 사전 모의까지 포함해서 관령됐던 사람들이 일망타진되고 덩달아 거기에 한 주도 세력이었던 대학에서의 탈춤도, 우리로서는 잠수함을 탄다고 하는데, 아주 언더에서 언더로 더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사건이지요. 맨 처음 질의하신 것에 대한 이 마지막 얘기가 아마 맨첨 질문에 해당되는 마지막 답변일 듯합니다.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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