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얘기합니다.
제주여행이 가장 설레는 계절, 가을입니다. 그냥 차를 타고 달리기만 해도 차창 가득 펼쳐진 제주의 가을빛은 위로를 건네고 힐링이 됩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어디라도 억새가 춤추고, 바람결에 묻어 온 온갖 가을꽃 향기가 참 좋은 때입니다. 한라산에는 제법 단풍도 들었겠군요. 이번 제21강은 처음으로 2박3일 일정으로 문을 엽니다. 깊어가는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기에 1박2일이 짧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셔서 하루 더 일정을 추가했습니다. 그만큼 더욱 알차고 즐거운 가을여행이 되도록 일정을 짰습니다.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 제21강은 2022년 10월 20(목)-22(토)일, 2박3일로 <제주억새특집 : 상잣질, 남송이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족은사슴이오름, 여절악, 거린오름과 당산봉, 차귀도>를 찾아갑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2017년 11월 개교하여,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22년 10월 강의를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21강 1일차 / 10월 20일(목요일) / 상잣질, 남송이오름
‘상잣질’ 따라 찾아가는 No.1 오름
-궷물오름과 노꼬메오름
2017년 11월, 오름학교를 처음 열면서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애월의 유수암리 중산간에 있는 노꼬메오름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제주 오름을 추천해 달라고 할 적마다 늘 맨 첫 손가락에 꼽는 곳이 노꼬메였거든요. 그 후로도 저는 계절을 달리하며 여러 번 노꼬메를 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노꼬메였습니다. 훤칠한 높이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오름이어서 오르는 맛이 아주 좋았고, 한라산과 중산간 지대의 경계에 솟은 오름이어서 최고의 조망을 보여주어서 갈 때마다 설레고 마냥 좋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오르면서 노꼬메를 탐방하는 더 멋진 코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꼬메를 두르며 이어지는 ‘상잣질’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잣성’이란 조선시대에 제주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을 일컫는 말입니다. 잣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제주도 중산간의 해발 150~250m 지대를 이어 쌓은 하잣성과 해발 350~400m 지대의 중잣성, 해발 450~600m 지대를 따라서는 상잣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각 잣성마다 제주도 전체를 한 바퀴씩 돌며 이어졌으니 참으로 대단한 돌담입니다. 이 중 하잣성은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 농작물을 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의 삼림지역으로 들어갔다가 얼어 죽는 사고를 막기 위한 기능을 했습니다.
가을에 이 길을 걷는 것은 최고의 호사
제주지역은 목장을 10구역으로 나눠 관리하는 10소장(所場) 체계가 갖춰졌습니다. 유수암과 소길, 장전공동목장 일대는 5소장에 속했으며, 족은노꼬메와 노꼬메오름의 북쪽 자락을 따라서 상잣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허물어진 곳이 많았는데, 노꼬메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무너진 상잣성을 복원하고 이 돌담을 따라 오름과 목장탐방로를 조성해 제주 목장과 중산간 목축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족은노꼬메 입구에서 큰노꼬메 입구까지 이어지는 ‘상잣질’은 2.6km로, 우리는 그 중 노꼬메오름을 지나는 상잣질을 걷습니다. ‘질’은 제주를 포함하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쓰는 ‘길’의 방언입니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궷물오름을 지나 노꼬메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상잣질을 따라 돌아오는 코스인데, 상잣질은 물론, 궷물오름에서 노꼬메로 이어지는 길이 눈물겹도록 예쁩니다. 가을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정말 최고의 호사이고,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경험입니다.
합죽선으로 얼굴 가린 미녀
-남송이오름
남송이오름은 드넓은 녹차밭으로 사랑 받는 오설록의 뒷산입니다. 남쪽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녹차생산지인 아모레퍼시픽의 서광다원이 초록빛으로 눈부시고, 북쪽으로는 제주의 허파 곶자왈이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며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집니다.
남쪽에서 보이는 남송이오름은 여인의 눈썹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동서로 길게 누운, 전형적인 산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뒷모습은 전혀 딴 얼굴을 가졌죠. 정상의 서북쪽으로 제법 커다란 말굽형 굼부리가 붙었고, 능선이 돌아간 북쪽 끄트머리엔 부록처럼 딸린 원형의 굼부리가 선명합니다. 그 주변으로도 분화구 같은 밋밋한 구덩이가 두 개나 보입니다. 앞에서 볼 때와는 딴 판으로, 여러 분화구를 가진 복합형 화산체인 것이죠. 이렇듯 앞뒤의 모습을 다 보고나니 남송이오름이 합죽선으로 얼굴을 가린 신비로운 여인 같이 느껴집니다.
오름의 전사면에 걸쳐 소나무가 많아서 ‘남송(南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한자로는 ‘南松岳(남송악)’이라고 적죠. 여느 오름에나 흔한 삼나무와 편백나무보다 높게 자란 해송이 탐방로 주변으로 가득합니다. 한편,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오름을 ‘남소로기’라고 불러왔습니다. ‘소로기’는 솔개를 가리키는 제주어로, 오름 형태가 날개를 펼친 솔개 같다는 것입니다. 오름의 북쪽 끝에 붙은 작은 알오름 이름이 ‘소로기촐리’인 것을 감안하면 이쪽이 더 무게가 실리는 듯도 합니다. ‘촐리’는 꼬리를 일컫는 제주어입니다.
명품 조망이란 이런 것!
들머리는 오름의 서쪽 능선이 끝나는 곳에 있습니다. 서광다원을 동서로 가로지른 신화역사로에서 오름 서록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500m쯤 들어선 곳입니다. 마소의 출입통제용 꺾임 문을 지나 들어서면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바닥에 깐 야자매트가 오래 되어 삭은 때문인지 미끄덩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오르막 구간이 그리 길지 않고, 주변으로 해송이 지천이어서 걷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찔레와 으름넝쿨, 쥐똥나무, 탱자나무 등이 녹색의 벽을 이룬 사이로 평탄한 길이 구불거리며 정겹습니다. 정상에는 기존의 산불감시초소 위에 세운 2층 구조의 나무 전망대가 있습니다. 해발고도가 339m인 남송이는 오름 자체의 높이가 139m로 꽤 우뚝합니다. 그래서 조망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널찍한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 신화월드와 오설록 녹차밭이 손바닥처럼 훤하고, 모슬봉부터 산방산, 군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바다 풍광은 그림 같습니다. 동북쪽으로는 신화역사로 주변으로 북오름과 원물오름, 병악, 도너리, 당오름 등이 봉긋봉긋하고, 이 모든 풍광의 정점에 한라산 백록담이 우뚝 섰고요. 콜라 한 병을 통째 들이킨 듯 속 시원한 풍광입니다.
평상이 놓인 북쪽 굼부리
정상을 지난 탐방로는 북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내려서다가 180m쯤 간 곳에서 갈래를 칩니다. 북쪽의 원형 굼부리를 만난 것이죠. 말굽형 굼부리와 원형 굼부리 사이를 지나는 왼쪽 길은 주능선의 흐름을 이어 완만하게 북동쪽으로 굽어 돌고, 오른쪽 통나무 계단길은 짙은 숲속으로 급히 내려섭니다. 두 길은 반대편에서 만납니다.
북쪽의 이 원형 굼부리 안은 통에 꽂아둔 이쑤시개 마냥 삼나무로 빼곡합니다. 특이한 점은 계단을 통해 바닥까지 길이 이어진다는 것. 굼부리 바닥으로 내려설 수 있는 오름은 왕이메나 높은오름, 저지오름, 금오름, 까끄레기오름 등 제주에서도 많지 않기에 더 특별한 경험입니다. 통나무 계단 몇 개가 내려앉았고,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기도 하지만 내려서는 데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햇살이 비쳐드는 바닥엔 둥근 돌담이 두른 삼나무 숲 사이로 평상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삼림욕에 더할 나위 없는 명당 같습니다. 그런데 찾는 이는 드문 듯, 평상엔 옅은 이끼가 꼈네요.
굼부리 앞은 평탄한 초지대를 이뤘고, 키 큰 탱자나무가 여러 그루 보입니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난 오솔길이 ‘소로기촐리’를 지나 서광서리공동목장의 넓은 길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900m쯤 가면 신화역사로에 접한 목장 입구에 닿습니다.
제21강 2일차 / 10월 21일(금요일) / 쫄븐갑마장길, 여절악
가을에 올라야 진짜 따라비!
-갑마장을 거느린 바람의 고향
2018년 3월, 봄꽃 향기를 따라 걸었던 따라비오름을 기억하시나요? 빨간 동백꽃과 샛노란 세복수초가 피어 있던 가시천을 지나 오른 봄날의 따라비는 사실 밋밋한 풍광이었습니다. 제대로 풀이 돋아난 것이 아니어서 더 그랬죠. 누가 뭐래도 따라비의 제철은 가을입니다. 대표적인 억새오름이거든요.
바람 불 때 더 아름답다는 가시리 풍광의 진면목은 따라비오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억새가 뒤덮은 따라비오름은 찾을 때마다 바람이 연출해 내는 온갖 아름다운 퍼포먼스로 가득하죠. 가을날, 바람결 따라 뒤척이는 은빛 억새의 춤사위가 그토록 환상적인 곳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비 능선에 설 때마다 어느 오름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에 압도당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움푹움푹 파인 세 개의 크고 작은 굼부리가 한 오름 안에 들어선 모양새가 그야말로 희한해서입니다. 동서로 마주 선 두 봉우리를 남쪽 능선이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북쪽으로는 아예 트이며 키를 낮춘 여러 봉우리가 연이어진 모습은 아무리 봐도 마냥 좋았습니다.
제주를 사랑해서 제주의 바람이 된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씨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오름이 이곳 따라비입니다. 따라비오름과 서쪽의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사이 벌판인 갑마장은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카메라에 담아오던 광활한 억새밭이 있던 곳입니다. 지금은 이 갑마장을 따라 청정 섬 제주를 상징하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또 다른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최근 태양광발전시설이 이 광활한 억새밭을 모두 뒤덮어서 옛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졌으나 그래도 이곳은 한없이 멋진 곳입니다.
따라비오름은 368개나 된다는 제주의 오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경사가 부드럽고 오르내리는 길 대부분이 초지대로 이뤄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 또 매력적입니다.
이 오름에 ‘따라비’라는 아주 독특한 이름이 붙은 것은 이웃한 오름들 때문입니다. 동쪽의 알오름을 품고 있는 어머니 모지오름과 장자오름, 북쪽의 새끼오름이 따라비오름과 더불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여서죠. 가장격이라 하여 ‘따에비’라 하던 것이 ‘따래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채꽃프라자의 뒷산, 큰사슴이와 족은사슴이
이 두 오름은 따라비오름에서 한라산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갑마장 건너편에 솟은 오름입니다. 제동목장이 펼쳐진 표선면 북서부 일대의 벌판에 솟았죠. 하나인 듯 둘인 오름은 옛날에 사슴이 살아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높이 442m인 족은사슴이[소록산]의 서쪽사면은 대규모의 송이(기생화산의 구성물로, 붉고 작은 화산 알갱이) 채취로 인해 온통 깎여나가 상처가 깊은 오름입니다. 남북으로 길게 누운 족은사슴이는 북동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가졌습니다.
족은사슴이 남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바로 큰사슴이의 남서쪽사면으로 이어집니다. 높이 474.5m인 큰사슴이[대록산]는 대체적으로 가파르고 둥근 몸집을 보여줍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진 깊이 55m의 화구를 가졌으나 숲에 둘러싸여 분간이 쉽진 않습니다. 오름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대 조망이 좋습니다.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갑마장 들판과 그 건너의 따라비오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송당리의 오름군락들이 잘 보입니다.
큰사슴이와 족은사슴이 남쪽으로 이어진 녹산로는 이 두 오름을 일컫는 말인 녹산(鹿山)에서 왔습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일대의 광활한 목장을 녹산장(鹿山場)이라 불렀는데, 이 또한 이 오름에서 연유했습니다. 녹산장은 원래 남원읍 의귀리에 살던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이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쓸 말 500필을 나라에 바쳤는데, 임금은 특별히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이란 벼슬을 내렸고, 김만일의 아들 대길(大吉)도 200필을 헌마했습니다. 이에 조정은 그에게 감목관(監牧官)이라는 벼슬을 내려 세습직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이때부터 이곳에서는 3년마다 200필을 헌상했고, 감목관은 문중에서 추천해 임명했다고 합니다. 현재 녹산장에는 제동목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숙소인 유채꽃프라자에서 출발해 따라비오름과 조랑말체험공원, 큰사슴이오름을 이으며 걷는 길이 ‘쫄븐갑마장길’입니다. 총 길이가 10km로, 족은사슴이오름까지 들릴 경우 11km쯤 됩니다. 이 길은 단언컨대, 제주에서 가을을 만끽하며 걷기엔 최고의 선택입니다.
다시 찾는 가을 절경
-여절악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에 있는 여절악은 제주 사람들조차 잘 모르고 찾는 이도 거의 없는 오름입니다. 오름을 탐방하는 데 20분이면 될 정도로 규모도 작죠. 갖춰진 탐방로도 없어서 지형을 살피며 오르내려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입니다. 남몰래 숨겨두고 저만 가끔 찾고 싶을 만큼 한 번 가보고 반해버린 오름이죠. 2020년 가을, 오름학교 제15강 때 찾았던 곳입니다. 가을에 이만큼 절경인 오름도 없어서 또 잠시 들르려 합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산세에 동서로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 여인이 절을 하는 듯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쩌리, 예절악, 예절이악 등으로도 불립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부는 바위가 조금 돌출되어 있습니다. 들머리에 억새가 보이지만 오름의 반은 잡목, 나머지는 띠로 덮였습니다. 이 띠가 장관입니다. 예전엔 흔했으나 지금은 보기가 힘들어진 제주만의 풍광 중 하나가 띠 군락이죠. 바람 따라 이리저리 누우며 만들어내는 초록의 물결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조망이 트이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도 시원해서 찾을 때마다 즐거운 곳입니다.
제21강 3일차 / 10월 22일(토요일) / 거린오름, 당산봉, 차귀도
낮으면서도 조망 좋고 한적한 오름
-거린오름
대정과 제주를 잇는 평화로 일대의 교통의 요지가 동광육거리입니다. 동광육거리 남쪽으로 세 개의 밋밋한 오름이 솟아 있는데, 밝은오름과 북오름, 거린오름입니다. 밝은오름은 굼부리 안이 온통 밭뙈기고, 탐방이 불가능한데 반해 거린오름과 북오름은 탐방로가 비교적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동광리 남서쪽에 솟은 북오름과 거린오름은 남북으로 서로 겹치듯 붙어 있어서 하나의 오름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눈썹처럼 생긴 북오름은 북을 닮아서 붙은 이름으로, 소나무가 많고, 남쪽의 거린오름도 최근에 어린 소나무가 많이 생겨나며 점점 솔숲에 덮여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남서록을 따라 잔디밭사면이 넓게 분포해서 걷는 재미가 좋습니다.
‘거린오름’이란 뜻은 ‘갈리다’의 옛 제주어인 ‘거리다’에서 온 것으로, 두 오름이 안부를 사이에 두고 갈린 형태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거린오름의 남쪽 등성이엔 마을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공동묘지 옆을 지나 잔디가 뒤덮은 비스듬한 사면을 따라 정상으로 향합니다. 잔디밭이지만 다른 여러 풀이 섞여 자라는데, 수크령이 많고, 고사리 종류와 좀소루쟁이도 자주 보입니다.
고개를 드니 남쪽으론 산방산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그 옆으로 군산도 우뚝합니다. 동쪽으로는 큰병악과 무악, 영아리오름 뒤로 한라산이 멋집니다.
제주 무인도에서 누린 한 시간의 행복
-차귀도 트레킹
제주도는 동서남북에 크고 작은 여러 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남쪽 모슬포 앞바다엔 청보리로 유명한 가파도와 국토최남단인 마라도가 접시마냥 떠 있고, 형제섬과, 범섬, 문섬, 섶섬, 지귀도, 서건도, 새섬 같은 무인도도 눈길을 끌죠. 동쪽엔 소섬 우도와 토끼섬이, 북쪽엔 다려도와 추자도가 있으며, 서쪽엔 비양도와 차귀도가 아름답습니다. ‘섬 속의 섬’인 이들 유‧무인도를 둘러보는 것은 제주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죠.
세 섬을 묶어 부르는 이름 차귀도
한경면 고산리 바닷가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차귀도는 일몰 명소로 손꼽힙니다. 자구내포구나 가까운 수월봉에서 조망하는 차귀도를 품은 석양 풍광이 여간 황홀한 게 아니어서 제주 여행객은 물론, 사진가들도 자주 찾습니다. 그러나 차귀도의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 바람이 다듬고 파도가 깎은 그 섬을 두 발로 직접 걸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자구내포구는 예로부터 오징어와 한치잡이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부둣가를 따라 손질한 오징어와 한치를 줄에 널어 해풍에 말리는 정겨운 풍광이 펼쳐지죠. 말린 오징어와 한치를 판매하는 가게도 여럿이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좋습니다. 부두 한쪽엔 밤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게 항구 위치를 알려주던 제주의 옛 민간 등대인 도대불도 보입니다.
차귀도는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이자 제주지질공원이고 천연기념물입니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출입을 제한하다가 2011년에야 다시 길을 열었습니다. 차귀도는 임산부가 누운 것 같다는 와도와 본섬인 죽도, 지실이섬 또는 매바위로도 불리는 독수리바위를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세 섬 중에서 가장 큰 죽도에 선착장이 있으며 나머지 섬들은 배로 둘러볼 수 있죠. 당산봉 아래 자구내포구에서 죽도의 차귀도방파제까지는 직선거리로 1.3km, 관광유람선(비누스타3호)을 타면 15분쯤 걸립니다.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와도가 눈길을 끕니다. 좀 큰 바람과 파도가 덮치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얇고 가파른 벽을 치켜세운 이 섬은 하늘에서 보면 와인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바다의 맑고 투명한 물빛이 무척 환상적이서 남태평양의 어느 산호섬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일곱 가구가 살던 제주 서쪽 끝
죽도의 낡고 허름한 방파제에 내리니 오래 전부터 사람의 발길이 잦던 곳인데도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듯한 설렘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아마 차귀도가 무인도기 때문일 겁니다. 차귀도는 제주에서 가장 큰 무인도입니다. 1970년대 말까지는 일곱 가구가 보리와 콩, 참외, 수박 같은 작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70년대 말, 나라에서 간첩사건 등을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부터 무인도로 남았죠. 그 덕에 이리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걸까요? 한편으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의 심사가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방파제에서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섬에 오르니 벽채만 남은 낡은 건물 한 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옛날, 이 섬에 살던 이들의 흔적입니다. 건물터 주변엔 연자방아와 빗물 저장시설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환경이다 보니 1977년에 개봉한 영화 <이어도>와 1986년, 이현세의 인기 만화가 원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이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지옥 훈련 장소가 차귀도였다네요.
죽도를 둘러보는 탐방로는 총 4.1km입니다. 집터에서 길은 섬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가거나 왼쪽 장군바위 또는 오른쪽 정상 세 갈래로 갈립니다. 여행자 대부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장군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 길 끝에 눈길을 끄는 하얀 등대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로 길쭉한 모양을 한 죽도는 서쪽 상공에서 보면 약간 통통한 한반도를 닮았으며, 허리 부분의 남쪽과 북쪽 해안을 제외하면 사방이 온통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섬의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을 이룬 가운데 띠와 억새가 뒤섞인 넓은 초지가 펼쳐져 바다에 떠 있는 목장 같습니다. 풀밭엔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갯강활이 자주 보입니다. 정상인 동쪽 봉우리 남사면에는 1974년, 고산리 부녀회가 심었다는 곰솔이 무리지어 자라지만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초지 가운데서 몇 개의 작은 신이대숲만 눈에 띕니다. 섬에는 해안 절벽에 둥지를 튼다는 매와 물수리를 비롯해 몇몇 조류와 누룩뱀, 대륙유혈목이,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파제에서 가까운 숲에서는 닭 우는 소리도 들리는데, 누군가 방사했거나 예전에 사람이 살던 때에 가축으로 기르던 게 야생화된 듯합니다.
볼레기등대 앞에서 취한 풍광
시계돌이 방향으로 길을 따르다가 만난 첫 전망대. 섬의 남쪽 풍광이 손바닥 보듯 훤히 펼쳐지는 이곳의 풍광이 가히 환상입니다. 전망대 앞으로 독수리바위를 위시해 몇 개의 바위섬이 우뚝우뚝하네요. 그 중에서 가장 작은 듯 보이는 검은 돌기둥이 장군바위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제주를 만들었다는 할문대할망의 500명 아들 중 막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더군요. 장군바위 옆으론 온통 붉은 송이로 가득한 절벽이 장관입니다. 설명판에는 이곳도 화산의 굼부리였다고. 즉, 차귀도가 오름이라는 말입니다.
이 일대의 풍광이 한없이 평온하고, 목가적이며, 아름다워서 걷는 기분이 제대롭니다. 해안을 따라 난 풍광 좋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며 눈을 즐겁게 하고, 억새며 띠 같은 풀로 채워진 초지대를 지나온 해풍이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듭니다. 제주의 이 황홀한 순간을 만끽하고파 천천히, 최대한 느릿느릿 걸으며 서쪽 언덕으로 향합니다.
드넓은 구릉의 초지가 몰려간 서쪽 봉우리엔 하얗고 예쁜 등대 하나가 자연으로 가득한 차귀도와 주변 바다를 지켜보며 섰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광에 방점을 찍은 듯 멋진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등대입니다. 지을 때 돌을 나르는 게 몹시 힘들어서 제주어로 ‘볼락볼락’ 가쁜 숨을 쉬었다고 해서 고산리 주민들은 이곳을 ‘볼레기언덕’, 등대를 ‘볼레기등대’라고 부릅니다. 1957년 첫 점등 후 지금까지 주변 바다에 생명의 빛을 비춰오고 있죠. 차귀도 풍광의 중심이기도 한 이 등대는 섬의 어디서건 도드라져 보이기에 섬을 둘러보는 동안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되어줍니다.
등대 앞에서 바라보는 차귀도가 얼마나 멋들어지는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주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뒤로 가만히 펼쳐진 한라산과 제주도 본섬의 풍광은 또 어떻고요! 이 풍광이 지겨워질 때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수심이 깊어서 참돔과 돌돔, 혹돔, 벤자리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낚시꾼들에게 이곳은 성지로 통한다죠. 등대까지 오는 동안에도 여러 대의 낚싯배와 갯바위에서 낚시 중인 꾼들을 보았는데, 그들의 살림망이 궁금해집니다.
‘차귀도(遮歸島)’라는 이름의 유래에 얽힌 재밌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인 푸저우(州) 출신의 호종단(胡宗旦)이 장차 이 섬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여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찾아다니며 끊었다고 합니다. 그 일을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고산에서 배를 타고 이 섬 부근을 지날 때 매로 변한 한라산의 수호신이 나타나 뱃머리에 앉아 돌풍을 일으켜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켜 버렸다네요. 제주에 해를 끼친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歸]을 막았다[遮]고 해서 그 후로 이 섬을 차귀도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차귀도의 독수리바위가 매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차귀도에 내린 후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다시 유람선이 태우러 옵니다. 여행자들은 그동안 자유롭게 차귀도를 둘러보면 되죠. 풍광 좋은 곳마다 사진을 찍으며 서쪽의 등대가 있는 볼레기언덕과 동쪽의 정상봉까지 다녀오는 데 부족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등대 앞으로 펼쳐진 차귀도 풍광에 취해 있다 보니 벌써 배가 들어올 시간이 다 되어버렸네요. 저 건너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부지런히 달려야할 판. 이 환상적인 섬에서 달음박질이라니, 다음엔 정상만 다녀오는 일정으로 또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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