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9일 "끌어내야 할 걸 제때 끌어내지 못하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된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내부 총질' 문자 사건 이후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당내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혹은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를 촉구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배 최고위원은 이날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저는 오늘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5월 출범한 이후에 국민께서 많은 기대와 희망으로 잘 해보라는 바람을 심어주셨는데 80여 일이 되도록 속 시원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드리지 못한 것 같다"며 "그런 부분에서 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께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깊이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마땅히 책임져야 하고 끌어내야 할 걸 제때 끌어내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된다"며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최고위원이 말한 '마땅히 끌어내야 할 것'은 '권성동 원톱 체제'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부 총질' 문자 사건 이후 국민의힘에선 권 원내대표가 이끄는 직무대행 체제를 끝내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당을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비대위는 당 대표 궐위 혹은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 등으로 가능하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당원권 정지 6개월'은 이미 의원총회 등을 통해 '궐위'가 아닌 '사고'로 규정됐다. 따라서 최고위원회가 기능을 상실 해야만 비대위 전환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배 최고위원의 사퇴는 사실상 비대위 전환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비대위 전환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최고위가 기능을 상실하려면 현재 7명인 최고위원 중 과반인 4명이 사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해야 최고위 기능 상실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배 최고위원 외에 사퇴 의사를 밝힌 최고위원은 없다.
특히 이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정미경 최고위원은 비대위 전환에는 법적 문제 소지가 있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서 "(이 대표에 대한) 윤리위 결정은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며 "그런데 만약 비대위로 가면 (이 대표) 제명과 같은 효과를 최고위가 줘버리는 것"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건 원래의 (윤리위 징계) 효력에 맞지 않기 때문에 법률적인 가처분 대상이 된다"며 "어떤 판사의 손에 의해서 우리 당 대표가 결정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 최고위원의 사퇴에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의 의사가 개입했는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준석 대표는 배 최고위원과 최고위에서 공개적으로 갈등을 벌이던 지난달 23일 장 의원이 "이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정당이냐"고 질타하자 하루 뒤인 24일 페이스북에 "디코이(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한다"고 썼다. 배 최고위원의 배후에 장 의원이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권을 두고 장 의원과 연대 중이라는 설이 돌고 있는 김기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당 지도부가 땀 흘리며 일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도리어 부담을 지워드려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다. 지도책임을 진 사람에게 선당후사, 선공후사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원칙"이라며 "지금은 비상시기다.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써 '권성동 원톱 체제' 종결과 비대위 전환을 바라는 기색을 보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정조대왕함 진수식 참석차 탑승한 기내에서 티타임을 갖고 문자 노출로 리더십 위기에 몰린 권 원내대표를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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