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을 불허하는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근소한 표차로 당락의 희비가 갈렸다. 새 대통령은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몫이다. 그러나 절반으로 나뉘어진 민심은 대연정에 버금가는 협치 요구서를 윤 당선인 앞에 내밀었다.
정권교체의 영예와 함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동시에 받은 윤 당선인의 화합 의지가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도 윤석열 정부의 독주를 제어하는 강력한 방지턱이다. 극심한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골이 깊어진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책임자는 이제 윤 당선인이다.
정치개혁 외면하면 협치‧통합 불가능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당선인은 검찰을 떠난 지 1년 만에, 정치 참여를 선언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교체된 새정부의 정치 기반은 불안정하다. 이재명 후보와의 차이가 20만~30만 표(1%포인트 이하)에 그치는 신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를 39만557표(1.53%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던 1997년 대선보다도 격차가 적다.
박빙의 선거전을 거치고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김대중 정부는 기대와 환호를 받으며 출범했다. 반면 국정운영 구상에 준비 부족을 드러낸 상태로 무소불위의 권좌에 오른 윤 당선인을 보는 대중의 시선에는 불안감이 짙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론을 온전히 수렴하지 못한 윤 당선인이 자초한 정치환경이다.
강경한 안보보수적 면모,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의지, 젠더 갈라치기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해졌다. 특히 출구조사에서 드러난 '이대녀의 역풍'이 위력적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상징하는 분열정책을 밀어붙이면 전면적 저항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진영 정치에 기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에 대한 완전한 뒤집기도 여의치 않다. 탈원전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폐기를 공언했던 윤 당선인의 행보가 주목된다. 선제타격론을 굽히지 않은 윤 당선인의 냉전적 안보관은 중도‧진보층의 반발을 사고 민주당과 충돌할 소지가 높은 화약고다.
여야의 방향성이 근접한 분야는 부동산 정책이다. 이재명 후보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전환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등 감세 정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지만, 부동산 양극화 해소에 효과를 낼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진영을 둘로 갈라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극렬하게 싸우며 양당정치의 장벽을 높인 적대적 공생 구조 혁파 없는 국민통합은 요원하다. 민주당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키로 한 정치개혁 방안에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호응할 차례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윤석열 정부가 어떤 대처를 할지도 주목된다. 특히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 북한, 신냉전 양상으로 접어든 미중‧미러 갈등, 악화된 한일관계가 윤 당선인을 기다리는 최대 난관이다. 모든 사안이 통합과 협치를 건너뛴 독주로 극복하기는 불가능한 과제다.
윤 당선인은 당선 인사에서 "이제 경쟁은 일단 끝났고 모두 힘을 합쳐서 국민과 대한국 위해서 모두 하나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선인 신분에서 새정부를 준비하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되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도 "당선인께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승자에겐 아량과 겸손이, 패자에겐 반성과 협조가 절실한 시점에 윤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가 한목소리로 협치를 선언한 대목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인수위 구성과 새정부 출범부터 실천으로 뒷받침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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