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며 폐암에 걸리자 지난해 11월 18일 산업재해 신청을 한 A 씨는 2월 23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았다. 역학조사도 생략됐고 질병판정위원회로 바로 넘겨진 이 건은 산재 신청 3개월여 만에 신속한 승인 판정으로 결론이 났다.
A 씨에 대한 승인은 경남지역 학교 급식실 종사자에 대한 폐암 산재 승인 첫 사례이다.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발암성 물질인 ‘조리 흄(cooking fumes)’이 폐암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는 이를 계기로 도내 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는 전체 조합원 대상 폐암 발생 현황 조사를 실시한 뒤 집단 산재 신청에 돌입하겠다고 24일 밝혔다. 또 전면적인 노동환경 개선 투쟁에도 나서겠다고 밝혀 적잖은 파급력이 예상되고 있다.
학교 급식실 종사자의 폐암 산재 승인은 지난해 2월 처음 이뤄졌다. 지난 2018년 4월 수원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던 B 씨가 폐암으로 숨지자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B 씨는 2005년부터 12년 동안 급식실 조리원으로 근무했고 2017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뒤 이듬해 사망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학교 급식실 조리사나 조리실무사 등이 잇따라 폐암 산재를 인정받았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국 업무상질병부가 올해 2월 15일을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 급식실 종사자 중 산재를 신청한 폐암 발병자는 49명이다. 또 백혈병 2명과 대장암 1명도 산재 신청을 한 상태이다.
이들 산재 신청자 52명 중 승인은 18명이고 모두 폐암 발병자들이다.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도 2명이었으며 역학조사 중인 백혈병 1명과 재해조사 중인 백혈병‧대장암 2명 등 나머지 32명은 심사과정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별로는 초등학교 3명, 중학교 7명, 고등학교 5명, 유치원 등 학교 외 시설 3명이 폐암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이번에 승인을 받은 경남 첫 사례자의 경우 전국에서 19번째 폐암 산재 승인자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학교 급식실 종사자들이 폐암에 걸릴 위험성은 일반인에 비해 24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20년 2월 발표한 보고서 ‘조리 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에 따르면 학교 급식실의 일산화탄소(CO)는 최대 295.4ppm, 이산화탄소(CO₂)는 최대 8888ppm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안전보건규칙 제618조에서 규정한 적정 공기 기준 일산화탄소 30ppm보다 10배 이상 심각한 수준이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내 산소 공급을 어렵게 한다. 이산화탄소는 산소를 밀어내 질식을 유발한다. 따라서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학교 급식실 구조에서는 종사자들 체내에서 급격한 저산소증이 발생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 연구의 시사점을 “조리 과정의 공기 질 유해물질 노출수준 평가 결과 계란 프라이와 같은 일반 가정에서도 흔한 기름 사용 조리과정에서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의 복합 고농도 노출 가능성이 확인돼 부적절한 환기가 동반될 경우 중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따라서 대량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학교 급식실 종사자들의 경우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각종 요리연기에서 발생한 미센먼지나 초미세먼지, 발암물질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근로를 지속하면 폐암 발생률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남지부는 “이번 경남 첫 폐암 산재 승인은 학교 급식실의 노동환경과 폐암의 업무 관련성을 근로복지공단이 인정한 것”이라며 “열악한 급식실 노동환경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경남지부는 조합원 전체 전수조사 이후 집단 산재 신청과 함께 교육부와 노동부에 대해 직업성 암 실태조사와 환기시설을 포함한 작업환경 개선, 급식실 노동자 특수건강진단 요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촉구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남교육청에 대해서도 현재 실시 예정인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설비 가이드라인 테스크포스’를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남지부는 “더 이상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리지 않도록, 각종 업무성 질병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노동부와 교육부, 경남교육청은 급식실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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