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역대 왕비 중 가장 무속에 심취했다고 알려진 이는 명성황후다. 명성황후를 두고는 '격변의 시대에 고종을 보필한 정치적 동반자'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무속에 너무 깊이 빠져든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일치한다. 명성황후는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 관우를 몸주신으로 모신 무녀를 총애해 진령군(眞靈君)이란 작위를 내리고 지금의 서울 명륜동 근처에 관우의 사당인 '북묘'를 지어주었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진령군을 신임해 국가의 길흉을 점치면서 무녀의 말에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지경이 됐다. "그의 말 한마디에 화복(禍福)이 걸려 수령과 변장(邊將, 지방의 군사지휘관)의 자리가 그의 손에서 나왔으며 고관대작들이 그에게 아부해 수양아들로 삼아달라고 보채는 사람도 있었다"고 황현의 <매천야록>은 전한다. 갑신정변 때 고종이 관우 사당인 북묘로 피난한 것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무속에 의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무속 사랑'도 매우 지극하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다. 도사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웬만한 무당은 내가 봐준다. 내가 무당을 더 잘 본다." 김건희씨가 <서울의소리>에 직접 육성으로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영적'이라 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종교적으로 '맑고 순수한 영혼'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영'은 영험(靈驗)이나 영이(靈異) 등 초자연적인 것, 신비로운 것을 말한다. 영혼을 맑게 닦아 고매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의 실현을 위한 길흉화복의 조절이 주된 관심사다.
'도사'란 원래는 '도교(道敎)의 승려'를 뜻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내다보고, 잡귀를 쫓아준다거나, 병을 고쳐주거나, 명당 터를 잡아준다든가 하는 쪽에 일가견이 있는 역술인, 무당 등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 도사'를 도교에서는 '여관'(女冠)이라고 부르는데 김건희씨는 스스로를 '도사들과 교유하는 여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는 김건희씨의 '무속 중독' 사례 언론 보도는 일단 젖혀놓고라도, 본인의 말만으로도 그가 역술과 무속에 깊이 빠져 있음이 증명된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웬만한 무당은 내가 봐준다. 내가 무당을 더 잘 본다"고 한 말이다. 김건희씨는 자신의 '신기'가 남달라 예지력과 신통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얼마 전 "윤석열 후보가 무속과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내지 못한다면 국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사설에서 썼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무속 고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부인 김건희씨이기 때문이다. 부부의 연을 끊지 않는 한 윤 후보가 무속과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기록'은 그가 윤석열 후보의 1급 정치 참모로 윤 후보의 정치 행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김건희씨를 두고 "비선 실세"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배우자는 숨어 있는 '비선'이 아니라 '공인된 실세'다. (이것은 평범한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김건희씨는 대통령 영부인이 된다. 통상적인 비선 실세와는 달리 퍼스트레이디는 청와대 출입을 제한한다든가, 대통령과의 접촉을 차단해 영향력 행사를 막을 방법도 없다.
그러면 김건희씨가 무속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으면 될 일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 김건희씨는 너무 오랫동안 그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던 듯하다. 윤석열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의 지난 행보를 돌아보면 고비고비마다 '역술'에 기대어 판단하고 결정해온 흔적이 역력하다.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김건희씨는 "이번에는 우리가 된다"고 승리를 공언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과학적 근거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역술과 무속에 기반한 예측이다. 그런데 정말 그의 '예언'대로 대선에서 승리까지 했다고 치자. '그것 봐라. 내가 뭐라고 말했느냐'며 더욱 의기양양해서 무속의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들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 곁에 '무당보다 더 용한 배우자'가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국정 운영이 무속과 주술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합리와 이성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비합리적 판단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김건희씨는 '관상'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니 주요 공직자 후보들의 관상을 일일이 보아 인선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중요한 국가적 행사의 날짜 결정도 '길일'을 택해서 할 것이고, 심지어 어디선가 은밀히 굿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명성황후와 고종은 진령군의 신통력을 믿었으나 결과적으로 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해 비참하게 시해됐고 고종은 망국의 군주가 됐다. 선조 때 선비 허봉은 민간에 퍼진 관우 신앙에 대해 "죽은 후에 자기 나라가 망하는 것도 붙들지 못했는데 어찌 남을 도울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역술과 주술로 국가의 앞날을 결정하려 한 것의 허망한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요무(妖巫)와 음사(淫祀, 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금하도록 한 것은 태종 11년인 1411년 무렵이다. 그런데 600여년의 세월이 흐른 21세기에 다시금 '궁중의 요무와 음사'를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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