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는 자살률, 산재 사망률, 저임금노동자 비율, 노인 빈곤율, 남녀 간 임금격차, 어린이와 청년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이고 출산율, 공공사회 복지지출, 고등교육 국가 부담률은 세계 최저다. 기득권카르텔이 자본, 권력, 정보를 독점한 채 제도와 법을 유리하게 만들고 운용하면서 서민과 노동자를 철저히 배제한 채 착취하고 수탈하고 있다. 그 통에 수많은 서민과 노동자, 자영업자들은 생존위기에 놓이고, 오늘 하루에도 어디에선가 평균 2.4명의 노동자들이 떨어져서, 깔려서, 끼어서, 부딪쳐서 죽을 것이다. 이에 맞설 시민사회는 주권자로서 인식은 했지만 조직화를 하지 못하였고, 노동조합은 변혁의 비전을 잃었으며, 진보는 거의 괴멸 수준이다.
이 헬조선에서 완전히 좌절하지 않은 채 그래도 희망을 도모하는 것은 어디에선가 '강직한 울보'들이 불가능한 꿈을 꾸며 길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아이들의 공감을 향상시키는 '공감의 뿌리 교육'을 행할 때 제시가 다른 아이의 모자를 빼앗은 남학생 앞에 가서 단호하게 돌려주라고 했다."(메리 고든, <공감의 뿌리>) 모자를 빼앗긴 아이만큼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한국 최근사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은 백기완 선생과 수경 스님이다. 한 분은 죽음에 이르는 고문을 여러 차례 당하면서도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또 한 분은 청년들도 1㎞ 정도 따라 하고 한 달을 앓았다는 길을 300㎞ 가까이 삼보일배하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두 분의 공통점은 울보였다. 백 선생은 말씀을 하다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다가, 노래를 부르거나 듣다가 자주 눈물을 흘렸다. 스님은 4대강 반대운동을 할 때 여강선원에서 아침마다 울었다. 죽어가는 노동자나 물고기의 아픔이 바로 당신의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장 강한 정의의 행동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김수억 또한 ‘강직한 울보’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미 1995년에 학생시절에도 군사독재를 반대하다 구속된 전력이 있는 그는 2005년에 정규직이 쓴 안전화를 신고 버린 장갑을 골라 써야 했던 시절에 현대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최초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다 업무방해로 구속되었다.
2007년 노조지회장을 맡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9일 동안 점거파업을 벌여 2년 하고도 6개월을 '빵살이'했다. 그 후에도 쉼없이 운동하던 그는 2019년에 서울고용노동청사 앞에서 몸무게가 20㎏이 넘게 빠질 정도로 강고하게 47일이나 단식투쟁을 하였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투쟁 현장에서 처음 만난 이래 집회, 기자회견, 농성 등의 현장에서 사회를 보거나 발언이나 말을 하다가 그리도 강한 한 사내가 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백기완 선생의 장례식 때는 한 시간 가까이 통곡을 하였다.
검찰이 집회와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을 구형한 것은 사회의 정의와 사법의 정의를 모두 부정하는 폭력이다. 현재 공식 848만 명, 비공식 1100만 명의 노동자가 같은 일을 하고도 거의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 자체가 신자유주의 체제가 낳은 부조리다. 더구나 대법원은 2010년에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고, 그 후 기아차에 대해서도 지법과 고법이 모두 정규직 전환을 인정하였다. 작년 8월에도 고용노동부는 두 회사의 불법파견에 대해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것을 권고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김수억의 행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비행이며, 사회모순을 극복하는 의로운 실천이며, 사법부의 판결을 바로잡는 정의의 구현이다.
기원 전 2000년부터 시작되고 자본주의 체제 이후 본격화한 경쟁과 탐욕, 각자도생과 폭력의 인류사가 그래도 완전히 지옥으로 전락하지 않은 핵심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강직한 울보'들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소수'에 맞서서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 또한 강직한 울보들이며 이들의 가르침의 정수인 자비심, 사랑, 인(仁)의 바탕은 바로 공감이다. 공감에서 비롯된 실천이야말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행위다. 2월 9일에 강직한 울보를 구속시킨다면 사법부 스스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소수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강직한 울보를 가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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