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얼굴과 신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해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공개 범위가 과하다는 것이다.
수원고등법원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구본창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 했다가 이 기간을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부모의 얼굴 사진과 실명, 거주지, 직장 등을 공개했던 온라인 사이트다. <배드파더스> 측은 지난 10월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자발적으로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자 제보를 받아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 5명(남성 3명, 여성 2명)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2018년 9월 고소당했다.
2020년 1월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구 씨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1심은 "피고인의 활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들(양육비 미지급자 의미)이 제대로 양육비 전액이나 일부를 주지 않아 (피고인의 행동을) 유발한 측면이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공개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의 인격권이나 명예권이 과도하게 침해된다고 보여 공공의 이익보다는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1심 결과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양육비 지급 문제를 단순히 사인간 채권 문제가 아닌 공적 사안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적 제재 수단이 사생활 비밀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적 제재 방법을 제한없이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게시된 정보는 이름, 출생년도, 지역은 물론 얼굴 사진이나 세부적인 직장명까지 공개해 사생활 비밀과 관련 있다"며 "특히 얼굴은 신원을 특정하는 가장 주요한 부분으로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이 크고, 성폭력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때도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지극히 제한적으로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피고인의 행동을) 자초한 면이 있더라도, 얼굴 사진이나 세부적인 직장명까지 공개하는 건 공개 범위가 너무 과도하고 이러한 부분까지 공개하는 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양육비 미지급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고통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이런 (신상공개) 행위를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적이 없으며, 배드파더스 신상공개로 인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입법 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한 점을 인정한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구본창 씨는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를 만나 의견을 밝혔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항소심 판단에 대해 "재판부의 모든 시각이 아동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서 "아동을 보호해야 할 어른이 장기간 저지른 일을 고려하면, (얼굴 등 공개를) 과도한 행위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육자 강하나(가명) 씨도 "아동 생존권 대신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격권과 명예권만 고려한 판결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양육비 해결에 큰 힘을 발휘했다. <배드파더스>가 신상공개로 해결한 양육비 미지급 사례는 220건에 이른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공개 될 것"이라는 통보만으로 사전에 해결된 사례도 약 700건이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지난 19일 양육비 미지급자 두 명의 신상을 온라인 사이트에 처음 공개했다. 다만, <배드파더스>와 달리 얼굴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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