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9개월 만에 받아든 선거 성적표는 처참하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10%포인트 이상 앞섰던 지역인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테리 매컬리프 후보는 공화당 글렌 영킨 후보에게 패했다.
북부 지역은 민주당, 남부 지역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버지니아는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되긴 하지만 근래에는 북부 버지니아 교외(Suburb) 지역의 인구가 크게 늘면서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주)였다. 11월 2일(현지시간) 주지사 선거를 치르기 전 버지니아 주지사와 주의회는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냈던 매컬리프는 다국적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 CEO 출신이자 정치 초년생인 영킨을 상대로 이길 것이라 예상됐던 선거에서 졌고, "스웨터를 입은 온건한 트럼프"(친근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평가 받은 영킨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당선된 공화당 출신 버지니아 주지사가 됐다.
3일 오후 현재 버지니아 부지사, 검찰총장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며, 100석의 버지니아 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47석, 민주당이 46석, 7석은 미정인 상태라 하원 권력도 공화당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절망스러운 선거 결과는 버지니아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블루 스테이트' 중 하나인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도 당초 예상과 달리 민주당 필 머피 현 주지사가 공화당 잭 시아텔리 후보를 상대로 3일 오후 7시 현재 0.07%포인트 차이로 가까스로 앞서고 있다. 개표가 90% 가까이 진행된 상태에서도 아직 승자를 예측하기 힘든 피말리는 초박빙의 승부다. 뉴저지는 선거일 이전 여론조사에서 머피가 10% 안팎의 우위를 보이던 지역인데다, 이 지역까지 공화당이 승리하면 이번에 치러진 주지사 선거 2곳을 모두 공화당에게 내준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겐 매우 충격적인 현실이다.
이번 선거는 바이든 취임 후 치러진 첫번째 큰 규모의 선거이자 내년 11월 있을 중간선거의 풍향계 격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다. 바이든과 민주당의 '위기'는 선거 전에 이미 감지됐다. 지난 1일 PBS와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Marist)가 공통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바이든의 업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4%로 부정 평가(49%) 보다 낮게 나왔다. 민주당 지지자의 44%가 차기 대선에서 바이든의 재선 도전에 반대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야심차게 내놓았던 3조 달러의 규모의 사회복지법안도 공화당과 민주당 일부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이래로 급격하게 가시화 되기 시작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이번 지방선거 패배로 일정 정도 정치 현실에 반영됐다.
민주당, 트럼프 이미지 덧씌우기...공화당, 트럼프와 적당한 거리두기로 교외 유권자들 공략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민주당의 악재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했던 도시 근교 지역 유권자(suburban)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백인, 고학력, 중산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교외 지역 유권자들은 대표적인 '스윙 보터' 그룹 중 하나로 매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이들을 상대로 민주당은 계속 트럼프를 소환했다. 트럼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 지난 1월 6일 일어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 등 실정을 계속 소환하며 공화당 후보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공화당 경선에서 훨씬 더 노골적인 트럼프 지지성향 경쟁자들을 물리친 영킨에게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니었다.
영킨은 식료품세 인하, 코로나 관련 학교 휴교령 폐지, 교육 예산 확충 등 정책 공약으로 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치를 싫어하는 교외 지역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반면에 트럼프 지지자들을 겨냥해서는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교육 금지, 강간 등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한 낙태권 제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영킨은 백인 우월주의와 미국 우선주의에 뿌리를 둔 '트럼피즘(트럼프식 정치)'을 결코 거스르지 않으면서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보수의 이미지를 적절히 버무린 전략을 통해 '블루 스테이트'에서 승리한 공화당 주지사가 됐다.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불리한 추가적인 정황들
뉴저지 주지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감지된다. 사업가이자 주의회 의원 출신인 공화당 잭 시아텔리 후보는 트럼프와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면서 세금 문제를 핵심 이슈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이들은 또 트럼프 진영에서 지난 대선 이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선거 사기론'을 전혀 꺼내들지 않았다. 버지니아와 뉴저지에서 공화당 후보들은 오히려 조기 투표 참여를 적극 독려했고, 이로 인해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합리적인 성향의 온건 보수 유권자들에게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유포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접근이었다.
또 하나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뼈아픈 패배는 '경찰 개혁' 이슈에 대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유권자들의 비토다. 지난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살해된 이 도시의 유권자들은 경찰국을 시의회가 운영하는 공공안전부로 대체하자는 개편안에 대해 56%의 유권자들이 반대했다. 미니애폴리스는 지난 해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를 견인했던 지역이었지만, 경찰 개혁 이슈는 범죄율 증가 등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편, 바이든은 이날 새벽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를 마치고 워싱턴DC로 돌아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