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뉴노멀' 시대의 불편한 질문들
지금까지 한국의 소위 진보 진영은 압축성장과 저항의 시대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단지 민주화 시대의 정체성 속에서 주로 스스로를 좁게 규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국 수호'와 '대국굴기'라는 두 큰 사건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본격적으로 응답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나는 자유주의자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이 두 사건을 관통한다. 견제와 균형, 법적 지배와 개인의 존엄, 정치에서의 윤리적 덕성(integrity)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한 국제사회에서 나는 자유주의진영의 일원인가 아닌가? 미·중 대결 속에서 나는 어떠한 가치로 나를 표현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인테그리티와 법적 측면에서 의문 시 되는 조국 교수를 법무장관에 임명하였다. 최근 지속가능한 발전(SDG)과 기후위기 대응을 국제적으로 선도하고자 선언한 문재인은 같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리버럴 진영은 한국보다는 긴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렇소 나는 자유주의자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2020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는 일부 전략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상적인 '미국의 혼'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결국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하지만 '위드 트럼프' 시대의 영구적 악몽과 중국의 대국굴기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비자유주의적 얼굴에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외면한다. 미국의 전통적 남성 상원의원들 중 가장 여성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좋은 축에 포함되는 바이든과 아프간 여성의 인권에 무관심한 바이든은 같은 사람이다.
이 짧은 에세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둔다. 그간 세계의 추세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의 장을 제공해온 <프레시안> 20주년이기에 향후 또 다른 20년을 위해 질문에서 출발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보다 체계적인 분석과 전망은 이후 단행본 분량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나의 시각에서는 당장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이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규정하는 국내외적 가치는 무엇인가?
-미·중간의 경쟁은 경제 헤게모니 대결에서 실존적 대결에 이르기까지 어디쯤 와 있는가?
-비자유주의, '디지털 마오주의'(최근은 이에 더해 '기후 마오주의')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1년 바이든이 1990년대의 바이든과 매우 다른 리버럴이란 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 리버럴들의 트라우마와 공포, 전략과 이익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양안 문제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기존 전략적 모호성과 안미경중은 유지, 수정, 폐지 중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인류 생명공동체 협력과 '신냉전', 기후선진국과 기후악당, 관여와 압박, 커플링과 디커플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자주국방, 인권과 민생, 국제주의 가치와 주권 등 새로운 불편한 선택지 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수준의 스펙트럼에 위치해야 하는가?
-왜 한국의 대선 주자들은 기후위기 등 게임체인저의 시대에 걸맞은 수준의 외교안보의 신노선이 없는가?
-한국의 기존 진보와 보수 진영은 소위 대전환기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합의하고 무엇을 경쟁해야 하는가?
'주저하는 제국'에서 혼돈의 이행기로?
촘스키 등 좌파 지성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해왔다. 이에 대해 2000년대 초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강압적 제국주의와 차별되는 부드럽고 세련된 통치기제로서의 제국론(Empire)으로 전 세계적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그들은 미국 등도 그 일부인(단지 주도성만 가지는) 민족국가, NGO, 다국적기업의 복합체로서의 제국의 작동방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 제국을 뒷받침하는 지구적 경찰로서 효과적인 통치 수단을 제공해왔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발표자는 당시 미국 리버럴 엘리트들을 비판하는 촘스키와 네그리 둘 다 틀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촘스키와 네그리는 자신들의 관념적인 환상을 현실에 투사하기 전에 실제 미국 정치 현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의 리버럴들은 훨씬 더 순진하고, 갈팡질팡하고 모순적이다. 오히려 미국은 마틴 인딕 전 중동대사가 잘 지적하듯이 외교안보에서 때로는 순진하고(Innocent Abroad), 사만사 파워 전 유엔대사가 분노하듯이 '주저하는 제국'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애초부터 오늘날까지 국내외적으로 매우 다른 가치와 제도가 불안정하게 공존하는 다문명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남부 뉴올리안즈의 봉건성과 북서부 포틀랜드의 포스트모더니즘, 토크빌이 찬양한 천혜의 자연이 준 고립과 세계 최고의 이민 개방성이 공존하는 기이한 '세계국가'이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은 건국의 시조들이나 테오도르 루스벨트(보수)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진보)처럼 일부 제국적 엘리트들의 놀라운 헤게모니 구축 능력으로 이 모순을 잘 관리해왔다. 미국은 국내 정치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자와 지구경찰로서 그럭저럭 기능해왔다.
하지만 건국 이후 부단히 상승해온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자체 모델의 필연적, 역사적 한계 때문에 근본적 차원의 수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국내외적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필연적이란 의미는 탁월한 자유주의적 정치제도 설계에도 불구하고, 미국 모델은 애초부터 제니퍼 네델스키 토론토대 교수가 지적하듯이 소유권의 배타적 점유를 중심으로 타자를 배제하는 가치 체계이다. 이 타자 배제의 역사에는 단지 미국 내 소수자와 제3세계 등만이 아니라 자연 및 미래주체들이 포함된다.
근대문명 고유의 현재주의를 넘어 미래로의 중장기적 시야를 고려할 수도 있었던 상원 설계는 역사적으로 선거제와 결합되면서 그저 또 하나의 당파적 부족주의 기관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를 혁신할 수 있는 기제(예를 들어 헌법 개정)는 너무 문턱이 높다. 이 필연적, 우연적 결함은 정치, 경제의 극단적 양극화, 선거에서의 열망과 집권 후 실망의 사이클, 비토크라시(거부권 정치), 해외에서의 관여와 철수의 좌충우돌 등 수많은 한계를 노정한다.
결국 이 균열의 틈새 속에서 미국 자유주의 합의 문화에서 주변부였던 두 가지 세력이 천하삼분지계의 야심을 가진 채 등장한다. 바로 트럼피즘과 생태사회주의 진영이다. 전자는 부단히 미국 국내와 국제 사회에서 문명충돌을 선동한다. 후자는 부단히 리버럴 민주당의 사회주의 정당으로의 성격 전환을 시도한다. 오늘날 이 두 진영은 건국의 시조들의 계산에서는 주요하게 등장하지 않았던 세력이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신간인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참조. 관련 <프레시안> 인터뷰 "한국 대선, '미국식 자유주의' 넘어선 대담한 전환 고민해야").
이미 오래 전 하워드 위아다 교수는 미국 외교안보에 대한 초당적 엘리트 합의론의 허구를 지적하며 국내 정치제도의 파편성(Broken Government)과 시민문화의 결함 때문에 미국은 외교안보에서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여기에 더해서 건국의 설계 자체 및 수십 년간 출현을 준비해온 트럼피즘과 생태사회주의 등장이 위아다 교수의 비관주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본다.
바이든이나 이후 집권할 수 있는 트럼피즘 후보는(생태사회주의 후보는 다음 대선에는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집권은 불가능)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부단히 불안정성을 노정하고 대전환기를 만들어 내기 어려운 이행기의 후보들이다. 물론 그 이행은 주체들 간의 역동적 투쟁의 결과이기에 어디로 귀착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이 구조적, 역사적 맥락에서 바이든은 다음과 같은 매우 곤혹스럽고 어려운 새로운 현실에 직면해서 비틀거리며 고투하고 있다.
-지금 백악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외 아젠다와 모든 이슈를 지배하는 프리즘은 중국과 트럼프이다. 즉 중국을 견제하고 트럼피즘의 재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를 깊이 이해하지 않는 미국 정세분석은 부단히 틀릴 수밖에 없다.
-미국 리버럴 전반은 지금 중국에 대한 관여 대 압박을 놓고 대논쟁 중이다, 당연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백악관 내부로 좁혀보면 중국 견제론자인 켐벨이 지금까지는 대세이다. 이들 사고방식은 심지어 '신냉전 리버럴'(과거 케네디와 같은 냉전 리버럴과 유사)이란 호칭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다. 물론 과거 냉전과는 크게 맥락이 다르지만 체제의 실존적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 갈등적 경쟁이 국내외 일각에서 생각하듯 단순한 경제적 패권 경쟁만은 아니다. 체제 이념 경쟁도 단순한 패권의 명분만이 아니다, 패권의 명분과 동시에 이념에 대한 실존적 갈등(기존 관여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중국의 굴기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Who lost China?- 포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과거 냉전과 맥락이 다른 현실에서 전면 디커플링이 어렵기에 미국은 일부 전략산업 중심을 중심으로 진영 보호주의를 본격 강화 중이다. 인공지능(AI), 우주산업 등에서 중국 특유의 국가자본주의 위력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오바마 시기 이후의 점진주의적 혁신에서 바이든 시기에는 더 급진적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지금부터 최대 10년간 가장 큰 공포는 대만이다. 이를 둘러싼 미국 워싱턴의 위기감은 매우 높고 중국도 전례 없는 무력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대만 방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 등 새로운 세력균형(Denial Strategy)을 위해 국방전략의 획기적 변화를 심각하게 모색 중이다. 최근 쿼드와 오커스는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의 냉정한 전략적 전환 입장에서 프랑스는 중국 견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한참 떨어진다. 유럽연합은 이제 유라시아 패권 야망을 가진 푸틴을 견제하기 위해 보다 자체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재로서만 보면, 토마스 프리드만의 지적(<뉴욕타임스> 2021년 10월 5일자)처럼 유가 상승 등 에너지 위기로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트럼프나 혹은 보다 안정적인 성격의 트럼피즘 후보가 대선에 나올 수 있다. 민주당이 패배하면 남은 임기는 전환형 리더십이 아니라 관리형에 국한된다. 이후 트럼피즘 후보가 내전 수준의 대선 대결을 거쳐 만약 당선된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더욱 오작동을 일으킨다. 미국의 외교안보 노선은 훨씬 더 패권적이고 고립주의적 경향을 동시에 띨 것이다. 이들은 이제 모두 소위 헌팅턴주의자들이다.
-반면에 비자유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의한 지위 불안, 또는 반대로 공세적 욕망이 이중적으로 존재한다. 등소평, 주은래 등의 지혜로운 실용주의 전략 이후 2008년 미 금융위기 직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중국 공산당의 어리석음은 미국의 강력한 반격을 촉발시켰다. 중국은 이후 트럼프 집권 초기에 그저 그를 실용주의적 CEO 이자 쇼맨으로만 간주하여 협상에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미국 행정부 내 매슈 포틴저 등 중국 견제론자 및 나아가 극단적 반(反)중국파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중국 공산당은 오늘날 그 비자유주의성과 내부 경직성으로 인해 마치 과거 소련이 그러하였듯이 미국 내 자유주의의 탄력성과 정치 과정의 복잡성을 잘 모른다(물론 역으로 미국도 그 자유주의적 편협성으로 중국의 지위 불안 등 정체성의 위기의식과 복잡성을 단순화시킨다).
-현대 미국 대통령들의 업무는 거의 통치불가능한 수준('Impossible Presidency')의 미션이다. 더구나 바이든은 역대 대통령 누구도 직면할 필요가 없었던 전대미문의 과제까지 떠안았다. 바로 기후위기 대응이다. 1960년대 이래 선구적 지성과 정치가들의 누적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제도의 비탄력성은 결국 기후위기 대처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나마 이를 이해한 지미 카터는 실패한 대통령 취급을 받았고, 선구적이었던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기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독일 포츠담연구소 등 세계적 연구기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듯이 현 수준의 과학적 '신중한' 판단에 따르면 기후위기는 해양, 빙하, 육상 등 전방위적으로 불가역적인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였다. 폭포 효과에 의해 급속히 파국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비상 상황이다. 이 기후위기는 바이든 및 이후 30년간 미국의 모든 이슈를 삼킬 최종심급이다.
-서구권에서는 유권자들의 현실적 체감과 위기의식이 강화되면서 국가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화 중이다. 예를 들어 중도적인 바이든 행정부가 사회민주주의 국가론에서나 볼 수 있는, 인프라 확충 등 3조 5천억 달러의 전무후무한 예산안을 추진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중산층 유권자의 불만을 달래는 국내정치적 대응 및 기후레짐 변화를 매개로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를 재구축하려는 행보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 생태사회주의자들은 이 전무후무한 예산조차 기후위기의 티핑 포인트를 막기에 새발의 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군산복합체의 해체를 추구한다. 반면에 공화당은 균형예산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를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갈 재정절벽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레짐 체인지론을 추구한다. 미국은 현재의 비토크라시적 정치구조를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고는 지구적 기후레짐을 선도하기 어렵다. 한편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50%, 민주당의 40% 후반이 연방 분리를 선호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인류 전체의 지구행성 운명공동체 측면인 기후와 보건 이슈조차 위 미·중 갈등에 때로 종속되는 추세이다. 미국의 정치 상황 및 중국의 점진주의적 대응에 따라서는 기후가 강압적 외교의 수단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바이든은 그간 미국 정치의 좌충우돌, '블로우백' 속에서 누적된 위기인 아프간, 이란, 쿠바, 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쿠바는 플로리다의 실향민 유권자 변수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쉬운 문제다. 반면 이란 문제는 지난 오바마 정부 시기 이뤄낸 절묘한 핵 합의가 트럼프에 의해 파기되는 바람에 더 어렵게 꼬여 버렸다. 이제 핵만이 아니라 탄도 미사일 등 골대가 옮겨졌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강경 군사주의와 이란의 보수파 득세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는 아프간 등 정세의 유동성과 결합하여 아시아로의 선회를 부단히 가로막고 있다.
-중국 견제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미국은 당분간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적고 꽃놀이패 정도로만 안이하게 인식해왔다. 백악관과 일부 싱크탱크들의 기류는 그간 수십 년간의 협상 좌절의 트라우마 속에서 군축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아직은 이들은 북한에 대한 대담한 접근에 관심이 없다. 대북 제재 레짐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대북 제재가 거의 신화화 돼 있는 단계이다. 반면에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좌절 이후 북·중 밀착을 더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예정된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관리 국면으로 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미·중 상호 견제, 핵 사찰, 인권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평화협정까지 갈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결국 그간 민족국가의 협소한 시야를 극복해온 주저하는 제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자유주의적 제국과 보호주의적 민족국가의 자장 사이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비자유주의적 성향의 상승하는 제국을 추구하는 중국과 신냉전 및 협력을 동시에 해야 하고, 자유주의 국제주의와 비자유주의적 현실주의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전환의 방향
지금은 지구적으로 대전환기로서 기존의 교과서적 사고를 넘어선 새로운 한반도 구상이 필요하다. 기존 근대문명의 자연착취적 가치 체계와 국가전략,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낙관적 자본주의 세계화 시기의 미국과 중국의 노선, 평화 번영 노선(engagement), 안미경중 등 기존 모든 교과서와 테제를 재검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미·중간 경쟁은 각각 나름의 국내외적인 한계를 가진 국가 패러다임 간의 실존적 갈등이기에 자체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기 어렵고, 미중 갈등이 한반도 연루와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자유주의 가치 특유의 타자에 대한 오만, 내부 정치시스템의 오작동 만연, 미국 중심주의, 현실주의, 보호주의 및 그간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왔던 유럽의 곤혹스러움과 인도 태평양 진출, 중국의 비자유주의 성 향 가시화와 군사적, 경제적 굴기 속에서 지구적으로 당분간 혼돈이 예상된다.
이처럼 복잡다기한 상황에서 다문명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견제, 새로운 지구적 공통 규범과 질서 형성, 가치 조정에 기여하는 국가군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는 그간 압축성장, 패스트 팔로워(추격) 패러다임을 추구해온 모든 사유와 태도. 아젠다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난해한 과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가치 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이자 정체성인 자유주의(헌정주의)적 민주주의의 국내외적 가치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이를 국내외적 아젠다에 녹여내야 한다. 이미 소위 미래 세대인 MZ 세대는 개인의 존엄, 다원성, 생태 등에서 이러한 자유주의 가치로의 방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 가치를 단순히 연설문의 수사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외교안보적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최장집 교수 등이 적절히 지적해왔듯이 그간 한국의 보수가 왜곡하고 진보가 무시했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이제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핵심 자산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야 한다. 이미 근대문명 시기 하벨, 고르바초프 등 부다페스트 클럽은 서구 자유주의의 협소함을 넘어 양자역학 등 당시 신과학 기반의 생태적 세계관에 근거한 전환 정치를 추구한 바 있다. 한반도에도 동학 등의 걸출한 사상과 실천 전통이 존재하였으며 앞서간 자유주의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생명민주주의(모든 존재하는 행위자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제창한 바 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생태적 사상보다는 자유주의적 측면에서 김대중 행정부 시기보다 발전적 움직임을 보였다(견제와 균형, 자의적이지 않은 법적 지배, 시민덕성 등).
하지만 최근 김대중의 생명민주주의, 노무현의 자유주의 문제의식이 흐려지고 가치 정치 및 윤리적 정치(Integrity)의 퇴조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비인간 주체(동식물, 자연, 미래세대)로의 자유주의 가치의 확장이 요구되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기존 인간 공동체의 윤리적, 정치 문제의식마저 후퇴하는 경향은 매우 우려스럽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협소한 자유주의 모델을 더 성숙시키며 자유주의 가치를 선도하고 나아가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발표자는 이를 위에서 언급한 졸고에서 추상적 철학 차원에서는 피터 카첸스타인 교수의 표현을 빌어 다문명 국제주의라 표현하기도 하고, 혹은 (생태) 공화주의 국제주의라 부르기도 한다(지면상 이의 구체적 테제는 생략).
세부 아젠다도 중요하지만 그 등대가 될 국내외적 방향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둘러싸고 대논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구체적 이익의 균형을 모색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새로운 국제 규범의 형성과 조정자로서의 역할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과 인접해 있는 현실에서 오는 실용적 이익의 문제를 새로이 조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단히 좌표를 잃고 방황하거나 위험한 암초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한 전환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언급하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
오늘날 최신 과학과 학문 이론이 새로이 부각하듯이 공동체의 전환은 일부 엘리트의 노력이 아니라 리더와 공동체간 '관계적 신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가능하다. 한국은 미국과 정반대로 엘리트의 헤게모니가 허약하고 시민의 집단지성이 뛰어난 '이중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인근 국가들에 대한 융복합의 전문가 군과 연구소 생태계가 너무 취약하다. 특히 갈수록 중요해지는 기후안보 관련 전문가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선진국에 걸맞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이 요구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지구적 차원의 엄중한 뉴 노멀에 대한 깊은 탐구와 화두를 공유하고 미래로의 열린 진리를 위해 공통의 지반을 형성하려는 제도적,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고정관념을 넘어 뉴 노멀에 맞는 관여와 압박의 균형, 커플링과 디커플링의 균형,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롭고 현실적 전환의 균형, 자주 국방과 평화 프로세스의 균형, 민생과 인권의 균형, 보편적 규범과 타국 주권 존중 사이 균형 등에서 일정한 회색 지대와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이 합의점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평화와 안전이 가능하다. 이제는 기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패러다임을 벗어날 시기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 및 이에 대한 반작용은 새로운 공통 교과서와 다원적 교과서의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특히 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기후위기와 안보의 관련 영역이다. 중국, 북한 등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후 등 재난 영역이 미·중 갈등과 긴 호흡의 북한 이슈를 돌파할 새로운 중요한 조정자의 틈새로 부상하였기에 이는 더욱 중요하다. 국내 전환만이 아니라 외교에서도 '그린 데탕트', 생태 외교 개념 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기존 외교안보 전략, 신한반도 체제론, 정부조직 개편론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기존 진보진영은 기후위기 이슈에서 그간의 무감각과 미적지근한 실천의 오류를 반성하고 보다 열린 자세와 투명성을 가지고 보수와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보수는 새 기후레짐 등장으로 인해 제 2의 IMF위기 는 물론이고 안보 위기가 도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기에 기존 보수주의적 사고에서 크게 전환해야 한다. 화석연료 산업 기반의 보수주의에서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보수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 국내적 대전환도 이루지도 못하면서 대북한 및 미중 관계에서 모범적 규범 촉진자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더 이상적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최근 대선 국면에서 일각에서 제기된 기후시민의회 등 기존 대의제 한계를 넘어서는 실험을 적극 지원하고,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미국식 모델을 넘어 미래 주체(인간과 자연)를 대변하는 가칭 '미래부'까지 포함하는 4부로 발전시킬 이론적, 실천적 시도가 필요하다. 그간 노정된 자유주의 민주주의 모델의 오작동과 한국의 압축 성장 과정의 부실함을 고려할 때 과연 다음 정부에서 분권형 개헌이나 내각제 개헌이 실현된다 해도 국내외적으로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길게 보면 아래로부터의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동시에 융복합의 권위 있는 전문가층(심지어 뉴질랜드 등 국제적 실험처럼 자연과 미래 주체의 수탁자까지 포함하는)이 초당적으로 국내외적인 전환 이슈에서 공론을 모아가고 이를 법안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DMZ 와 접경지역의 새로운 구상, 한반도 신체제론, 평화협정 등에 새로운 영감과 활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통합을 위하여
서두에서 발표자는 위아다 교수의 통찰을 인용하면서 미국이 망가진 정부와 유권자 분열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속가능하고 유능한 외교안보 행동을 구사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위아다 교수의 지적은 갈수록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한 이상적 목표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은 이 극심한 오작동과 분열이다. 비록 갈수록 어렵지만 정치권, 지성계와 시민들은 각자의 당파성을 떠나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프레시안>의 20년간의 여정은 한국이 지구적 인텔리전스를 확장해온 과정의 일환에 다름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걸맞은 지구와 한반도의 시야와 실천, 그리고 내부 정치의 재구축으로 성숙해야 하는 긴급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향후 최소 10년간 이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란 없다. <프레시안>의 그간 걸어온 길을 축하하며 멋진 미래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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