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낙태의 죄'는 사라졌으나, 임신중지는 여전히 보건의료 현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는 해외에서 안전성을 검증받은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페)이 12일 "대체입법이 없어 시민의 건강권이 계속 위협받고 있다"면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모낙폐가 지난 6월 8일부터 7월 16일까지 370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설문조사 및 14명의 심층인터뷰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헌법불합치 결과가 나온 2019년 이후 경험한 당사자도 포함됐다.
모낙폐는 보고서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임신중지 시기가 늦어진다거나,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 이전과 달라진 것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산유도제는 10주 이내 임신에서 임신중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의학적으로 시술이 불가능한 여성의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옵션"이라며 유산유도제의 신속도입과 전면 급여화를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심층인터뷰 대상자 중 4명은 임신중지 당시 유산유도제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의 존재를 알았어도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병원이나 약국에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해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
유산유도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4명 중에서도 사용한 약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낙폐는 "(유산유도제가) 정식 도입이 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당연히 약물이 유통되는 과정도 보건당국의 관리 아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적절한 성분과 용량을 복용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B 씨는 해외단체를 통해 약물을 구하고자 시도했으나 비용부담으로 포기하고, 지인을 통해 비용적 부담이 적은 중국산 미프진을 구했다. 그러나 약물복용 후 한달간 출혈이 계속되다 임신중지에 실패했다. B 씨는 이후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 진료 및 안내를 받고 약물복용을 할 수 있었다.
약물의 복용법이나 증상, 효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건 3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유산유도제 복용을 시도한 C 씨는 심층인터뷰에서 "당시 약물을 판매한다는 약국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갔지만 약사로부터 복약지도도 받지 못한 채 약을 받았다. 집에서 복용을 시도했지만 모두 구토해 실패하고 결국 병원을 찾았다"고 전했다.
모낙폐는 "유산유도제의 유통과 복용이 공신력 없는 민간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사후관리와 복약지도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에 있어서 30여 년 전 경험한 C 씨와 2019년 복용한 B 씨 사이에 큰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안전한 유산유도제의 공식 승인과 도입에 불필요한 지연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접근성 확대를 목표로 한 약물적 임신중지 의료전달체계(약가 설정, 처방, 복약 및 부작용 관리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대약품이 지난해 4월 유산유도제인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의 콤비팩인 미프지미소에 대한 허가신청을 식약처에 제출했다. 식약처가 지난 3월 "상반기 내 허가 목표"라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사전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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