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에서 사회민주당(SPD)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연합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박빙의 결과에 각 당이 연정 주도권 다툼이 겹쳐 실제 정권교체가 이뤄질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27일(이하 현지 시각) 독일 공영방송 <ZDF>는 26일 실시된 독일 연방의원 총선거의 잠정 집계 결과 사민당이 25.8%의 득표율을 보이며 24.1%를 기록한 기민·기사당 연합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에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는 선거 승리 선언을 하며 "유권자들은 내가 연립 정부를 구성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존 독일 정부를 구성했던 기민·기사당 연합의 아르민 라셰트 총리 후보 역시 "항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인 정당에서 총리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며 "기민·기사당 연합이 주도하여 연정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혀 다른 정당과 함께 정부 구성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선거 제도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당도 쉽게 과반을 획득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그간 일반적으로 가장 득표를 많이 한 정당이 다른 정당들과 함께 연립정부(연정)를 꾸려왔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정당만이 연립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득표율 1, 2등 정당이 그 차이가 많지 않을 경우 각자 자신들의 주도로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 모두 30%가 되지 않는 득표를 보였기 때문에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25% 안팎의 의석을 더 채워야 한다.
<ZDF>가 집계한 이번 총선 잠정 결과에 따르면, 14.6%를 득표한 녹색당이 양당에 이은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자유민주당(FDP)이 11.5%로 4위,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0.4%의 득표율로 5위를 기록했다.
이에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 모두 녹색당,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 상황으로는 각 정당의 고유 색깔에 따라 신호등(사민당-빨강·자민당-노랑·녹색당-초록) 연정, 자메이카(기민당-검정·자민당-노랑·녹색당-초록) 연정 등이 가능하다.
물론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의 대연정 정부가 구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 후보는 메르켈 총리 집권 당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대연정 정부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리 후보들은 모두 올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연정 협상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독일에서는 연방하원 선거 이후 한 달 안에 연정을 꾸려야 한다. 이에 다음달 26일 연방하원이 출범해야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경우 1953년 이후 처음으로 3개 이상의 정당이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올해 초 10%대까지 하락했던 사민당의 지지율이 실제 득표와 비교했을 때 2배 가까이 뛰었고, 지지율이 37%에 달했던 기민·기사당 연합은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설립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되면서, 독일 내 여론을 고려했을 때 사민당 중심으로 연정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좌파당은 모두 이전보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우선 독일을 위한 대안의 경우 4년 전 12.6%를 득표했지만, 이번에는 약 2% 포인트 하락한 10.4%를 기록했다.
또 좌파당의 경우 4년 전 9.2%를 득표했으나 이번에는 4.9%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독일은 5% 이상을 득표한 정당만 원내로 진입할 수 있어 좌파당이 원외정당으로 갈 위기에 몰렸으나, 지역구 3곳 이상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원내 의석은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ZDF>의 잠정 득표율을 의석수로 환산할 경우 전체 740석 중 사민당이 209석, 기민·기사당 연합은 196석, 녹색당은 118석, 자민당은 93석, AfD는 84석, 좌파당은 40석을 각각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