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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만난 유다인, 이 아이의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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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만난 유다인, 이 아이의 숨겨진 비밀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누가 다인이를 책임져야 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유다인 양을 만난 다음날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다인이는 너무도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탓에 희귀질환, 중증질환, 만성질환 중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꼭 필요한 약품에 대한 비용 지원도 전혀 받지 못 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유다인 양은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 장이 수축 운동을 하지 않아 음식물이 정체되는, 극희귀질환 ‘가성장폐색증’ 때문이다. 다인 양은 밥보다는 수액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아이 오른쪽 가슴에는 중심정맥과 연결된 '카테터', 즉 주사바늘이 24시간 꽂혀 있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너무도 희귀한 병을" 앓는 탓에 희귀질환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 문 대통령의 글은 아래처럼 이어진다.

"알아보니 현재 '희귀질환'으로 인정하는 법적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서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누락과 사각지대를 없애서 다인이와 같은 극도의 희귀질환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한 날이 2017년 8월 10일이다. 청와대 측이 사전에 몰랐는지, 문 대통령이 당시 언급하지 않은 게 있다. 많은 언론 역시 눈여겨보지 않았거나 묻지 않은, 다인이의 비밀 아닌 비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9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러 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유다인양(당시 5세)을 만난 모습.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유다인은 세계 1위를 다투는 반도체 강국의 그늘에서 태어난, 일명 ‘반도체 아이’다. 다인의 부모는 삼성반도체 출신이다. 반도체 생산 노동자로 근무 중 다인이를 가졌다. 다인이의 몸은 건강보험 보장 확대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누구든 일하다 죽거나 다치면 산업재해보험(이하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그렇다면, 부모의 유해한 노동환경 탓에 선천성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할까?

아홉 살이 된 유다인 양을 만나고 싶었다. 지난 8월 24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유다인 양의 집을 찾았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벽에 걸린 액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인 양 첫돌부터 유치원 졸업 때까지의 사진들. 아이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집안 곳곳의 풍경은 그런 웃음과 많이 달랐다. 아이 방 한 켠엔 의료약품이 가득했다. 수액, 생리식염수, 주사기 등이 붙박이장 한 면을 다 차지했다. 침대 옆에는 수액주입기가 놓여 있었다.

집을 둘러보는 사이, 다인의 엄마 황영애(가명) 씨가 'TPN용 수액'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TPN은 입으로 음식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중심정맥에 삽입한 ‘카테터‘를 통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를 투여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인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수액을 매일 같이 맞고 있어요. 밥 대신에 이걸로 필수 영양분을 섭취한다고 보면 돼요."

TPN용 수액은 농도가 짙고 열량이 높아, 투여 시간만 약 10시간이 소요된다. 다인 양은 매일 잠자는 동안 TPN용 수액을 맞는다. 다인이 몸을 지탱하는 핵심 영양분은 여기서 나오니 거를 수 없다.

황 씨는 안방에서 의무기록지를 꺼내왔다. 다인이 생후 두 돌 때까지의 외래 및 응급 진료 기록을 모은 건데, 한 손으로 잡히지 않을 만큼 두껍다. 황 씨가 손가락으로 의무기록지에 적힌 질병명을 짚었다.

'주상병 : 가성장폐색증, 부상병 : 선천성 거대결장증'

"다인이를 낳고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들은 게 ‘아이 오래 못산다’는 말이었어요. 가성장폐색증을 앓는 대부분의 애들이 9살 전후로 죽을 확률이 높다고 해요."

엄마 황 씨가 이 말을 할 때 다인이는 방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몸 어디가 불편한지 알기 어렵다. 다인이는 다른 아이처럼 학교에 가고 학원에 다닌다. 엄마는 다인이를 남들과 비슷하게 키운다. 남들과 같은 세상에서, 같이 살아야 하니 말이다.

다인이처럼 가성장폐색증을 앓는 사람은 2017년 기준 전국에 약 20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엄마 황 씨는 다인이가 선천적으로 아픈 원인을 전직 회사에서 찾고 있다.

황 씨는 2002년에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2010년 재직 중 첫째 남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사망했다. 둘째 다인이를 임신한 건 2012년이다.

"제가 29살 때 다인이를 임신했는데, 젊은 편이어서 그런지 퇴사할 때까지 공정 라인 안에서 근무했어요. 배가 점점 불러오는데도 10kg짜리 ‘런 캐리어(웨이퍼 묶음)‘를 들었다 놨다 했죠. 그때부터 ‘분명 태아에게 좋지 않겠구나’ 직감했어요. 라인에서 일하는 모든 여사원들의 소원이 오피스(사무실)로 나가는 거였으니까요."

다인이를 임신한 지 30주 됐을 때, 의사는 “태아 방광에 물이 찼다“는 소견을 황 씨에게 밝혔다. 황 씨는 곧바로 퇴사를 결정했다. 2013년의 일이다.

▲  황영애(가명) 씨가 의료용품들을 설명해주는 모습. TPN용 수액, 주사기, 생리식염수 등이 벽장에 정리되어있다. ⓒ주용성

황 씨는 삼성반도체 근무 시절, 공정이 완료된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판)를 테스트해서 불량을 선별하는 'EDS 공정'에서 일했다. EDS 공정은 전기 신호를 통해 웨이퍼 상의 칩이 특정 온도(Hot/Cold)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판별하는 걸 뜻한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2020년 발간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근로자를 위한 안전보건 모델>에 따르면, 웨이퍼의 뒷면을 얇게 갈아주는 과정에서 화학 물질인 연마제의 비산이 노동자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황 씨는 임신한 몸으로 ‘런 캐리어’를 설비에 넣고 빼는 일도 했다. 설비 안으로 고개를 숙여 런 캐리어를 빼낼 때마다 뜨거운 열감을 느꼈다. 임신 중 고온 환경은 태아의 선천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학계에 보고된 여러 사례 중엔 선천성 거대결장증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인이가 부상병으로 앓고 있는 바로 그것, 선천적으로 대장 일부에 신경세포가 없이 태어나 스스로 배변활동을 못 하는 병이다.

다인이는 그동안 병원 신세를 수없이 졌다. 탈장, 장절제술, 장루복원술 등으로 수술실을 수십 번 드나들었다.

치료비도 많이 들었다. 한 살 때까지 외래 및 수술비용으로만 약 5000만 원을 썼다. 지금도 매달 정기 검진비로 약 80만 원을 쓴다. TPN용 수액, 우루산(간약), 메디락(장 유산균약) 등 고정 약값만 매달 약 75만 정도다. 비정기적인 검진과 응급 진료비용까지 고려하면 매달 수백만 원이 나가는 셈이다.

이렇게 아픈데도, 정작 다인이는 희귀질환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희귀질환으로 등록된 병은 ‘산정특례’ 제도에 따라 입원·외래 진료 시 본인부담금을 10%만 내면 되지만, 가성장폐색증은 산정특례 제도에 해당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도 중요하지만, 다인이 사례에서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태아 산재’다. 황영애 씨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황 씨는 지난 2019년 7월 ‘삼성지원보상위원회’에 자녀질환에 대한 보상을 신청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전자산업의 직업병 위험성을 인정하고 회사 차원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해 11월, 삼성지원보상위원회는 황 씨 가족에게 자녀질환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지원했다. 그때 나온 돈이 약 3000만 원이다.

황 씨는 지금 시민단체 '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의 업무상 환경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질병을 갖고 태어난 태아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취지다.

"지금은 저와 남편이 돌봐주니까 괜찮은데, 다인이가 20살 이후에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줘야죠. 산재가 인정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최소한 치료비 정도는 보장될 수 있을 텐데…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미래가 정말 막막한 거죠."

근로복지공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직 모른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은 엄마의 업무상 요인으로 인해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는다 해도 현행법에선 태아를 수급 주체로 보지 않아,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

다인이는 지금도 매일이 응급 상황이다. 가성장폐색증 특성상 몸 상태가 호전되다가도, 예상치 못하게 나빠질 때가 있다. 작년 겨울에는 독감 백신을 맞고 갑작스럽게 장 마비가 와 장 절제술을 받았다. 현재 다인이는 네 번의 수술을 거쳐 대장을 모두 절제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가성장폐색증 특징이에요. 다인이가 새벽에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서 보면, 배가 남산 만하게 부풀어 있어요. 위가 터질 수도 있어서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가야 해요. 그렇게 병원 한 번 가면 한 달씩 입원하는 겁니다."

황 씨는 다인이를 낳은 이후 직장에 다니지 않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병간호를 해야 하니까. 전 직장의 노동환경 탓에 선천적으로 아플 확률이 높은 자녀를 돌보는데도, 그녀를 돕는 사회보장 제도는 없다. 황 씨와 남편만이 다인이 문제를 떠안고 있다.

▲ 황영애(가명) 씨가 의료용품들을 설명해주는 모습. TPN용 수액, 주사기, 생리식염수 등이 벽장에 정리되어있다. ⓒ주용성

요즘 다인이는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닌다. 지난 8월 27일에도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이날은 외과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았다.

외과 진료 후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인이는 엄마와 병원 매점으로 향했다. 젤리 코너 앞을 한참 서성이다 ‘포도맛 젤리’를 손으로 집었다. 그토록 먹고 싶었을 젤리일 텐데, 그날 다인이는 젤리를 딱 한 개만 먹었다.

"다인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먹게 둬요. 애가 잘 먹지를 못하니까 식탐도 생겼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병원 다니면서 고생해서 그런지 이제는 아이가 알아서 안 먹더라고요. 아무리 맛이 궁금해도 딱 한 입만 먹고 스스로 참는 거죠."

다인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마음 편히 먹고 싶은 걸 먹어본 적이 없다. 아이의 장이 받아들일 수 음식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장이 없어 수시로 탈도 난다. 그걸 알면서도 엄마는 음식을 조금이나마 먹게 한다.

"다인이가 태어나서 거의 병원에만 있다보니 발달에도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경구섭취가 안되니까 목 넘김이 퇴화돼서 발음이 어눌해지고, 병원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까 걷는 법도 까먹고요. 어떻게든 다인이에게 삶에 의지를 만들어주려 노력해요."

아홉 살 다인이의 몸과 삶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것들의 이면과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과 생산 능력, 글로벌 기업 삼성,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 점점 보장이 넓어지는 산재보험까지.

이 좋은 것들은 다인이를 아프게 했거나, 아픈 다인이에게 별 도움을 못 주고 있다. 다인이 부모만이 태아산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인이를 책임져야 할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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