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대한 지휘, 감독을 받으며 '노동자'로 일하지만 사용자에 의해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사람들이 있다. 사용자들은 해고, 최저임금, 연장수당, 연차휴가 등 노동관계법 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같은 방법을 쓴다.
자신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소득세율을 보는 것이다. 지정된 장소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상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3.3%의 소득세를 낸다면 '사업소득자'로 위장된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권리찾기유니온(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찾기를 위해 활동하는 노동운동단체)'은 이런 이들을 '가짜 3.3 노동자'라 부르며 이들의 권리 구제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 권리찾기유니온이 찾은 가짜 3.3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들여다봤다.
용역계약 맺었지만 근태관리, 업무 지시 받은 백화점 판매원
정다혜(가명)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E사에 소속돼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며 침대와 매트리스를 판매했다.
처음에 정 씨는 구직사이트를 통해 일을 구한 뒤 E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고 한 달 동안 일했다. 이후 회사가 매장을 구하지 못해 두 달여 간 계약이 단절됐다. 그 뒤 E사는 매장을 구했다며 정 씨에게 용역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때 이 씨는 근로계약과 용역계약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용역계약은 '일의 완성'을 대가로 돈을 주는 사업자 대 사업자의 계약이기 때문에 일감을 주는 회사가 노동관계법상 의무를 지지 않는다. 단, '일의 완성'에 대한 계약이기 때문에 일감을 주는 회사가 일감을 받는 이의 일 처리 과정을 지휘, 감독해서도 안 된다.
용역계약을 맺을 당시 E사는 정 씨에게 '일당은 그대로 지급되며 계약서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심쩍었지만 을이었던 정 씨가 회사에 상황을 꼬치꼬치 따져 묻기는 어려웠다. 그때부터 정 씨의 임금에서는 3.3% 사업소득세가 떼졌다.
근로계약을 맺고 일할 때나 용역계약을 맺고 일할 때나 E사는 정 씨의 업무를 지휘 감독했다.
먼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정 씨는 매일 백화점 개장시간인 오전 10시에 출근해 평일 오후 8시, 주말 8시 30분로 정해져 있는 폐장시간에 퇴근했다. 휴무 계획도 E사에 보고했다. 돈은 근무일수에 비례해 지급됐다.
사업자로서 갖춰야 할 독립성도 없었다. 이 씨가 팔 제품과 판매가, 할인율은 E사가 정했다. 고객응대 방법이나 물품을 팔았을 시 계약서 작성 방법에 대해서도 회사의 지시를 따랐다. 퇴근 뒤에는 당일 매출을 회사에 보고했다.
지난 2월 E사는 이 씨에게 용역계약 만료를 이유로 사실상의 해고를 통보했다. 정 씨는 권리찾기유니온을 통해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지난 4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 씨가 E사가 지정한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했고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 씨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했다. 단, 용역계약서상의 계약기간을 근로계약기간으로 인정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은 기각했다. 현재 정 씨는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사업소득자 신분으로 '일당 1만원+판매수수료' 받고 일한 분양상담사
6년차 분양상담사인 김소연 씨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서울 강북구에서 분양대행사인 P사가 수주한 오피스텔 분양과 관련한 상담 업무를 했다.
김 씨와 P사 간에는 따로 계약서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김 씨의 소득은 일비라고 불리는 일종의 기본급에 계약 건수에 따른 판매수수료를 더해 정해졌다. 일비는 일당 1만 원이었다. 일비와 판매수수료에서는 3.3% 사업소득세가 징수됐다.
명목상 사업소득자였던 셈이지만 김 씨는 사용자의 근태와 업무 방식 등에 대해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했다.
모델하우스로 출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지각하면 경위서를 내야 일비가 지급됐다. 퇴근시간은 보통은 오후 6시, 당직일은 오후 8시였다. 한 달에 한, 두 번 있는 휴무일은 P사 직원인 본부장이 전날 정해 공지했다.
업무 지시도 있었다. 아침 조회 때는 본부장이 당일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분양상담사들이 낸 업무 보고일지에 따라 전날 실적을 점검했다. 모델하우스 밖으로 나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영업테이블을 설치할 때면, 본부장이 근무장소와 영업방식을 지시했다. 일과가 끝나면 본부장이 정한 순서에 따라 분양상담사들이 돌아가며 사무실을 청소했다.
지난 5월 본부장은 김 씨에게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 김 씨 역시 권리찾기유니온을 통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P사의 근태관리, 업무 지시 등에 대한 증거를 바탕으로 김 씨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단하고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인용했다.
"가짜 3.3 노동자 문제 해결하려면, 노동자성 입증 책임 사용자에게 지워야"
사용자가 실제로는 업무를 지휘, 감독하면서도 노동자와 용역계약을 맺어 노동관계법상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은 노동자성 다툼이 있을 때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실장은 "앞선 백화점 판매원이나 분양상담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용역계약을 맺고 일했어도 소송이나 진정을 제기하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며 "현재는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했어도 형식적으로 사업자 계약을 맺었거나 사용자가 '너는 사업자'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또는 증거를 미리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송이나 진정을 포기하는 노동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 실장은 "타인의 사업에 노동을 제공하고 소득이 발생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노동자로 보고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을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위법 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부담을 늘리고 노동자의 구제를 쉽게 해야 '가짜 3.3 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 실장은 "앞으로 사업자 계약을 맺고 일하는 택배기사 등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진정을 진행하고 지속적으로 '가짜3.3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제보를 받을 계획"이라며 "가짜3.3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전략, 대정부 요구를 발표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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