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렌탈 가전제품 방문관리 노동자 A씨는 제품 관리를 마치고 나온 뒤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고객은 귀중품이 없어졌다며 A씨에게 화를 냈다. 울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A씨는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사라진 귀중품은 별거 중이던 고객의 남편이 가져간 것이었다. 이 일로 A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여성 방문관리 노동자 B씨는 고객의 집을 찾아 제품을 관리하던 중 바로 뒤에 남성이 서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뒤를 돌아봤는데 남성의 몸이 자신의 가슴에 스쳤다. B씨가 항의하자 웃는 표정과 함께 '실수'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 남성은 B씨에게 성적인 내용이 담긴 이미지 사진과 함께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냈다. B씨는 회사에 해당 남성이 사는 집의 방문관리 변경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G전자 렌탈 가전제품 방문관리 노동자 10명 중 3명이 고객의 정신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회사에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19일 국회 본관에서 금속노조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주최한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 건강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이같은 사례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토론회에서 하이케어솔루션(LG전자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가전제품 렌탈 방문관리 업체)에서 일하는 방문관리 노동자 386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렌탈 가전제품 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응답자 중 99.2%(383명)는 여성이었고 평균 연령은 47.8세였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5.8%(137명)는 고객의 정신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 문항에서 제시한 정신적 성적 폭력의 예시는 모욕적 비난, 고함, 욕설, 신체접촉 등이다.
응답자 23.5%(90명)는 직장 내에서도 같은 종류의 정신적, 성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방문관리 노동자가 고객이나 직장에서 정신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고 답한 비율이 상당히 높다"며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 회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확인된다"고 말했다.
최은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은 "성희롱, 성추행 사건이 접수되면 기업이 그 가정에 방문할 때 2인 1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공지하고 그럼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방문관리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며 "기업이 방문관리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에는 LG 방문관리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업병적 질환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응답자 94.8%(366명)는 통증 빈도가 한 달 1회 이상이거나 통증 기간이 1주일 이상 지속된 근골격계 질환을 겪었다고 답했다. 76.7%(296명)는 통증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이를 소형 청소기, 전동 드릴 등 총 10kg이 넘는 무게의 점검 장비를 들고 다니며 월 평균 182개의 가전제품을 관리해야 하는 노동환경 영향 탓으로 해석했다. 허리를 굽히는 등 장시간 불편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점도 근골격계 질환 요인으로 지목했다.
비뇨기계 질환을 겪고 있다고 한 응답자의 비율도 35.8%(138명)로 높게 나타났다. 이동·방문 노동의 특성상 제때 화장실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방문관리 노동자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려면, 작업 자세 및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매뉴얼 개발, 중량물 취급 방법 개선, 하루 적정 관리 제품 수 보장,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 건당 수수료가 아닌 기본급 책정 등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며 "비뇨기계 질환에 대해서는 이동방문노동자 쉼터 확보 등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또 "방문관리 노동자가 근골격계, 비뇨기계 질환으로 겪는 어려움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사례를 모아 산재를 신청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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