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이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보건복지부 대변인이다. 코로나 정례 브리핑에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등장해 방송 화면 등을 통해 국민에게 낯익은 인물이다. 의사 출신의 그는 가끔 말실수 내지는 사실을 호도하는 발언과 해명으로 비판을 받곤 한다. 그가 또 사고를 쳤다.
우리 사회에서는 코로나 4차 대유행이 굵고 짧게 끝나지 않고 그 끝 지점을 모른 채 굵고 길게 계속되고 있다. 국민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자영업자 등은 심각한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중수본의 핵심 고위공무원으로서 코로나와 관련한 사실을 설명하고 해명할 때는 국민이 오해하지 않고 짜증을 내는 일이 없도록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히 어떤 사실이나 수치를 가지고 외국과 비교하거나 유사한 것에 비유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이때는 듣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사회·심리적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과 같은 상황이나 코로나 방역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비교와 비유는 잘하면 특효약, 못하면 독약
위험소통 실전 가이드 책에는 훌륭한 비교나 비유는 백마디 말이나 긴 설명보다 더 강력한 각인 효과를 지니고 사람들의 이해력을 높이며 실천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어설픈 비교·비유나 사실을 호도하는 비교·비유는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심각한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비교·비유는 위험소통에서도 매우 힘든 영역이다. 비교와 비유는 잘하면 특효약이 되지만 잘못하면 독약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코로나 정례브리핑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올해 5~6월 위중증 환자 및 사망자 93.5%는 백신 미접종자"라고 발표했다. 이는 백신 접종이 위중증과 사망을 크게 낮춘다고 누누이 강조해온 전문가와 정부의 설명에 잘 들어맞는 매우 상식적인 결과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백신을 빨리 많이 확보해 (접종했더라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그만큼 많이 나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또한 지극히 상식적인 지적이자 질문이다.
따라서 이런 지적이나 질문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라면 그냥 '쿨하게' 이를 인정하고 앞으로 최대한 백신 확보와 접종을 서둘러 미접종자의 위중증과 사망을 대폭 줄이겠다고 말하면 된다.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면 된다. 하지만 손영래 반장은 백신 늑장 확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언론의 질문을 고깝게 여긴 듯했다.
백신 늑장 확보 책임 피하려 미국 사망자 300배 발언 구설수
물론 그런 지적이나 질문을 들으면 야속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1년 반 넘게 의료종사자뿐만 아니라 방역을 담당한 공무원들이 잠도 마음껏 자지 못하고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더라도 국민 앞에서는 늘 겸손하고 낮은 자세의 태도와 언행을 보여야 한다.
손 반장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난 배경은 다양한 요인들이 뒤섞인 복합적이 문제라고 했다. 특정한 부분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나 설명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 하지만 백신 늑장 확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자 그가 쓸데없는 비교를 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코로나) 치명률은 1.04%, 누적 사망자는 2104명"이라고 관련 수치를 제시하면서 "이를테면 미국은 누적 사망자가 60만7000여명이며, 치명률은 1.8%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300배 이상 사망자가 많지만, 미국 정부가 한국(정부)보다 (책임이) 300배 많은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의 인구 차이 큰데 단순 비교는 난센스
미국을 끌어들여 한국의 방역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미국보다도 잘 하고 있으니 백신 관련 정부 책임 운운을 더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런 비교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누적 사망자를 절대숫자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건복지부 고위관료가, 그것도 의사 출신이 이런 비교를 한다는 것은 자질을 의심케 할 만한 사안이다. 미국과 한국은 인구수가 6배 이상 차이 난다. 그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보건의료에서는 통계 수치를 많이 다룬다. 이 때문에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과대학을 다닐 때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오랜 관료 생활을 하면서도 몸에 배였을 터이다.
만약 제주도에서 신규 확진자가 10명 나오고 서울에서 신규 확진자가 500명 나왔을 때 이를 제주보다 서울에서 신규 확진자가 50배 더 많이 나왔다고 배수를 비교해 말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제주에서 5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서울에서도 5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온 것을 두고 이를 두 지역에서 유행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다시 말해 인구가 적은 지역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발생한 암 환자와 사망자나 지역 의사 수, 병원 수를 단순 절대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10만 명당 통계나 1만 명당 수치를 비교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만국공통이다. 10만 명의 인구 소국인 산마리노와 10억 명이 훨씬 넘는 인구 대국 인도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절대 수치로 비교해 설명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이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부 고위 관료, 체계적 위험소통 교육 시급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누적 사망자 수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그 배수만큼 무거운 책임을 비례해서 물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비상식적인 비교를 한 것이다. "이런 식(백신 접종이 더뎌 사망자가 늘고 있다는 지적 또는 질의)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삼으면 우리나라보다 사망자가 300배 이상 많은 미국 정부 책임은 우리 정부보다 300배 많게 되느냐는 것이냐"는 손 반장의 발언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국의 사망자가 우리보다 300배 더 많다는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을 호도한다는 점에서 그가 더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대오각성하거나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손 대변인의 비뚤어진 비교 발언을 계기로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 특히 코로나 방역에 종사하며 언론과 자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비교·비유가 좋으며 어떤 비교·비유를 해서는 안 되는지 학습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고위 관료들이 위험 소통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듣지 못했다.
위험소통에 대한 기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사고를 친다. 손 대변인은 이미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늦게 백신을 맞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는 식으로 국민에게 염장 지르는 발언을 한 전과가 있다. 물론 그 외에도 그동안 국회의원,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언행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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