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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브룩스 "남·북·미 동맹" 주장...중국 겨냥한 한반도 지정학적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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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브룩스 "남·북·미 동맹" 주장...중국 겨냥한 한반도 지정학적 대전환?

[기고] 빈센트 브룩스와 임호영의 '북한과 대타결'을 읽고

한미연합사 전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Brooks)와 전 부사령관 임호영은 지난 7월 29일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에 에세이 "북한과 대타결"(A Grand Bargain With North Korea)을 발표했다. (☞원문 보기) 이 글의 부제는 북한의 경제적 곤경을 활용해 평화를 확보하자는 것이지만, 실제 이 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의 근본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저자들은 제시했다. 이 글의 심층적 분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들은 북한이 최근 선군노선에서 인민대중제일 노선으로 전환해 경제적 곤경을 타개하고자 하는 점에 주목한다. 코로나 사태, 국제적 경제제재, 자연재해, 식량난 등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이 극히 어려워진 것이다. 다른 한편 북한이 최근 군사적 측면에서 비도발적 태도를 보인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저자들은 과거 한미가 북한에 대해 취했던 군사적 압박, 경제제재, 중국의 협조를 통한 비핵화 시도 등이 유효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북한이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로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북한이 대화에 임하면 경제적 지원을 즉각 제공하자고 저자들은 주장했다. 나아가 한미는 과감하게 종전선언을 고려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촉구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도 미국과 한국에 좀 더 우호적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자가 더욱더 신뢰를 구축할 수 있고,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이 원하는 다자간 안전보장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입장이다.

두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및 북중관계의 재정립이다. 한미는 북한 경제 부흥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프라스트럭처 펀드'를 조성해 북한에 무이자로 자금을 제공하고, 남북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도 상정할 수 있다. 경제지원으로 북한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일 수 있다. 한미와 북한은 군사관계를 정상화 하고, 남북한 군사당국은 분쟁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UN군의 역할은 축소된다.

세 번째 단계가 평화협정 체결이다. 핵무기가 폐기되고, 남북한이 현실적으로 상대방을 침공할 수 없을 때 체결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와 양보를 전제로 한 전략적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한미는 북한을 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통합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무역과 투자를 주도적 담당하고, 미국은 국제금융을 제공하고 무역파트너가 된다. 남북한의 자유무역협정은 인도-태평양 무역 파트너십으로 확대돼, 북한이 아시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치로 동북아에 새로운 경제 질서가 공고해지고 항구적 평화가 가능해진다고 저자들은 본다. 한미와 북한의 새로운 관계 정립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세력균형(new balance of power)이 이뤄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 한미 간의 굳건한 연대는 필수적 전제이다.

이 글에서 가장 핵심적 부분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새로운 세력균형이다. 이를 한미의 전략적 목표로 저자들은 제시했다. 한마디로 미국과 한국, 북한이 공동으로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이 새로운 균형구도를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고 북한을 한미가 주도하는 질서의 구성원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북한을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 수용하기 위해 북한이 원하는 경제부흥과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왔던 북한에 대한 고립전략, 봉쇄전략에서 180도 방향을 선회해 북한을 포용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에 일대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의 고위 안보 엘리트 출신으로 한반도 상황을 누구보다 숙지하고 있는 브룩스 전 사령관의 이런 제안은 미국이 대북한 전략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현 상황(unacceptable status quo)을 타개해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하자는 것이다. 저자들이 왜 이런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된 것일까?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대외전략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세계대전 후 최대의 시파워(sea power)가 된 미국은 최대의 랜드파워(land power) 소련을 봉쇄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었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시파워와 랜드파워의 대결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것도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전쟁 정전 후 20년이 된 1972년 미국은 적국이었던 중국과 전격적으로 관계를 정상화한다. 중국의 정치이념이나 가치체계가 바뀌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소련과 갈등을 겪고 있던 중국을 견인해 소련의 파워를 약화시키려는 지정학적 전략이었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연대해 소련을 견제하는 연미항소(聯美抗蘇) 전략을 선택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으로 힘을 키워왔다.

미국은 베트남 전역이 공산화된 1975년 국교를 끊었다가 20년이 지난 1995년 베트남과 관계를 복원한다. 베트남은 공산당이 여전히 지배했다. 미국에 베트남의 정치체제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베트남은 갈등관계에 있던 중국을 견제해 줄 대국의 힘이 필요했고, 소련이 몰락한 후 잠재적 경쟁자가 된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던 미국은 동남아시아와 남중국해에서 그 역할을 분담할 베트남이 필요했다. 양국의 지정학적 이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렇듯 미국 대외전략의 기저에는 지정학적 고려가 항상 작동했다.

중국이 예상보다 더 빨리, 더 크게 굴기한 지금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중국의 견제이다. 러시아도 주요 경쟁자이긴 하지만, 중국이 더 위협적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봉쇄 내지 견제를 위해 새롭게 전략적 지도를 그려야 한다. 동아시아의 핵심적 위치에 한반도가 있다.

지정학의 비조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는 일찍이 한반도를 랜드파워를 견제하기 위한 핵심적 교두보로 지목했다. 미국의 대표적 외교 안보 전략가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한국을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축(pivot)으로 규정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냉전 시기 소련을 견제하고 그 후에는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 한국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만 확보되면 충분했다. 주한미군이 주둔했고 전시작전권도 보유했다. 굳이 북한까지 포용할 필요가 없었다.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들어서면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이 소멸되어 도리어 주한미군이 철수할 상황에 몰리고, 그렇게 되면 주일미군의 지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아시아 전체에 대한 전략적 힘이 약화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오히려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사에 유례없이 한국전쟁 정전 후 68년이 되는데도 종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적대적 분단체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 일본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 중국의 상대적 파워가 비약적으로 강해진 데 반해,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의 상대적 국력은 약화되고 있다. 일본 주도로 동북아시아에 중국을 견제할 세력균형 구도를 만들 수 없다. 북한은 핵과 장거리미사일로 무장했다. 체제 생존을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북한을 압박해 비핵화를 달성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반면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그게 북한에 이익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민은 돈 문제에도 있다. 미국의 2031년 국가부채는 GDP의 107% 수준에 이른다. 부채이자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금의 5% 수준에서 2030년에는 12% 수준에 이르고 이후에도 급증해 2050년에는 거의 45%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재정적 제약으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군사적 자원은 더 제한될 것이다. 재정악화로 미국 내에 고립주의적 여론이 더 힘을 얻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개입의 강도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유연한 구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적 지렛대를 더 강화하면서 한반도의 현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 한 후 북한을 지정학적 파트너로 만드는 것이다. 연미항중(聯美抗中)이다. 북한에도 그게 바람직한 선택지이다. 미국과 한국만이 북한의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을 도와줄 수 있다. 한국에도 최선이다. 평화체제가 들어선 한반도가 더 부담스러워질까 우려하는 일본으로서는 남북한과 전략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이를 피할 필요가 없다. 오직 중국만이 가장 원하지 않는 구도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 등의 에세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제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이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려는 의지를 확인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미국의 현직 관료는 아니지만 한반도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직 고위 안보 엘리트로서 이런 제안을 했다. 최소한 미국의 외교안보 엘리트 일부는 이런 생각에 공감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한국이 능동적으로 매개한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각론에서 이견이 있을 것이고 협상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정학의 덫에 갇혀 있던 한반도가 이제 스스로 나서야 한다. 어떤 구도가 최선인지를 모색하고 선택해야 한다. 분단된 상상력을 복원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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