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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무려 181개 법안 발의, 이게 '일하는 국회'의 증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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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무려 181개 법안 발의, 이게 '일하는 국회'의 증명일까?

[기고] 폭주하는 법안들 때문에 정작 절실한 법률이 제때 만들어질 수 없다

2020년 5월 30일부터 2021년 6월 24일까지 21대 국회 1년 동안 제출된 우리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총 1만 145건이나 된다. 같은 기간 20대 국회의 6682건과 비교해도 무려 51% 늘었다.

‘허울 좋은 빈 깡통’, 세계 1위의 법안발의 건수

우리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어느 선진국 의회와 비교해도 가히 압도적 차원이다. 프랑스 의원들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발의한 법안은 총 1,834건이었다. 프랑스에서 대체로 1년에 정부 발의 법안은 30~50건, 의원 발의 법안 수는 200~300건 정도이다. 그리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고작해야 10개 법안 정도만 의결된다. 또 일본 의원들은 2009년부터 2012년에 253건의 법안을 발의하였다.

겉으로 나타난 수치만 보자면, 우리 국회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회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우리 의원들께서 발의하는 법안들이 대부분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란 사실은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당해’라는 법률용어를 ‘해당’으로, ‘감안’을 ‘고려’로 고치는 법안을 비롯하여 같은 내용을 여러 법안에 복사해 붙이는 방식 등 참으로 가볍기 그지없는 엉터리 법안 발의가 수두룩한 실정이다.

하루에 무려 181개 법안 발의, 이게 ‘일하는 국회’의 증명일까?

우리 국회에서 왜 이렇게 법안 발의가 폭주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각 정당 공천기준에서 법안발의 건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법안발의 건수를 현역의원 심사평가 및 공천심사에 활용하고 있다. 2019년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의정활동평가에 2019년 10월까지의 법안발의 건수를 공천에 반영한다고 하자 10월 31일 하루에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무려 181건에 이르렀다.

사실 법률 제정이란 국가 중대사로서 정확하고도 엄중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의원 본인이 스스로 수행해야 할 업무량도 대단히 많다. 이를테면, 미국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소관 상임위에 넘겨진 뒤 소위원회의 청문회와 축조심사 등을 거쳐 발의자의 검토보고서가 작성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상임위에서 찬성 혹은 폐기가 결정된다.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의 심사보고서에는 수정안 및 위원회 수정의견을 비롯하여 법안의 취지 및 주요 골자, 법안의 내용, 위원회 심사결과 요약, 위원회 심의경과 및 내용(청문회 및 축조심의 내용), 법안의 필요성과 그 배경, 법안에 대한 조문별 위원회 의견이 담긴다. 또 법안 조문별 내용 분석, 법안의 취지에 대한 위원회 의견, 법안에 수반되는 소요 예산 추계, 세출 집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정책 집행상의 소관위원회 감독의견 및 권고안, 정부개혁위원회의 감독의견 및 권고안, 의회예산처의 비용분석과 재정영향 평가, 행정부 입장 및 의견, 수정조문 대비표, 투표 결과 기록, 보충의견, 소수의견 및 부대의견, 지방정부에 재정 부담을 주는 경우의 부담예산 추계 등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정작 절실한 법률이 폭주하는 법안들 때문에 제때 만들어지지 못한다

독일 의회에서는 이렇게 법안 제정이 요구하는 막중한 업무로 인해 의원내각제로서 정부 조직의 지원이 없는 야당의원들은 법안을 발의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또 발의해봤자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반면 우리 국회는 법안을 발의하면 의원의 임무는 대개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나라 의회 의원과 달리, 그 법안의 검토와 심사, 통과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폭주하는 법안 발의의 폐해는 크다. 정작 국민들과 사회에서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법안들도 이렇듯 밀려드는 법안들 때문에 적시에 제정될 수 없게 된다. 법률안들에 가중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만 “먼저 발의된 법안을 먼저 검토한다”는 ‘선입선출(先入先出)’의 원칙만 있기 때문이다. 인력 낭비와 시간 낭비 역시 엄청나다. 또한 이렇게 쏟아지는 법안 발의를 명분으로 그렇지 않아도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국회사무처는 증원을 요구하고 실제로 최근 “법안 발의에 의한 업무량 폭주”를 이유로 조직을 증원했다.

국회에서 법안발의가 폭주하는 근본 요인은 각 정당들이 법안발의 건수를 공천평가 주요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각 정당들은 법안발의 건수를 공천평가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렇게 국회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하나씩 없애나가야 우리 국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 물론 시민단체들 역시 법안발의 건수를 의원평가 기준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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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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