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수십년 만에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고질적인 식량 부족, 전력 부족 문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의약품 부족, 물가 급등 현상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12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수도 아바나 등에서 일어난 이번 시위에 수천명의 참가자들은 "자유"와 "국민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구호를 외쳤다. 아바나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카르데나스 지역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차를 전복시키기도 했으며, 정부가 운영하는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이번 시위와 관련해 적어도 80명 이상을 체포했으며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경비를 강화해 경찰 병력을 곳곳에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11일 수도 아바나에는 반정부 시위대 뿐 아니라 이에 맞서는 친정부 시민들까지 쏟아져 나와 시위대와 맞섰다. 또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도 쿠바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마이애미에 이주한 쿠바 출신 미국인들은 대다수가 쿠바 공산당 정부에 비판적이다. 12일 스페인 바르셀로냐 등에서도 쿠바 출신 이주자들이 쿠바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구엘 디아즈-카넬 버뮤데즈 쿠바 대통령은 12일 쿠바 국영방송을 통해 이번 사태가 식량과 전기 공급 부족, 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미국이 쿠바 국민들을 '감정적'으로 이용하려는 은밀한 캠페인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시위대의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는 주장이다. 쿠바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조종당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아야 한다"며 거듭 미국과 정치적 갈등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시위에 대해 테드 헨켄 뉴욕대 교수는 12일 <D.W>(독일 공영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조직도 없고 리더도 없었다"며 "비효율적인 쿠바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이를 초래한 것은 미국의 경제제재도 분명 원인이지만, 이번 시위를 촉발한 문제들에 대해 쿠바 정부가 '미국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헨켄 교수는 그러나 이번 시위가 공산당 정권 반대 운동으로 비화될 것인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는 "2000년 11월에도 쿠바에서 예술가들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며 "이런 흐름이 저변에 분명히 깔려 있지만 이번 시위는 식량과 전기 부족, 의약품 부족 등에 대한 불만이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폭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쿠바 국민들의 권리가 존중돼야 한다"
한편, 쿠바의 시위와 관련해 미국 정치권은 이례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성명을 통해 "쿠바 국민들은 용감하게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와 자신들의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등 이러한 권리들은 존중돼야 한다"며 "미국은 쿠바 정권이 자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이날 "미국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쿠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 국민들은 쿠바 국민과 자유를 향한 그들의 숭고한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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