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 22분께, 광주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공사 중이던 지상 5층 상가 건물이 통째로 붕괴했다. 그러면서 그 잔해가 건물 옆 정류장에 서 있던 시내버스를 덮쳤고, 버스 안에 갇힌 17명의 탑승자 중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건물 잔해가 버스를 덮칠 당시 영상을 보면, 공사현장 가림막 옆 도로로 5층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무너졌고, 이는 정차한 시내버스 위로 떨어졌다. 이 참사로 45인승 시내버스는 본래 높이의 절반 수준으로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이 지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현대산업개발과 철거업무를 담당한 하청 업체는 작업 중 붕괴 조짐을 감지하고 인력을 대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철거 건물 내에는 작업자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소방당국은 재개발 건물 철거 현장에서 추가 사상자를 수색 중이나 10일 오전까지 발견된 이는 없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이날 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했고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투입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붕괴 현장을 찾은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는 유가족과 부상자들에게 사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이 밝혀지도록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과정과 책임 소재 등에는 확답을 피했다.
건설업 관행 다단계 하도급이 참사 불렀다?
아직 정확한 참사 원인이 드러난 건 아니지만 건설업의 고질병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이번 참사를 불러왔다는 게 중론이다. 건설업은 원청인 시공사가 있고, 그 밑으로 실질인 작업을 하는 하도급이 있다.
문제는 이 하도급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하도급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건설업에서 1차 하도급을 주는 것은 합법이나, 1차 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다른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건설업에서는 관행으로 다단계 하도급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참사에서 철거를 맡은 업체 밑에도 여러 개 불법 하도급 업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주목할 점은 다단계 하도급으로 내려갈수록 안전 관리 등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진율을 남기려는 하청 업체들이 하는 제일 손쉬운 방법은 안전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하도급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가속화된다. 건설업에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2020년 사고사로 사망한 산업재해 건수(882명) 중 건설업(458명)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재개발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에서 이번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불법다단계가 진행되는지, 안전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등을 살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
사실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건, 무리한 주장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실질 책임을 지는 주체가 없는 다단계 구조의 건설업에서 재개발에서만이라도 공공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문제는 국수본에서 진상조사를 한다 해도 지자체나 건설 원청이 처벌받을 일은 요원하다는 점이다. 올해 1월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년 유예돼 2022년 1월부터 실행된다. 더구나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더 유예돼 2024년에 실행된다.
통과된 법으로는 원청이나 지자체를 처벌하기도 어렵다. 공무원 처벌 규정, 발주처 책임 규정 등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공무원 처벌 규정은 '공무원의 인허가 감독 행위와 중대재해의 인과관계 입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발주처 책임 규정은 '도급이라는 개념에 들어가기에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빠졌다.
결국, 이번 참사도 다단계 구조의 맨 밑자락에 있는 이들만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형 참사가 발생해도 근본사태를 책임지고 처벌받는 이가 없게 되는 식이다.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