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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착취로 유지되는 아마존 제국...한국의 모습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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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 착취로 유지되는 아마존 제국...한국의 모습은 다를까

[기자의 눈] 한국 사회에 투영된 아마존의 모습

올해 아카데미는 배우 윤여정 씨의 수상으로 한국에서의 관심은 영화 <미나리>로 몰렸다. 사실 올해 아카데미에서 화제가 된 영화는 따로 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부터 토론토, 전미 비평가협회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를 휩쓴 <노매드랜드>는 아카데미에서도 감독상과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자신이 살던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하면서 중년 여성 펀이 홀로 밴을 타고 노매드(nomad·유랑민)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담은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3년 동안 노매드 노동자들을 밀착 취재해 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 영화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금융위기 이후, 노매드가 된 미국 중산층의 삶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을 내지 못하게 된,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이들. 그들은 고정된 주거지 없이 차를 개조해서 미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차를 세운 곳이 집이고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 다시 차가 된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평생을 쉼 없이 일해 온 퇴직 노동자들이다. 한평생을 일했으나, 자신의 잘못도 아닌 금융위기로, 안락한 노후를 꿈꿀 수 없게 됐다. 저자는 63살 린다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의 저임금 노동자가, 금융위기라는 외부의 타격으로 한순간에 '노매드'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담담히 설명한다.

두 자녀를 혼자 키운 린다는 나이가 들수록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열악한 일자리로 밀려났다. 각종 학위와 자격증은 아무 소용없었다. 결국, 결혼한 딸집에 얹혀살게 됐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사위도 직장을 잃고 손녀 병원비 부담이 커졌다. 린다가 중고 트레일러를 구입해 집을 떠난 이유다.

유일한 버팀목인 퇴직연금은 고작 500달러였다. 트레일러에서 먹고 자는 삶을 꿈꿨지만, 떠돌이 인생도 쉽지는 않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린다를 비롯한 '노매드'들은 추수감사절 즈음 아마존에서 모집하는 '캠퍼포스(CamperForce)'에 참여한다. 아마존은 매년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핑대란에 맞춰 일시적인 인력을 확보하고자 캠퍼포스를 개최한다.

여기에 응모한 사람들은 자신의 차에서 먹고 자면서 아마존 창고에서 일할 수 있다. 자연히 참여자들은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은퇴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마존은 이런 노인들을 대상으로 캠퍼포스를 진행하는 것이다.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하루 교대근무로 10~12시간 일해야 한다. 제품 바코드를 스캔하고, 분류하고, 상자에 담는 일이다. 몸을 굽히고, 쪼그려 앉고, 계단을 오르면서 하루 24㎞ 이상 걸어야 하기도 한다. 린다는 바코드 스캔을 너무 많이 해서 손목에 관절염이 걸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주야간 노동 시간당 15달러에 초과 근무 수당, 주간 급여 등과 밴이 주차된 캠핑장 비용, 전기세 등을 받는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생활도 빠듯한 돈이다.

그나마도 아마존에서의 일이 없으면 이들 노매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아마존에 감사하는 이유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기간은 약 3~4개월. 이 일이 끝나면 노매드들은 다시 밴을 몰고 숲 야영장 관리인 등의 일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진다.

한국 사회에 투영된 아마존의 모습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직업안전보건청(OSHA)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도하면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아마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른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비율이 높다고 했다.

OSHA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아마존 창고에서 일한 100명당 5.9건의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비율은 다른 창고(3.1건)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2019년에는 아마존에서 100명 당 7.8건이 발생했으나, 다른 창고에서는 3.1건 발생했다.

미국 최대 민간 고용주이자 아마존의 경쟁 업체 중 하나인 월마트는 2020년 노동자 100명당 2.5건의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에 있는 4800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고는 평균 3.1건이었다.

아마존에서 이렇게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로는 '생산성 압력'이 꼽힌다. 즉, 회사가 노동자에게 시간 내 목표량을 할당하고 이를 충족할 것을 강하게 압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에서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들 노매드는 아마존에 직고용된 게 아니라 하청으로 고용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기업이 져야 하는 의무는 배제되고, 이익만 남은 상황인 셈이다.

아마존의 모습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투영된다. 치솟는 전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세대들, 은퇴 이후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가 없어 허덕이는 노년층. 이들을 구제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아마존 같은 질 낮고, 위험이 산재해 있는 일자리뿐이다. 과로사로 연달아 노동자가 죽은 쿠팡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마존 같은, 그것을 닮은 쿠팡과 같은 기업이 없다면, 일거리 자체가 없어지니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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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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