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26일. 이날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쉰 살은 됐을 게다. 지방선거가 부활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 때 유권자였다면 지금은 그 정도 연령대가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방선거가 처음 도입은 1952년이다.
하지만 인제군에서는 처음 실시된 지방선거는 그날이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참으로 부침이 심했다. 1952년에는 6·25 전쟁 중이라 온전하게 치러질 리가 만무했을 게고, 또 1956년 선거 또한 전국적인 시행이 쉽지 않았으며 1960년에는 4·19 혁명 후 어렵게 치러졌지만 이마저도 6개월 후에는 5·16 군사 쿠데타로 시행되기 못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생에 처음으로 참여한 지방선거.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인제초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당시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제가 아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기호 몇 번, 어느 분을 찍었는지 분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표소에 들어섰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투표에 참여를 했지만 당시 평범한 가정주부로 가사를 돌보는 일을 여자의 운명으로 알고 살았던 때라 감히 지방자치에 참여하리라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여자가 어디 글 쓰는 이사람 뿐이었겠는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게 알고 살았던 시기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되고 당선이 돼서 주민의 뜻을 대신하는 자리에 오르게 됐다. 게다가 과분하게도 인제군의회를 대표하는 의장이라는 영예까지 얻게 됐다. 참으로 꿈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돌이켜 보니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다 보니 그리 됐나 짐작해 본다.
아이들이 크고 집안 살림에 여유가 생기면서 사회봉사에 눈을 뜨기 시작을 했다. 새마을 부녀회와 인제군 여성 의용 소방대장을 맡았다. 크지 않은 사회단체이지만 이끌어 가자면 리더십이 필요했다. 겪어보니 생각보다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임무를 맡은 사람은 한발 더 많이 움직이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지극히 평범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지방자치의 정의를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사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일을 자신의 책임 하에 자신의 재원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런 학술적인 정의가 제대로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게다. 그렇다고 그 개념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글 쓰는 이 사람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지방자치는 자기 뜻을 얼마나 잘 밝힐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느냐 안 됐느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지방자치가 시행되기 30년 전을 생각해보자.
관선시대였던 당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군수실을 찾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아니 얼굴을 마주하기 조차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누구든 손쉽게 지방의원을 만나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글자 그대로 기탄없이 개진하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스스럼없이 군수실을 방문해서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고 군정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한다.
조금 어려운 말로 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년이면 우리는 또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소중한 주권행사를 자신의 이해와 연관해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유권자의 뜻이 모여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지방자치의 핵심이다.
이제는 나의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해와 연결해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한 차원 성숙한 지방자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 기고의 내용은 [프레시안]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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