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간은 6일뿐이다. 감사원은 이 기간 안에 어떤 식으로든 진실탐사그룹 <셜록>에 답을 줘야한다. 양자택일이니, 길은 복잡하지 않다.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비리에 가담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을 감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셜록>은 금감원에 대한 공익감사를 지난 4월 9일 감사원에 청구했다. 감사원은 청구서를 접수한 날로부터 30일 안에 ‘감사 실시 여부’를 청구인에게 알려야 한다. 5월 3일 현재, 감사원은 아직 <셜록>에 답을 주지 않았다.
감사원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셜록>은 작년 여름부터 은행권 채용비리를 취재하면서 여러 번 놀랐다.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은 물론이고 지방은행까지, 부정입사는 마치 상식처럼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부모 찬스, 지인 찬스를 이용한 부정입사자들은 ‘이게 뭐 대수냐’라는 듯 거의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이들을 부정하게 입사시킨 은행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으로 뒷목 잡게 하는 충격을 준 조직은 금감원이었다. 금감원의 어떤 간부는 자기 가족과 지인을 은행에 꽂아 넣었다. 이상구 전 금감원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직위를 이용해 자기 딸, 조카, 지인 총 3명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에 걸쳐 우리은행에 부정하게 입사시켰다. 그의 아들도 신한은행에 부정하게 입사했고, 지금도 신한은행 직원이다.
개인의 일탈을 넘어 금감원의 책임 방기는 유서 깊다. 은행권 채용비리는 2017년 세상에 드러났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도 ‘핫이슈’였다. 당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모든 건 제 의원 말대로 흘러갔다. 도덕 불감증을 넘어 "이래도 되나?" 하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신한은행 채용 비리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오히려 연임에 성공했다.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비리 당시 행장이었던 함영주 은행장은 현재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현재 우리은행 관련 업체 ‘원피앤에스’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비리 책임자가 승승장구하는데, 부정입사자가 자기 발로 나갈 리 없다. 그리하여 역사는 반복된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가 또 거론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지적을 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와 피해자 구제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나쁜 역사는 또 반복됐다. 2018년 그때처럼, 금감원은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와 피해자 구제 관련, 금감원이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은 없다.
은행권 채용비리 공범이면서 관리·감독을 안 하고, 여기에 약속도 지키지 않는 금감원. 이런 조직을 감사하라고 있는 곳이 감사원 아닌가.
<셜록>이 공익감사를 청구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유가 명확해도 실행은 쉽지 않았다. 공익감사를 청구하려면 성인 300명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보는 시대, 감사원은 청구인의 이름, 주소, 직업, 연락처 등을 자필로 적은 ‘종이 청구서’를 요구했다. <셜록> 기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셜록>은 마포우체국에 사서함을 열고 시민들에게 감사청구서를 받았다. 이 귀찮은 일에 누가 동참할까 싶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취업준비생부터 공무원까지, 많은 시민이 채용비리와 금감원의 책임방기라는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자필로 청구서를 작성해 우체국에서 우편을 보내는 ‘올드한 방식’을 기꺼이 감수했다.
공익감사 청구에 <셜록> 유료독자 왓슨 등 시민 360여 명이 참여했다. 김보경 <셜록> 기자가 이걸 들고 지난 4월 9일 정식으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2021년 5월 3일 오후,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한다. 아직 감사원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 길은 단순한데, 감사원은 어떤 복잡한 생각을 하는 걸까.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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