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5월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청와대와 백악관이 4월 30일 동시 발표했다.
국제외교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가 될지 주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 진전을 위한 공조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지난 27일 "오랜 숙고를 끝내고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라며 "한미 정상회담이 대북정책을 긴밀히 조율하고 발전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새 대북정책에 대해 막바지 검토를 하고 있으며, 지난 28일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 위협을 거론하며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를 통해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4월 29일 미국의 핵과학자회보에 게재된 '단계적 거래 핵 외교가 이란.북한과의 대타협으로 가는 길(''Transactional'' nuclear diplomacy may provide a path toward “grand bargains” with Iran and North Korea)'을 전문 번역(☞원문보기)해 소개한다. 필자는 미국의 핵안보 전문가로 하버드 케네디 스쿨 펠로우 연구원으로로 있는 크리스토퍼 로런스다. 필자는 이 글에서 1994년 '제네바 핵합의'처럼 단계적 거래 핵외교가 현재에도 시사점을 주는 방안이며, 대타협에 이르는 길이라고 역설했다.<편집자>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핵위협 감소에 초점을 맞춘 "단계적 거래" 방식으로 충분한 지, 또는 미국이 다른 "악의적 행위"들까지 포함한 변혁적인 "대타협"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계적 거래' 외교 주창자들은 정치적 관계를 변혁시키는 포괄적인 협상은 비현실적이며, 가장 긴급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타협" 주창자들은 포괄적이지 않은 협상은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맹렬한 반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겉으로 달라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과거의 협상은 점진적인 거래가 일괄타결로 가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비확산의 가장 바람직한 진전은 모든 당사자들이 외교적 거래가 관계회복 확대로 가는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인식했을 때 이뤄져왔다.
미국은 비확산을 위한 단계적 거래 외교로 관계회복 확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첫 시도로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핵합의'을 맺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들은 비핵화와 북미관계의 변화는 '패키지 딜'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적대적 관계가 유지된다면 북한이 전면적인 무장해제에 응할 보상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이 핵합의는 핵심이 담긴 거래처럼 보였다. 북한은 서방에서 민수용 원자로를 제공받는 대신 플루토늄 원자로를 해체하기로 했다. 합의문에는 양측이 경제.정치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없었다. 사실상 추후 협상에 맡겨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표를 염두에 두고 북한에 민수용 원자로를 건설.운영하기 위한 실행작업을 검토한다면, 민수용 원자로가 가져올 정치적 파급효과는 핵문제의 영역을 훨씬 벗어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핵에너지는 현재 가장 글로벌 협업체계가 구축된 기술중 하나이다. 북한은 민수용 원자로 건설과 운영을 위해서라면 국제적인 기술협력 네트워크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제네바 핵합의 협상 과정에 대한 나의 연구도 기술적 협력체제 편입이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규모가 있는 민수용 원자로 프로젝트는 다른 식으로는 불가능해보였던 정치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더 뚜렷한 정치적 변화로 가는 길을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작동했느냐는 것이 진짜 문제다. 결과적으로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지 않았나? 역사적 사실들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다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비확산 측면에서 본다면,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물리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다. 첫 민수용 원자로가 북한에 상당 수준 건설되었고, 건설 진행 과정은 북미 관계정상화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북한의 잣대가 되어주었다. 원자로 건설이 지연되자 북한은 핵원자로 해체 작업을 늦췄고,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암시장에서 구매해 상황 변화에 대비했다. 그러나 1999년 원자로 건설이 다시 진척을 보이자, 핵원자로 해체 작업이 재개됐다. 실행에 진척이 보이면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실질적인 외교적 진전이 이뤄졌다.
2000년 가을 당시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일과 만났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을 제안하려고 했다. 말하자면,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폐기와 다른 분야의 진전을 촉진하는 데 의미있는 진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진전의 속도는 민수용 원자로 사업의 진척 여부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불행히도, 제네바핵합의는 이 합의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2002년 결국 작동하지 않게 됐다.
현재 미국은 이란에 대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은 단계적 거래 외교가 이란과 서방의 정치관계에 점진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 합의 이행으로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제기한 리스크는 분명히 감소했다.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런 성과를 보여주는 일련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핵문제를 벗어나 이란이 행한 '악의적인 행동'의 여러 측면은 미국이 합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연결돼 있는 것을 보인다. 이란이 중동에서 도발 행위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합의가 발효된 이후 상당히 감소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합의 철회를 추진하면서, 이란은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와 동맹국들을 공격했다.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을 사실상 저지할 힘이 있다는 것도 과시했다. 제네바 핵합의 사례처럼, 구속력 있는 핵합의의 실질적인 이행은 핵분야 이외의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JCPOA의 경우 합의의 이행과 변혁의 연관성은 단순한 상관관계보다 훨씬 깊은 차원이다. 40여년에 걸친 경제.정치적 대립. 제재와 이란의 은밀한 핵프로그램 추진은 이란과 서방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이란에 대한 서방의 반목은 이란에 대한 외국직접투자가 거의 없다는 것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원유와 가스, 물류에 이르는 여러 분야에서 이란의 사회기반시설에는 서구의 협력이나 합작투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핵협상을 지속하고 이란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서구의 투자 등 JCPOA의 실질적인 이행은 기존의 정치관계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기반시설로 구체화된 공동의 이해관계는 탄도미사일에 대한 이란의 의존을 줄이는 등 관계회복 확대를 양측이 추진할 새로운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기회가 와있다. 서방의 논객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들에 주목하고 있을 때,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만일 성사된다면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개발 프로젝트들을 제안했다.
북한이 점진적으로 핵폐기 조치를 하면서 개발프로젝트들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재를 철회하는 조치가 함께 따라준다면, 북한의 핵무기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치적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2019년 가장 중요한 원전시설을 해체하는 대가로 일부 제재 완화를 요구했을 때 이런 논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어리석게도 대타협 아니면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방식을 고집했다. 보다 포괄적인 협상 타결로 이어질 수 있는 단계적인 비핵화 협상을 도출할 황금같은 기회를 놓쳤다.
새 행정부는 트럼프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단기적으로는 안보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장기적으로 보다 포괄적인 외교적 해결책으로 이끌 점진적인 거래를 창의적으로 설계해 충실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란과 북한을 상대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단계적 거래들은 분명히 도전이다. 신중하게 기획된 거래들로 보다 신뢰할만한 동기를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제네바 핵합의처럼 JCPOA나 북한과의 새로운 합의 이행에 요구되는 물리적, 재정적 부담이 관계회복으로 가는 길을 어렵게 하고, 후임 행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관된 방향으로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단기적으로 안보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관계회복을 위한 추후 조치들이 보다 현실성을 갖추게 할 수 있다. 미국은 지속적이지 못한 거래나 비현실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이란과 북한과의 관계회복의 토대를 쌓기 시작해서 외교의 단계가 나아갈 때마다 보다 지속가능한 해결책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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