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진 인력소. 사무실 인력소장이 손에 든 볼펜을 머리 위로 까딱거리면서 "아파트 공사현장 가실 분 세 명", "이삿짐 하실 분 두 명" 이렇게 일거리를 불러준다. 그러면 새벽 6시부터 소개소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거리가 호명될 때마다 손을 들어 자신의 노동을 사주길 기다린다.
이렇게 말하면 자신이 할 일거리의 선택을 노동자 스스로가 결정하는 듯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인력소장이 노동자를 선택하는 식이다.
활황기 때가 아니면 보통은 인력소에 들어오는 일거리보다 일하려고 들어오는 노동자가 더 많은 법이다. 그중에서도 편하고 쉬운 일은 많지 않다. 자연히 소개소에서 던져준 일에 감사해 하며 일을 하는 식이다. 그것이 설사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인력소에서 일당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4대보험이 보장되지 않으며 퇴직금, 초과근로수당 등도 없다. 노동유연화의 가장 밑자락에 위치한 인력소를 찾는 이들은 어디에도 취업하기 어려운 취약계층들이지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사회보장법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다른 듯 닮은 플랫폼과 인력소
인력소 새벽 풍경은 플랫폼 노동자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자리 대신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인력소와 마찬가지로 배달 플랫폼도 손쉽게 '가입'이 가능하다.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이유는 ‘일거리 구하기 쉬워서’(28.9%),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28.0%), ‘근무시간 선택 가능 등 플랫폼 경제 특성’(28.0%) 등으로 나타났다.
여러 회사로부터 콜을 받을지 말지를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점은, 새벽 인력소에 나가 그날 할 일을 고르는, 즉 자신의 일거리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임금이 시세에 비해 높게 평가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음식 배달로 한 달 400~500만 원의 수입이 보장된다고 한다. 인력소 막노동도 한 달 하면 그 정도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면에 존재하는 단점도 비슷하다. 막노동 일당은 11~12만 원 정도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한 달 330~360만 원 정도를 버는 셈이다. 여기에 야간 근무 등을 할 경우 400~50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배달 노동자의 월 400~500만 원 수입 뒤에도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라는 장시간 노동이 있어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를 보면 1주에 6일 이상 근무하는 음식 배달원은 85.7%이며, 1주에 40~52시간 근무하는 경우는 44.9%이며 53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는 45.9%나 됐다.
수수료를 떼이는 것도 비슷하다. 인력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하루 수입의 10~20퍼센트, 많게는 30%를 떼 간다. 플랫폼도 그와 비슷한 금액을 제하고 임금을 지급한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수수료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자연히 한 달에 버는 수입은 알려진 것보다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슷한 점은 자율성 뒤에 숨은 강제성이다. 배달 노동자는 콜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지만, 거부를 할 경우 페널티가 부과된다. 소비자에게 낮은 평가 별점을 받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근무시간이 자유로우나, 배달이 몰리는 특정 시간에 배달을 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페널티가 부과된다.
인력소의 경우, 그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인력소에 들어온 일 중에서 선택하는 식이다. 다만, 인력소장 눈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힘든 업무에 배치되기도 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있으나, 사실상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른 인력소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율성은 있으나 사실상 강제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플랫폼을 인력소로 만들겠다는 정부와 여당
그런 생각도 든다. 결국, 인력소를 앱으로 옮겨 놨을 뿐,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인력소나 4차 혁명으로 불리는 플랫폼 산업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정부도 플랫폼과 인력소가 매우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지난 3월 18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법재정안 및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국회가 본격 입법하려는 모양새다.
정부와 여당은 플랫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중 자영업으로 분류돼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보호한다며 이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 법에서 주목할 점은 신설된 '노무중개‧제공플랫폼 신고의무 특례'다. 여기서는 노무중개‧ 제공플랫폼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얻는 계약 체결을 위해 이에 대한 정보 제공이나 계약 체결을 중개하는 전자 장치(체계)'로 규정했다. 플랫폼 기업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면서 노무중개‧제공플랫폼이 이에 속한 노동자에게 져야 하는 의무는 노동조건, 임금(수수료) 사전 고지 정도가 전부였다.
이렇게 되면, 배민라이더스, 쿠팡이츠 등 배달앱, 미소, 대리주부 등 가사앱 등 플랫폼 업체들은 기존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했던,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4대보험 등도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에 속한 노동자들도 노동법에 적용받지 못하기에, 단체로 수수료 인하나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할 수도 없게 된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이 법을 두고 플랫폼 기업에 기존 인력소처럼 면죄부를 주려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하는 영국과 미국, 한국은?
기업이 적은 투자로 높은 이윤을 창출하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인 노동자를 쥐어짜서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만들려 한다. 다만, 이런 구조가 가속화되면, 사회적 문제가 되기에 적절한 제도와 법이 이를 통제한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마티 월시 미국 노동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버와 리프트 등 플랫폼에 속한 노동자도 직원(employee)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노동부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사실상 고용한 기업들과 접촉해 이들 노동자가 일정한 급여, 병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기업의 매년 매출과 이익은 늘어나지만, 여기에 속한 노동자의 대우는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기준 우버의 주가는 작년 10월 말 대비 반년 만에 68.6%가 올랐고, 리프트 주가는 174.9% 급등했다. 작년 12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한 에어비앤비 주가도 20.8% 상승했다. 반면, 노동자들의 처우는 그대로거나 퇴보했다.
유럽 법원에서도 플랫폼에 속한 노동자들이 '사장'이 아니라 실제 '노동자'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대법원은 영국 내 우버 운전자를 두고 "우버 운전기사들도 최저임금과 유급휴가, 휴일수당, 연금 등을 받을 권리가 있는 근로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우버가 요금 책정, 차량 배정, 운영 경로까지 지정해주기에 고용주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우버는 결국 영국 내 우버 기사 7만 명을 근로자로 재분류하고, 의료보험과 휴일수당, 연금 혜택까지 제공키로 했다.
플랫폼을 굴리는 업자들은 발생한 이익은 '경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플랫폼 산업은 코로나19 시대에 사라진 '일자리' 대신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 주었다. 또한 소비자에게도 편의성과 실용성을 안겨 주었다.
그렇기에 플랫폼 산업을 가로막는 규제나 반대 움직임을 '구악'이라고 칭한다. '혁신'을 가로막고, 공유 이익을 방해하는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것이다.
선진국이니 무조건 따라하자는 건 아니나,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4차 산업을 표방하는 플랫폼 산업이 졸지에 '쌍팔년도' 시절의 '인력소'로 전락하는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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