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뭘 새로 배워요. 그냥 몸이나 좀 안 아프면 좋겠어요."
치료하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 어르신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아픈 것만 좀 낫게 해달라고 했더니, '뭘 해라, 뭘 먹어라.' 하니 약간 귀찮기도 할 겁니다. 때론 "내가 여태껏 잘못 살았단 말이냐!"며 역정을 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은 간혹 귀담아듣는 분들이 있고, 시간은 걸리지만, 건강에 눈에 띌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제는 다 나은 것 같다는 환자에게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면서, 얼마 전 읽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48년 전, 계산해보니 그의 나이 43살 때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저에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인상만 되게 쓰는 배우였고,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깊은 감동을 준 배우이자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랜토리노>에서 '아~ 거장이구나!'라는 생각을 마음 깊이 심어주었지요. 인터뷰를 읽고 보니 그의 작품들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화해온 삶의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기사를 보면서 무엇보다 오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던 것은 그가 모토로 삼은 아버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나아지거나 부패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없다."
언제고 죽고야 마는 인간이, 몸의 차원에서 계속 나아지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올림픽은 할아버지·할머니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능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환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세계는 <용서받지 못한자>가 그 순간이었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자신의 색을 분명히 하는 시점, 양적인 팽창에서 질적인 성장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건강이란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40대가 그 전환의 시점일 것입니다. 배부르게 많이 먹는 것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꼭 필요한 것을 제대로 먹는 것, 겉으로 보이는 근육보다는 속근육과 호흡을 중시하는 움직임, 생식보다는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는 몸을 오래, 그리고 온전히 쓰는 방식으로 길들이는 겁니다. 40대 이후의 건강에서 나아지는 것은 최대한 천천히 나빠지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실패하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 바로 비만과 고혈압, 그리고 당뇨병과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의 문제와 만성염증, 그리고 암과 치매와 같은 중병일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확대하면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일 터지는 비리관련 뉴스들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사회가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부패 상태라는 신호가 아닐까 합니다. 대표가 되어야겠다는 사람들 모두 과거에 머물러 있고, 더 뭘 많이 해야겠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보다는 과거의 성장논리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때로는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라는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징후들도 보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건강상태를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정신은 외상후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있고, 몸은 암까지는 아니어도 만성화된 염증으로 여기저기에 종기가 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체에 자연치유력이 있듯, 우리사회에도 충분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힘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에 실패한다면 암이나 치매에 걸려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겁니다. 한 사람도 그 사람들이 모인 사회도, 새로운 가능성에의 모색을 멈추는 순간 후퇴하고 부패하고 마는 것이지요.
91살이 되어서도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소식은 파블로 카잘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90살이 되어서도 매일 2시간씩 첼로 연습을 하는 그에게 매니저가 그 이유를 묻자, "요즘 첼로 실력이 좀 느는 것 같아."라고 답했답니다.
전염병의 시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새봄입니다. 봄은 새로운 탐색을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이지요. 올봄, 각자의 삶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의 싹이 움트길 마음 깊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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