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투자 포트폴리오 최우선 순위에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꼽아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에 불고 있는 ESG 투자 바람에 힘을 보탰다. 그는 주주를 위한 공시를 개선할 것을 강조하고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자본시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라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시작된 기업의 ESG 열풍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현재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3월부터 역내 활동하는 모든 금융사 대상으로 SFDR(지속가능금융공시 제도)을 의무화했고 2025년부터는 모든 상장사로 확대하기로 하였다. 영국은 2025년까지 모든 상장기업 ESG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하였다. 홍콩 역시 2025년까지 금융기관, 상장 기업에 TCFD(기후변화 관련 리스크의 재무공시를 위한 태스크포스) 기준에 맞춘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1월 14일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ESG정보 공개와 책임투자 확대 추세에 발맞추어 제도적 기반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환경, 사회 정보를 포함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거래소 자율공시를 활성화하고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2030년부터 전 코스피 상장사의 ESG 정보 공시가 의무화한다. 한국거래소(KRX)는 1월 17일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제정했다. △ESG 개념 △ESG 이슈 관리를 위한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 △ESG 정보공개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 △ESG 중요성의 개념 및 평가 절차 △ESG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 보고서 작성 절차 △주요 정보공개 표준 및 권장 공개지표로 WFE, TCFD, GRI를 제안했다.
ESG 정보 공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공시 수단 및 표준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2020년 이후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과 유럽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ESG 정보 공시 기준으로는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s)의 지속가능회계기준(SASB)과 TCFD 권고안이 있다. SASB는 비재무적인 ESG 성과를 재무적 성과와 연계하여 보고할 수 있도록 만든 기준으로, 산업별로 정량적, 정성적 지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의 중요 주제 설정 방식에서 재무적으로 중요한 ESG 요소를 채택하도록 한 것과 투자자로 공개 대상을 국한한 것이 한계로 거론된다.
TCFD는 기후 위기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재무정보 공개에 반영하도록 지배구조, 경영전략, 위험 관리, 비표와 목표 설정에 관한 지침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ESG 정보 공시 대상이 투자자에 국한한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SASB와 TCFD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기업은 GRI를 공시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GRI는 1997년 국제 환경단체인 환경책임경제연합(CERES)과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정한 국제기구로 2000년 다국적 기업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작성 글로벌 표준인 'GRI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공급망, 지배구조, 윤리 및 청렴도, 반부패, 온실가스 및 에너지를 중심으로 개정된 G4를 2013년 5월 발표했고, 이어 2016년 10월 최신 가이드라인 GRI Standards를 발표했으며, 2018년 7월 1일부터 GRI Standards를 적용케 하였다.
GRI는 정량적, 정성적 지표 외에 세부 지침, 관리 방안, 정책 등에 대해서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공개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지속가능성 중요 주제를 설정하는 방식도 재무적으로 중요한 요소 외에 이해관계자 및 사회/경제/환경에 끼치는 영향 중심의 포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GRI 표준을 기반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할 때 적용되는 방식은 두 가지다. 기본 원칙 및 요구사항을 따르는 것은 동일하고 자신이 설정한 중요 분야(경제,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 중 1개를 선택하여 정보를 공개하는 'Core Option(핵심적 부합 방식)'과 자신이 설정한 모든 중요 분야(경제,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는 'Comprehensive Option(포괄적 부합 방식)'으로 나뉜다. 국내 많은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는 'GRI 핵심적 부합 방식'에 따라 작성이 되었다고 표기가 되어 있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는 2019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거래소 공시가 의무화한 상태이고 2026년엔 전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2030년까지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가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숨 가쁜 흐름과 달리 공공기관의 ESG나 지속가능경영 성과 공개 수준은 미흡하다. 2019년 기준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에 포함된 115개 공공기관 중(기금관리형 제외) 28개 기관만이 지속가능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곳에서도 발간 자체만으로 만족할 뿐 보고서가 '핵심적 부합 방식'을 따랐는지 '포괄적 부합 방식'을 따랐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목격되었다.
ESG 정보 공시확대의 핵심은 아무래도 지속가능 보고서 발간일 수밖에 없는데, 부분적인 공시 방식의 보고서를 발간해 놓고 보고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한다면 다소 민망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ESG 정보 공개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ESG 정보를 분류하고 발굴하여 사회에 공개하는 방식을 먼저 이해하고, 공개 주체의 성격에 맞는 방식을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면피성 ESG 공시로 일관하다간 장차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여력이 있는 상장사와 공공기관이라면 당장은 투명하고 충실한 지속가능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것에서 ESG 공시의 첫걸음을 떼는 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ESG 공시가 비용이 아니라 기회이며 의무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전향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지속가능 보고서를 내지 않는 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업이란 낙인을 받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가능한 빨리 시작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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