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기인한 '증오범죄'로 다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산드라 오, 대니얼 대 킴, 스티븐 연 등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공개적인 발언에 나섰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 중인 가수 에릭 남은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를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주말 동안 각종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21세의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은 애틀랜타 인근의 아시안 마사지숍과 스파 3곳에서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숨졌다. 피해자 중 6명이 아시안 여성이며, 이들 중 4명이 한국계 여성이다. 이들 중 1명은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로 확인됐다.
산드라 오, 집회에서 확성기 들고 "아시아인이라서 자랑스럽다" 외쳐
한국계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한 산드라 오는 2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산드라는 이날 "피츠버그, 당신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함께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 주최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산드라는 "우리 지역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두려움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기꺼이 경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저는 그것을 이해한다. 우리의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우리 지역사회에 손을 뻗는 것"이라며 연대를 요청했다.
산드라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질문하겠다. 만약 당신이 우리 자매와 형제들 중 한 명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본다면 도와줄 것이냐"고 물었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그렇다"고 큰 소리로 답했다. 그는 "나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단지 우리에게 그것을 외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정말 감사하다"며 그는 청중들에게 '아시아인이라서 자랑스럽다'고 함께 외치도록 유도했다.
에릭 남 "왜 아시아 여성이 성중독 배출구가 돼야 하냐"
에릭 남은 19일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조직적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문화의 복잡한 역사는 아시아인을 ‘영구적인 외국인’이자 ‘모범적인 소수민족 신화의 주인공’으로 초대했지만 완전히 통합하지 않았다"며 "검찰과 사법 당국이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할지 논쟁하는 동안, 나를 포함한 수백만 명의 아시아·태평양계 사람들은 버려진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롱이 '성중독'이라고 주장하며 가중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해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보안관 대변인 표현대로 '누군가가 나쁜 하루를 보냈다'거나 '성중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백인 특권의 극치"라며 "왜 우리 공동체의 여성들이 당신들의 성중독 배출구이자 희생자로 표현하나.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고 강조했다.
그는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도움을 간청해왔지만, 당신들이 듣지 않았다"며 "지금 침묵하는 것은 곧 공모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대니얼 킴, 하원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스티븐 연도 트위터에 글 공유
영화배우 대니얼 대 킴은 지난 18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열린 이번 총격 사건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그는 "2명이 살해됐고, 한 여성 노인은 불태워질 뻔 했다. 한 재즈 피아니스트는 너무 심하게 맞아서 더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됐다. 지난 1년간 신고된 3800건의 아시아계 대상 범죄의 일부다. 그리고 6명의 여성이 애틀랜타에서 총을 맞아 사망했다"며 피해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한 나라의 역사에는 미래로 가기 위해 지울 수 없는 과정을 보여주는 순간들이 있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그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며 "2300만 명의 우리는 단결했고 깨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킴은 또 19일 CNN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여동생이 2015년 직접 경험한 증오범죄에 대해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 남성이 일부러 차를 후진해 자신의 여동생을 치어 쓰러뜨렸는데, 가해자는 다른 아시아 여성에 대한 폭행 전력이 있음에도 경찰이 이를 증오범죄로 다루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스티븐 연도 자신의 트위터에 아시안 증오범죄를 비판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발언 등을 공유했다.
민주당 의원들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애틀랜타 총격은 증오범죄"
현재 애틀랜타 경찰과 미 연방수사국(FBI)에서는 이번 총기 난사에 대해 "증오범죄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용의자 롱이 인종을 살인을 저지른 동기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롱이 인종적 증오를 언급한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 8명 중 6명이 아시안 여성이고, 7명이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특정 인종과 성별을 겨냥한 폭력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하원의 아시아-태평양 코커스 의장인 주디 추(민주당, 캘리포니아) 의원은 ABC와 인터뷰에서 "증오범죄 적용을 위해선 용의자가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비방 등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제 마음과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 사건은 아시안 증오범죄"라고 말했다.
조지아주 상원의원인 라파엘 워녹(민주당)은 NBC와 인터뷰에서 "사법당국은 그들이 해야할 일을 하겠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증오를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종류의 폭력을 다시 당했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워녹 의원은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목사 출신이다.
아시안 여성이자 이라크전 참전용사 출신인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민주당, 일리노이)은 "인종적으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는 FBI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터키의 이스탄불 협약(가정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협약) 탈퇴와 관련한 성명에서 애틀랜타 사건에 대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바이든은 "성별에 기초한 폭력은 세계 곳곳의 모든 나라에 닿아 있는 재앙"이라며 "지난 몇주 동안 우리는 조지아에서의 비극적인 살인을 포함해 여성에 대한 끔찍하고 잔인한 공격에 대한 너무나 많은 사례를 보아왔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성에 기반한 폭력이란 망령 아래에서 여성들에게 미치는 광범위한 피해를 보아왔다"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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