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북한 김여정 당 부부장의 성명이 나온 지 이틀 만에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곳을 건드린 셈이다.
17일 블링컨 장관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가진 면담 자리에서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은 자국민에 대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학대를 계속하고 있다"며 "우리는 근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옹호해야 하며, 이를 억압하는 사람들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한미 양국이 함께 맞서야 하는 여러 가지 과제들이 있다면서 "북한의 핵 미사일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도 또 다른 도전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이 한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메시지에 북한에 대한 상당한 수위의 공격적인 메시지가 담기면서, 향후 북미 간 대화를 위한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김여정 부부장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비난하는 내용의 담화에서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한다. 앞으로 4년 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 2월 중순 미국의 접촉 시도에 북한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블링컨 장관의 이같은 메시지는 북한의 무반응을 넘어 적대적 반응까지 불러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미얀마 등으로 전선을 확대시켰다. 그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믿는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강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하며 개방적이고 인권을 중시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미국인과 한국인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이 지역을 포함해 세계 민주주의의 위험한 침식을 목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같은 가치를 함께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버마(미얀마)에서는 군인들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억압하며 민주적인 선거의 결과를 뒤집었고, 중국은 홍콩 경제를 조직적으로 잠식하고 타이완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압력과 침략을 가하고 있다. 또 티베트의 인권을 침해하고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한국과 미국이 협력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과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위한 우리의 공동의 비전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한미 동맹은 안보와 번영을 위한 린치핀이며 이는 우리 두 국가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지역과 세계를 위해 변함없고, 철통같으며, 우정과 상호 신뢰와 공유된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과 인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한 우리의 공동의 비전을 달성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서욱 국방부 장관과 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의 전례 없는 위협으로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블링컨 장관이 전날인 16일 일본과 외교·국방장관(2+2)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의 반발도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17일(현지 시각)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 성명에 대해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전략적 부속국이 되어 중일 간 관계를 파괴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늑대를 끌어들여 지역 내 국익을 팔아먹는 행위는 부끄러운 짓"이라며 "미국과 일본의 공동성명은 중국의 대외정책을 공격하고 내정을 간섭하며 중국의 이익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16일(현지 시각) 미국 애틀랜타 인근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미국계 한국인 4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깊은 조의를 표한다"며 "미국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해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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