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코로나와 관련해 엉뚱한 논쟁을 벌이거나 쓸데없는 헛심을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맞서 대통령이 실험대상이냐는 반발도 그 가운데 하나다. 두 주장 모두 전혀 생산적이지 않고 소모적인 논쟁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있지도 않은 백신 불안감을 앞장서 부추기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스트라제네카, 대통령이 먼저 맞아야 불신을 없앨 수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백신 불안감이 높아지면 먼저 맞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지킬 때가 왔다. 아스트라제네카 1번 접종을 대통령부터 하라”고 요구하면서 대통령 1호 접종 논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0일 즉각 반발하며 자신의 SNS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백신 주사를 먼저 맞으라는 망언을 했다. 먼저 맞으면 국민들 제쳐두고 특혜라고 주장하고, 사고라도 나면 고소해 할 것이냐. 당신이 솔선수범해 먼저 맞지 그러시냐.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 이는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이다. 국가 원수의 건강과 일정은 국가기밀이고 보안사항인데 초등학생 '얼라(아이)'보다 못한 헛소리로 칭얼대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유승민·정청래 의원, 도긴개긴 주장
정 의원의 주장에 이번엔 국민의힘 전략실장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아첨의 끝을 어디까지 보이려는 거냐.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 아니라면 국민은 실험 대상이란 말이냐.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백신의 안전성과 집단방역의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안심시키기 위해 백신 접종을 앞 다퉈 선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은 오히려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유 전 의원을 거들면서 정 의원을 힐난했다.
여기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2일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정부가 허락한다면 제가 정치인으로서, 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며 대통령 1호 접종 논쟁에 중간 끼어들기를 했다.
유력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는 모두 한마디로 난센스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이 전문가에 의해, 또 이미 이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한 외국에서 문제가 된 적이 없는데 안전성 문제가 있는 것을 전제로 이런 언행을 하는 것 자체가 황당무계하다. 백신 접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외려 훼방꾼 노릇을 한다. 여야 모두 그렇다.
코로나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우려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이는 26일부터 본격 시작하는 백신 접종 의향을 물은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부는 오는 26일부터 요양병원·시설의 65살 미만 입소자·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이어 27일부터는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원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접종 대상자를 확정하기 위해 접종 의향을 물었다.
코로나 백신 안전성 의심 국민 거의 없어
그 결과 접종 대상자로 등록된 전국 요양병원·요양시설, 정신요양·재활시설,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원의 만 65세 미만 입소자·종사자 36만6959명 가운데 93.8%인 34만4181명이 백신 접종에 동의했다. 이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접종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모두 1657개소에서 20만1464명의 대상자가 등록됐고, 18만6659명(92.7%)이 접종에 동의했다. 입원 환자의 동의 비율은 90.0%, 종사자는 93.9%다.
노인요양시설과 정신요양·재활시설 등 모두 4147곳에선 10만7466명 중 10만2612명(95.5%)이 동의했다. 입소자 동의율은 95.7%, 종사자 동의율은 95.5%다.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는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원 143개소에서는 5만8029명이 대상자로 등록했고, 94.6%인 5만4910명이 동의했다.
이 정도의 백신 접종 동의율이면 사실상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접종 대상자들이 의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백신 안전성을 의제로 설정해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백신을 맞으라’거나 ‘(그리하여)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라’는 프레임은 엉뚱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이 잘못된 것이다. 논쟁할 거리가 전혀 못되는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한데 여기에다 유력 여당 의원이 ‘대통령이 실험대상인가’ ‘(유 전의원부터)먼저 맞으라’는 식의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발언을 하면서 논쟁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전선이 더욱 확대됐다.
정 의원은 ‘국가 원수의 건강과 일정은 국가기밀이고 보안사항’이라고 했지만 백신을 접종받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을 갖다 붙인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등이 각각 그 나라의 ‘1호 접종자’로 나선 바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가원수의 건강과 일정이 국가기밀이고 보안사항이 아니란 말인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 이유 설득력 없어
정치권에서 불을 지피고 키운 대통령 1호 접종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등장했다. 21일부터 진행 중인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1호 접종자는 문재인 대통령님으로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은 “아직 백신 성능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세력이 너무 많다. 의심을 잠재울 필요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먹이고 있다.
하지만 이 청원 또한 이유가 잘못됐다. 백신 성능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심은 잠재울 필요가 있지만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되어서까지 이를 잠재울 정도는 전혀 아니다. 그렇게 할 경우 외려 의심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
이미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돼 외국에서는 이미 접종을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 접종을 시작하는 백신을 두고 ‘대통령 실험대상’ 운운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주장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 아니라면 국민은 실험 대상이란 말이냐’는 반박이 매우 뼈있는 지적인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이미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인구가 접종을 마쳤다. 지금까지 기피하고 불신할 정도의 백신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속도를 내어 백신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접종할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불필요한 논쟁과 일에 헛심을 쏟을 때가 아니다. 대통령 1호 백신 접종 주장은 우리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나 한가하고 한심한 행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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