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전면금지하는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TPNW: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이 지난 22일 발효됐다. TPNW는 기존 핵보유 강대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들을 예외로 하는 핵확산금지조약(NTP)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약이다.
TPNW는 핵무기 자체를 비인도적인 불법으로 규정해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뿐 아니라, 핵보유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까지도 금지한 최초의 국제조약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등 핵보유 강대국들이 참여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부여할 만한 힘을 갖춘 조약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TPNW는 유엔 회원국의 60%인 122개국 찬성으로 2017년 7월 채택됐으며, 50개국이 비준하면 90일 후에 발효된다는 규정에 따라 지난해 10월 온두라스가 50번째로 비준하면서 발효된 국제적인 조약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조약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이라는 국제적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10여 년에 걸친 풀뿌리 시민운동이 맺은 결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ICAN은 2017년 유엔총회를 통해 TPNW를 탄생시킨 공로로 그 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또한 이 조약은 미국 등 핵보유 강대국들의 노골적인 방해를 극복하고 만들어졌으며, 핵보유국들이 이 조약을 막기 위해 노골적인 방해를 할 만큼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TPNW에는 핵보유 강대국들은 물론,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도 동참하지 않았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한국과 일본도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을 설계해온 거물급 인사들도 TPNW에 미국 등 핵보유국들도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등 TPNW가 NPT를 대체할 조약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페리 프로세스'라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TPNW가 발효된 22일에 맞춰 미국의 핵과학자회보에 기고한 '미국이 TPNW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Why the United States should support the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의 전문(원문보기)을 번역 소개한다.편집자
14년전 나는 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 샘 넌과 함께 핵무기 철폐(2007년 1월4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A World Free of Nuclear Weapons)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초당적인 연합은 냉전 시기 미국 정부 최고위층 인사들이 참여한 것이며, 냉전 시기에 겪은 핵무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으로 우리는 핵무기철폐 운동은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게 됐다.
우리는 이 기념비적인 과업을 가보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고, 정상이 너무 멀어 보이지도 않는 그런 목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거나 내려온다면 인류의 문명은 종말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취할 행동단계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제안의 근본은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에 있다. 비전과 함께 비전을 실현할 방안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75년 동안 국제안보전략의 필수요소로 대량살상이라는 개념을 정상적인 수단으로 허용해왔다. 핵 없는 세상을 이루려면, 로널드 레이건이 말했듯 핵무기는 "완전히 비이성적이며, 완전히 비인간적이며, 그저 죽이고, 나아가 지구의 생명과 문명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는 기고문을 통해 핵위험에 대한 전세계적인 합의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이 목표를 향한 획기적인 업적이 최근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TPNW에 온두라스가 50번째로 비준했다. 이에 따라 1월22일 이 조약은 국제법으로서 발효됐다. 이 조약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많은 기여를 한 ICAN은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나는 그들이 이룬 업적에 찬사를 보낸다.
핵무기 보유국들이 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업적의 의미를 평가절하는 이들이 있다. 작고한 맥스 캠펄먼(구 소련과 핵무기 감축 협상을 이끌었던 미국의 외교관. 편집자 주)의 발언은 이런 냉소적 평가에 반박이 될 것이다. 우리가 쓴 기고문에 영감을 준 그는 '비전이 가진 힘'에 대해 말했었다. 미국의 독립선언의 원칙들이 노예제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등 당시의 현실과 모순됐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현재에서 보다 완벽한 통합이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했듯 "핵무기 철폐는 마땅히 선언을 하고 열정적으로 추구할 비전"이다.
1968년 미국이 서명한 NPT의 제6조에는 전반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위한 조약을 맺기 위한 협상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은 NPT에 규정된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 TPNW는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 조약은 핵무기 철폐를 막연한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모든 국가가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할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TPNW는 14년전 우리가 상상한 미래를 향한 의미있는 진전이다. 이 조약은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핵무기가 초래하는 비인간적인 피해에 주목하도록 하고,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한 글로벌 합의를 선언하고 있다.
이 조약은 핵무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그 끔찍한 현실에 다가가도록 이끌어주고, 인류를 위해 완전히 철폐할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무기 종식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조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구상을 설정하고 있다. 우선 어려운 과제에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영감을 제공한다. 새로운 비확산 조약으로 기존의 NPT를 보완한다.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늘리는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준수하기로 한 국제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하는 진영에 강력한 지지를 제공한다. 이 조약으로 핵무기가 조만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 방향을 향한 중대한 진전이다.
미국은 1968년 NPT에 가입했다.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 철폐를 주장했다. 2009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국제 평화안보를 추구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제 2021년 들어서 모든 가입국에게 핵무기를 불법화하는 조약이 발효됐다. 미국은 선구자 역할을 하는 나라로 자부하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산의 정상을 향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첫번째 핵보유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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