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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얼마나 잔인해지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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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얼마나 잔인해지고 싶은 것인가?

[박병일의 Flash Talk]

'속헹(Sokkhe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그녀는 우리 나이로 서른한 살이고, 외국인들은 본인들의 나이를 대개 만(滿)으로 계산하니, 그들 방식을 따르면 서른 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서른 살에 불과한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우리는 지난 연말 언론을 통해 접한 바 있다.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사실은, 당시 포천 지역은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한파경보가 내려졌었음에도 그녀가 머물던 숙소의 전기장판 등 난방 기구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이 무척 추었을 것으로 여겨져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애초 동사(凍死)를 의심하였으나 부검 결과 그녀는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그녀는 2016년 3월 '비전문취업비자(E-9-03)'로 입국한 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의정부와 포천 등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머물며 농장에서 채소재배 등에 종사하며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취업비자가 올해 2월 만료됨에 따라 1월 10일 캄보디아 프놈펜행 항공기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고 하며, 따라서 별일이 없었다면 그녀는 지금 그리던 고국 캄보디아에 있었으리라.

이에 속헹 씨의 사망을 계기로 20여 개 사회시민단체가 모인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대책위원회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이주노동자들은 입국할 때 건강검진을 받는다"면서 "이후엔 매년 검진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과연 속헹 씨가 제대로 된 검진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쉬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데, 과연 제대로 된 치료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6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발표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632명)의 10.9%(69명)가 '일주일에 하루 이상 쉬지 못한다'라고 응답하였다고 한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다반사여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7.3%(301명)나 되었고, 주 68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도 11.9%(74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휴일이 아예 없다'고 답한 노동자도 6명이나 되어,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농장주(農場主)도 다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기 대책위원회의 지적에 의하면,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숙식 환경 속에서 고강도 노동을 지속하고 있고, 질병을 겪고 있어도 필요한 때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1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속헹 씨가 한국에 입국한 2016년 3월 15일부터 2019년 7월 5일까지 3년 4개월간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2018년 10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해 한 차례 직장을 옮겼지만, 어느 직장에서도 그녀를 직장의료보험에 가입시켜준 곳은 없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현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에 외국인 노동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 한편 야당인 국민의힘은 걸핏하면 북한의 인권을 걸고넘어진다. 국민의힘에게 권유하고 싶다. 남의 나라 인권에 신경 쓰기 이전에, 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부터 먼저 살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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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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