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대책으로 '탄소세법안'과 '탄소세의 배당에 관한 법률안'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 톤당 8만 원의 탄소세를 부과하여 그 세입을 전 국민에게 월 10만 원씩의 탄소세배당으로 균등하게 배분하겠다는 방안이다. 말하자면, 탄소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탄소세배당'이라는 용어가 좀 생소한데, 국제적으로는 '탄소배당'(CO2-Dividend)으로 통용되므로 아래에서는 '탄소배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정부는 작년 10월 말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처음 천명하고, 12월에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2050 장기저탄소 발전전략(LEDS)’,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등을 확정하였다. 목표나 구체적인 방안이 미흡다는 지적들도 있으나,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지탄받던 한국이 이제나마 본격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여러 추진전략을 보면, '세제·부담금·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 체계 재구축' 방안이 포함되어 있어 향후 탄소세의 도입이 추진될 여지는 있는 것 같은데, 용혜인 의원이 추진하는 탄소배당은 없다.
탄소세는 탄소배당과 연동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탄소세 부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을 탄소배당이 완화해 줌으로써 탄소세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좀 더 부연하면, 탄소세의 목표는 탄소세 부과로 화석연료 가격을 인상시킴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대신 에너지 절감이나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것인데, 이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특히 저소득층의 연료비 부담이 커져 정치적 저항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탄소세 수입을 탄소배당으로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면, 에너지 다소비층인 고소득층은 납부하는 탄소세보다 적은 탄소배당을 환급받아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지만, 에너지 저소비계층인 저소득층은 납부하는 탄소세보다 많은 탄소배당을 환급받아 연료비 부담이 완화된다. 어느 사회나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많기 때문에, 탄소배당을 도입하면 탄소세의 유지 또는 인상에 다수의 정치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사실 탄소세, 특히 탄소배당은 매우 생소한 제도이다. 그나마 탄소세는 2019년 기준으로 유럽 16개국이 도입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도 좀 알려져 있지만, 탄소배당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가 유일하다(캐나다도 2018년에 탄소부담금을 탄소배당(기후인센티브)으로 환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이 제도 참여는 주별로 자율적이다.). 스위스는 2008년부터 (탄소세가 아니라) 탄소부담금을 부과하고 그 수입의 3분의 2를 국민에게 탄소배당으로 환급하고 있다. 이 제도의 운용실태를 살펴보면 앞으로 용혜인 의원이 발의할 ‘탄소세-탄소세배당’ 법률안을 논의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기에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스위스 탄소부담금-탄소배당 도입의 배경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에 비해 탄소 배출을 평균 8% 감축하도록 의무화되었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1999년에 '탄소법'을 제정하여(2000.5.1. 발효) 에너지 종류별 탄소 배출 목표를 정하고, 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될 경우 연방내각이 탄소부담금(CO2-Abgabe)을 도입하고 이 부담금 수입을 모든 국민과 기업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안(탄소배당)을 강구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정부가 2006년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연방내각은 2007년 6월에 ‘탄소시행령’을 제정하여(2007.7.1. 발효) 2008년 1월 1일부터 탄소부담금을 도입하고 이를 전 국민과 기업에 환급하는 방안을 구체화하였고, 이는 2012년 개정되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부담금 징수와 그 수입의 환급 방안은 탄소부담금이 처음이 아니다. 스위스는 ‘환경보호법’에 의거하여 이미 2000년 1월부터 활성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s: VOC) 배출을 감축하기 위하여 VOC 부담금(VOC-Abgabe)을 징수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균등하게 국민에게 환급해주고 있다. 탄소부담금과 탄소배당도 이러한 사례에 의거하여 시행된 것이다.
탄소부담금
부담금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징수한다는 점에서는 조세와 같지만, 조세와 달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교정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스위스의 탄소부담금은 유도부담금의 일종으로서 가격 상승을 통해 탄소 사용을 줄이도록 하고, 법정 기후보호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탄소부담금의 부과대상은 난방유, 천연가스, 석탄 등 건물난방용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개인과 기업이다. 단, 연료가격 인상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수송용 연료인 휘발유와 경유는 부과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탄소법에 의하면, 온실가스 집약적인 시설 운영자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관한 의무를 지는 대신 탄소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으며, 화석연료 구입 시 자동으로 부과되는 탄소부담금을 신청에 의해 환급받을 수 있다.
탄소부담금 액수는 2008년 도입 당시 톤당 12프랑(약 1만4800원)이었는데, 2010년 36프랑, 2014년 60프랑, 2016년 84프랑으로 인상되었고, 2018년에 96프랑(약 11만8400원)까지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부담금 액수의 인상은 탄소 시행령에 미리 규정되어 있다. 즉, 탄소 감축의 중간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 미달성 정도에 따라 인상될 부담금 액수가 정해져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먼저, 2007년 시행령에 따른 부담금 액수의 인상방식은 다음과 같다.
2012년 시행령에 따른 부담금 액수의 인상방식은 다음과 같다.
그동안 탄소부담금의 인상 경과와 이 시행령 규정들을 비교해 보면, 스위스는 계속해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는 했지만 시행령에 규정된 탄소감축 중간목표 달성에는 실패하여 탄소부담금이 계속 인상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뒤에서 보겠지만, 이것은 탄소부담금 자체의 효과가 없었다기보다는 탄소부담금 부과에서 제외된 휘발유와 경유 소비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인상폭은 매우 커서 10년 만에 12프랑에서 96프랑으로 8배나 인상되었는데, 이러한 급격한 인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탄소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행령은 일단 2021년 말까지 연장되었고, 2020년의 탄소 배출량이 1990년도 배출의 67%보다 많을 경우 2022년부터는 탄소부담금이 120프랑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탄소배당
탄소부담금 수입 가운데 3분의 1은 건물과 주택의 에너지 절감 개량사업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사용되고(최고 한도 4억5000만 프랑), 추가 2500만 프랑은 환경부가 관리하는 친환경 기술보증기금에 출연한다. 그리고 나머지 약 3분의 2는 전체 국민과 기업에게 배분한다(탄소배당). 배당금액은 탄소 배출량에 따라 매년 변동한다.
먼저, 개인의 경우 지급대상은 국적과 나이에 상관없이 스위스 기초건강보험 가입자 전체다. 스위스 3개월 이상 거주자는 의무적으로 이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스위스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은 모두 대상이 된다. 개인에 대한 배당은 개인으로부터 징수한 부담금으로 이루어지는데, 탄소 배출량과 무관하게 균등하게 배분된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앞에서 언급한 VOC 배당금도 함께 배분되는데, 2019년의 경우 개인 배당금은 76.8프랑(약 9만4750원)이었다.
이 배분은 부담금이 발생한 동일 연도에 실시된다. 정확한 부담금 총액은 연말에나 확정되기 때문에 일단 환경부의 추정에 의거하여 배분하고, 배당액과 실제 부담금과의 차액은 차차년도 배분 시에 정산한다. 배분은 건강보험료 정산을 통해, 즉 건강보험료 납부 시 배당금액을 차감하고 납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험사들이 스위스 거주자 모두의 건강보험계좌를 갖고 있기에 이를 통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행정비용을 줄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료 통지 시에 배당금액이 고지된다.
다음으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징수한 탄소부담금을 고용주에게 배분하는데, 배당금액은 모든 기업에 균등한 것이 아니라 피고용자의 노령연금 납부를 위한 임금총액에 비례한다. 이 배당은 환경부의 위탁을 받아 지역의 노령연금 담당기관이 실시하는데, 고용주의 노령연금 보험료를 정산하거나 배당금액이 많을 경우 차액을 지급한다.
이렇게 하여 개인과 기업에 배분된 탄소배당금 추이는 다음과 같다.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의 효과
언급하였듯이, 위와 같은 탄소부담금과 탄소배당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 감축의 정도가 이 제도의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199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스위스의 탄소 배출량 추이를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위 그림에서 보면, 탄소부담금을 적용하지 않는 수송용 연료의 탄소 배출량은 1990년 1546만 톤 배출 이후 약간의 등락은 있었지만, 2019년에도 1591만 톤을 기록하여 여전히 1990년 배출량보다 많다(1990년 대비 102.9%). 이에 반해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을 적용받는 난방연료의 탄소 배출량은 1990년 2341만 톤에서 2019년 1640만 톤(1990년 대비 70.1%)으로 30%나 감축되었다. 특히 2007년 배출이 1990년 대비 91.7%로 17년 동안 약 9% 정도밖에 감축되지 않은 데 반해,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이 도입된 2008년 이후 2019년까지 12년 동안 추가로 약 21% 정도나 감축되어 감축의 정도가 두 배 이상 커졌다. 이러한 사실은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의 효과가 매우 컸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효과는 탄소부담금을 도입한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탄소배출 감축에 관한 실증연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Müller and Schoch(2017)에 따르면, 첫째, 탄소부담금은 도입 이래 경제(제조업 및 서비스업)와 가계의 탄소배출 감축을 유도하였는데, 2015년에 연료에서의 탄소배출을 4,3%에서 7.1%까지 감축하였다.
둘째, 2008~2015년 동안 탄소부담금 외에도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수단들이 도입되었고, 그것들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만, 2015년에 탄소부담금이 다른 수단(예컨대 건물개량 프로그램)보다 2~3배 더 큰 효과를 보였다.
셋째, 이러한 감축효과는 연료대체 효과에 기인한다. 가계와 기업이 탄소부담금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화석에너지(예컨대 난방유)를 저탄소·무탄소 에너지(예컨대 천연가스)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업보다 가계에서 두드러졌는데, 왜냐하면 기업의 경우 탄소부담금 도입 이전부터 이미 천연가스로의 대체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넷째, 탄소부담금 예고는 즉각 효과를 가져왔다. 즉, 탄소부담금 도입이 예고만 되어 있던 2006년과 2007년에 이미 탄소배출 감축효과가 나타났다. 이를 볼 때 탄소시행령을 통해 미리 탄소부담금의 단계적 인상을 규정하여 탄소부담금 액수의 장기적 추이를 예상하도록 한 것은 예방적 효과를 초래하였고, 기업과 가계가 선제적으로 효율적인 투자를 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였다.
다섯째, 분석 기간 중 2010년과 2014년에 두 번의 탄소부담금 인상이 있었는데, 이때 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를 볼 때, 앞으로도 탄소부담금을 인상할 때마다 탄소 배출량 감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실증연구 결과 아직 탄소배출 잠재력이 소진되지는 않았다.
이상으로 스위스의 탄소부담금-탄소배당 정책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스위스는 탄소부담금의 도입과 급격한 인상으로 탄소배출 감축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그러한 좋은 성과는 탄소배당으로 인해 가능했다. 물론 수송용 연료에 탄소부담금이 적용되지 않는 점이나 개인과 기업의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이 구분된 점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실증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이 정책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다른 정책수단들보다 효과가 2~3배나 컸다. 그런 만큼, 한국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용혜인 의원의 관련 법안 발의를 계기로 탄소세와 탄소배당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 사족 : 현재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이나 심지어 연구자들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 스위스의 탄소배당이 바로 국가적 차원의 기본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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