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80세 이상이거나, 여러 장기의 기능이 나쁘다고 판단되면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지 않거나 중환자실 병상이 배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4월 14일 보도한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의료붕괴'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 파파지오바니 23 병원의 진료 지침이다. 이처럼 의료진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선택해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비극이 서서히 먼 나라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13일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천 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병상이 부족해 확진을 받고도 자가 대기 중인 환자가 수도권에 늘어가고, 입원 치료를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까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남아있는 중환자 병상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대구는 지난 3월 이러한 고통을 먼저 겪었다. 확진된 4천 명 중 2300명이 자가 대기해야 했고, 초기 사망자 75명 중 약 23%는 입원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대구 및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구지역 코로나19 중환자 치료 1개월간의 사망률은 42.7%에 달했고, 사망자의 70%는 인공호흡기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대구의 중환자 80여 명은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어야 했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통해 대구가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병상 확보의 중요성이다.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큰 코로나19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모니터링해 사망자를 줄여야 한다. 찬밥 신세였던 전국의 공공병원이 지난 1년간 최일선에서 이런 어려운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전체 병원의 5.7%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80%에 가까운 코로나 19 환자를 치료했고,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는 민간병원이 나서야 한다. 우수한 중증 환자 치료 역량을 가진 42개 상급종합병원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1차 대유행 때 대구지역 민간 상급종합병원들이 100병상 이상씩 제공해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응급 환자, 암 환자 등 필수 진료는 유지하되, 비응급 수술 등을 미루면 병상을 확보할 수 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민의 이해와 협조도 필요하다. 병상을 제공한 민간 병원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손실보전 역시 당연히 필요하다.
한 병원에서 감염병 환자와 일반 환자를 함께 치료할 때 우려되는 점도 물론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병원 감염을 막을 방안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대구의 상급종합병원도 일반 환자를 진료하면서 코로나 19 환자도 치료했다. 외국의 경우에도 코로나 19 환자 치료에 공공병원, 민간병원 구분 없이 나서고 있다.
민간 상급종합병원도 그동안 중환자 치료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해왔다. 물론 어려움이 있겠지만 환자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는 더 많은 병상 제공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병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중환자실 평가 결과 1등급 중환자실을 가진 병원이 수도권에만 무려 52곳이다. 반면 전라권에는 통틀어 4곳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수도권의 환자가 300킬로미터를 달려 목포의료원까지 가야 했을까? 1000병상이 넘는 대형병원이 수도권에 10개가 넘는데 왜 눈 내리는 공공병원 마당에 컨테이너 병상까지 설치해야 할까?
민간 상급 종합병원 대신 체육관이나 전시장에 환자를 수용하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치료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의료 장비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경증 환자는 수용이 가능하겠지만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대구 확산 때와는 다른 전국적인 대유행 속에서 중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달려와 주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19 환자만 전담할 코호트 병원 지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병원 신축 이전으로 병상의 여유가 있었던 대구 동산병원 같은 공간을 수도권에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중환자 치료에도 한계가 우려된다.
200병상 규모의 2차 병원이었던 대구 동산병원에는 중환자실이 없었다. 그러나 중증으로 악화되는 환자가 점차 늘어나 중환자 병상을 급하게 마련했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중환자 치료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부족했고, 인공호흡기 등 의료 장비도 부족해 보건의료 NGO 단체의 기증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중환자 치료를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제공이 현시점에서 더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민간병원에 대한 병상 강제 동원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 앞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는 없을까? 그동안 믿고 찾아 준 많은 국민의 사랑이 있었기에 상급종합병원이 오늘처럼 성장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상급종합병원이 보듬어 안고 그동안의 성원에 보답해야 할 때다.
환자를 살리는데 공공과 민간이 따로 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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