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 씨가 누명을 벗었다. 1988년 8차 사건이 발생한 지 32년, 대법원에서 윤 씨의 무기징역이 확정된 지 30년 만이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7일 윤 씨의 재심 선고공판을 열고 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에서의 가혹행위와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며 무죄 선고이유를 밝혔다. 이어 "20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에게 위로가 되고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피고인 무죄"라는 주문이 낭독되자 윤 씨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부터 재심 청구와 재판 전 과정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이주희 변호사, 그리고 방청석의 여러 방청객과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윤 씨의 무죄 선고는 예견됐다. 앞서 지난해 9월 8차 사건을 포함해 30년 넘게 미제로 남아있던 화성·수원, 청주 일대의 살인사건 14건에 대해 이춘재(57)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고 경찰의 재수사 과정에서도 이춘재가 진범으로 드러났다. 이춘재는 1994년 충북 청주지역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또 재심 과정에서 과거 윤 씨가 경찰의 불법체포 및 감금, 폭행·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한 사실도 인정됐다. 유죄의 증거로 쓰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가 조작된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이춘재는 지난달 2일 윤 씨의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8차 사건의 진범은 나"라고 증언하며 8차 사건 범행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증언했다.
이에 따라 검찰도 지난달 19일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이 이춘재 8차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그러면서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수감 생활을 하게 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가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도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혀 윤 씨는 무죄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 씨는 최후 진술에서 "'왜 하지도 않은 일로 갇혀 있어야 하나', '하필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등의 질문을 30년 전부터 끊임없이 던져왔다"며 "그때는 내게 돈도 '빽'도 없었지만, 지금은 변호사님을 비롯해 도움을 주는 많은 이가 있다. 앞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에서 박모(당시 13살) 양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인근의 농기계 수리점에서 일하던 윤 씨(당시 21세)는 이듬해 7월 범인으로 검거되며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모방범죄로 알려졌다.
윤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결국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 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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