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를 추천할 때 야당 측 추천위 위원의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규정한 현행법을 고쳐, 야당 거부권을 뺏는 내용의 공수처법 수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10일 오후 본회의에서 여당이 제출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재석 287인에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74명 가운데 172명에 열린민주당(3명)과 여당 출신 무소속 4명(박병석 국회의장 포함)은 물론 정의당(6명)까지 찬성표를 던진 결과였다.
국민의힘은 전날 본회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까지 강행하며 법안 통과를 막아섰으나 회기 종료로 필리버스터는 전날 자정에 자동 종료됐다.
이날 본회의에서도 여당 제출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고, 수정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이례적으로 20여 분 동안이나 실시하고,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상범 의원이 제안설명을 한 야당의 수정안은 재석 288인에 찬성 100명, 반대 187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됐고, 박 의장은 수정안 부결 직후 국회법 절차에 따라 개정안 원안을 표결에 부쳐 가결을 끌어냈다.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 이후에도 본회의장 안팎에서 민주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공정경제 3법 등 경제 관련 개혁법안을 처리할 때 '개혁 후퇴'라고 민주당에 각을 세웠던 정의당도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찬성 당론으로 임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이날 본회의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공수처 출범 자체가 계속 지연되는 것을 좌시할 수는 없다. 하기에 정의당은 우선적으로 공수처를 출범시키고 이후에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한 개정안을 반드시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발의한 공수처 설치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정의당과 함께 마련한 원안에서 분명히 후퇴한 안"이며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 측면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사실상 없앤 조항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면서도 "검찰개혁에 대한 고(故) 노회찬 의원의 정신을 매듭짓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는 구속 중인 정정순 의원이 이날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조응천 의원은 본회의에는 출석했으나 공수처법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조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투표 불참은 소신에 따른 행위였다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판이나 당의 징계 가능성 등은 "다 감당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공수처법 통과에 대한 항의를 이어가는 가운데서도 공수처법 관련 부속법안들 역시 차례차례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정의당 등은 △국제형사사법 공조법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마약불법거래방지특례법 △변호사법 △통신비밀보호법 △범죄인인도법 등 수사·사법 관련 법률들의 개정안 12건을 186~188인의 찬성으로 차례차례 의결했다. 이들 법안은 기존의 '검찰·검사' 등으로 표현된 수사 관련 권리·의무 주체에 공수처도 포함시키는 내용들이다.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및 그 관련 법안들 외에 국가정보원법,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등 2건에 대해서도 전날 본회의 전 필리버스터 신청을 했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해 이를 경찰이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이고, 남북관계발전법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국정원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이날 본회의에서 정보위 민주당 간사의 제안설명이 있은 후, 오후 3시 10분경부터 실시됐다. 필리버스터 첫 주자는 경찰 출신 이철규 의원이었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국회 회기가 종료되거나 또는 개시 24시간 이후 재적의원 3/5(현재 180명) 이상의 요구가 있을 경우 종결된다. 즉 이튿날인 11일 오후 3시 10분 이후, 범여권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종결을 요구할 경우 필리버스터가 끝날 수 있다.
다만 민주당 173석(174인 중 구속 중인 정정순 의원 제외)에 열린민주당 3명, 친여 무소속 4명만으로는 180석 요건을 채우기 아슬아슬한 수준인 만큼 정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진보진영 소수 야당을 설득하는 것이 민주당에 남은 과제다.
한편 12월 임시국회는 민주당 의원 173인의 요구에 따라 지난 7일 박 의장이 소집을 공고했고, 회기는 시작일(10일)만을 정했을 뿐 종료일이나 이후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법은 "회기는 의결로 정하되, 의결로 연장할 수 있다. 회기는 집회 후 즉시 정해야 한다"(7조 1항 내지 2항), "회기 전체 의사일정을 작성할 때에는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76조 3항)라고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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