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는 '빅딜'을 추진한다는 정부 발표가 지난 11월 16일에 있었다. 이를 위해 같은 날 산업은행은 한진그룹과 8000억 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이미 지원받은 1조2000억 원을 포함하면 총 2조 원의 혈세를 투입받게 된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2018년부터 경영 악화에 시달리다 2019년 말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계약을 체결했으나,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위기와 이로 인해 항공업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인수가 결렬된 바 있다.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나항공 역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3조5400억 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을 받은 바 있으나, 앞서 언급한 코로나19 사태가 빠른 시일 내에 종식되지 않는 한 향후 기업 전망도 어두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번 합병안과 관련해 "글로벌 항공 산업 경쟁 심화 및 코로나 상태 장기화로 항공업 구조재편 등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산업은행의 설명이고, 또한 항공사 통폐합의 활발한 진행이 범지구적인 추세라고 채권단은 주장하고 있다. 만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면 단숨에 세계 7위권의 '대형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세금을 들여 대한항공의 모(母)그룹인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지켜주려 한다는 비판에서 기인한다. 즉, 대한항공의 부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조원태 회장은 단 1원의 사재출연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오직 국민의 혈세만을 이용하여 한진그룹 경영권 방어 및 아시아나 항공까지 인수케 하는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다투고 있는 사모펀드KCGI는 "산업은행이 향후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진칼의 주식을 인수하게 될 것이나, 일반적인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가 아닌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은 공정한 방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한진칼의 주식을 인수하는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과 한진칼의 현(現) 경영진인 조 회장 간의 투자계약이 재벌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수 주체라는 대한항공 자체가 무려 23조 원의 빚더미에 올라 부채비율이 1100%에 이르고 있어 누가 봐도 기업 경영을 잘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부진한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타당할 형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실' 오너의 경영권을 강화시켜준다면 누가 과연 책임경영을 하려고 할지 걱정스럽다.
이 대목에서, 아시아나를 꼭 어느 기업에 인수시켜야 하는지, 우리와 비슷한 기업발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기업집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기업 형태 또한 혈족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우리나라 재벌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패전 이후 재벌이 해체되면서 오너일가가 배제되고 소유가 분산된 전문기업으로 재편되었다.
조금 더 부연하면, 일본의 전전(戰前) 재벌의 특징은 지주회사가 은행과 자회사를 거느린 수직화된 강력한 거버넌스(governance)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지금의 기업집단은 은행과 기업 간 이루어진 완만한 연합체로, 은행이 기업에 일정 부분 출자한 느슨한 동업자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금 계획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부실한 경영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재벌 오너에게 국민 혈세를 투입하여 자칫 특혜를 준다는 오해를 받기보다는, 산업은행이 아시아나에 출자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옮겨 가면서 채권은행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는 것은 방안이 될 수 없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참고로, 일본의 기업집단 모습은 은행자본이 중심이 되어 기업과 연합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형태를 차용하더라도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자본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분리법에 저촉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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